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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테스를 시작했다는 얘기를 주변에 하자 반응은 대개 둘로 나뉘었다.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우거나 혹은 웃음을 터뜨리거나. “남자가 무슨 필라테스를 하느냐”는 질문을 하도 받다 보니, 나름대로 답하는 요령도 생겼다. 척추와 골반 부위의 코어 근육 발달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오히려 남성에게 좋은 운동이다…. 설명이 길어질수록 구차해지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사람들의 반응도 이해할 만하다. 만성적인 허리 통증에 시달리다가 지인의 추천으로 필라테스 센터를 처음 찾았을 때만 해도 나 역시 반신반의했다. 레깅스 차림으로 우아한 표정을 지으며 기구에 매달려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동네마다 필라테스 센터가 널려 있어도 실제로 해봤다는 친구의 후기는 들을 수 없었다. 일단 상담만 받아보자는 심정으로 들렀는데,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신용카드를 건네주고 있었다. 필라테스 창시자가 남성이라는 얘기도 그때 처음 들었다.

백준무 사회부 기자

3개월간 운동을 하면서 편견은 철저히 부서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마스크를 쓴 채 운동해야 하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필라테스 화보 속 우아한 표정은 가짜였다. 내 몸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근육의 위치를 찾아서 힘을 주다 보면 저절로 이를 악물게 된다. 아직도 이름이 헷갈리는 기구들 위에서 1시간 동안 용쓰고 나면 부실한 팔다리가 사시나무처럼 떨린다. 뻣뻣했던 허리가 예전보다 눈에 띄게 유연해졌다는 점만이 위로가 된다.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도 있다. 남자 탈의실이 따로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전해 듣고, 레슨실 안에서 커튼을 치고 허겁지겁 옷을 갈아입은 적이 있다. 레슨실 커튼이 은은하게 비치는 소재였다는 사실은 더 늦게서야 알았다. “코르셋을 입는 느낌으로 갈비뼈를 조이라”는 강사의 설명도, 당최 코르셋을 입어볼 일이 없었던 나로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들었다. 센터에 들어서는 순간, 유리 벽 너머로 날아와 꽂히는 다른 여성 수강생의 경계 어린 시선도 마찬가지다. 알고 보니 이곳 센터에 등록한 남자 회원은 내가 유일했다.

필라테스 센터 안팎에서 겪은 불편한 시선에도 이유는 있다. 조현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저서 ‘쉽게 읽는 젠더 이야기’에서 “권투 하는 여자와 발레 하는 남자는 규범적 젠더를 넘어선 크로스 젠더의 영역에 접해 있다”며 “그것이 불편함과 어색함을 야기하는 트러블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치마를 입은 남자처럼 사회적 성 역할에 어긋나는 모습을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지난 9월 ‘서울시민의 정신건강에 대한 성인지적 분석 및 정책 과제’ 보고서에서 성 역할 고정관념이 강한 남성일수록 우울과 불안, 스트레스 정도가 모두 높다고 분석했다. 사회가 변했음에도 전통적인 성 역할을 고수하는 남성의 경우 변화한 상황에 적응하지 못해 우울과 불안을 경험할 가능성이 더 높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남자다움’을 포기할 때 허리 건강도, 정신 건강도 얻는다.


백준무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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