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삭제 의혹’ 박성민 前 부장
경찰 고위직 피의자 신분 첫 조사
기동대 파견 여부 놓고 진실 공방
내부 진술 엇갈려 보강 수사 필요
‘이태원 압사 참사’를 수사하는 경찰청 특별수사본부의 수사망이 경찰 지휘부를 향해 확대되고 있다. 그간 총경급까지 수사해왔던 특수본은 이날 처음 경찰 고위직에 해당하는 경무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한 데 이어, 조만간 치안정감인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조사 가능성도 내비쳤다.
24일 경찰 등에 따르면 특수본은 이날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경무관)을 불러 조사했다. 박 전 부장은 오전 9시58분쯤 특수본에 출석하면서 ‘정보 보고서를 인지한 시점이 언제냐’, ‘삭제를 지시한 게 맞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만 답했다. 박 전 부장은 특수본이 출범한 이후 입건된 경찰 최고위급이다.

특수본은 참사가 발생하기 사흘 전인 지난달 26일 용산경찰서 정보과에서 작성한 보고서가 참사 이후 삭제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이태원 핼러윈 축제 공공안녕 위험 분석’이란 제목의 보고서에는 인파로 인한 교통 불편 신고 및 교통사고 발생 우려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부장은 참사 이후 서울 일선 경찰서 정보과장이 모인 단체 메신저 대화방에서 ‘감찰과 압수수색에 대비해 정보 보고서를 규정대로 삭제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수본은 박 전 부장의 이 지시가 일반적인 규정 준수 차원을 넘어 특정 보고서를 염두에 두고 삭제를 지시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특수본은 보고서 삭제 의혹으로 박 전 부장과 용산경찰서 정보과장이었던 김모 경정, 정보계장이었던 정모 경감, 정보과 직원 4명을 입건한 상태다. 박 전 부장은 증거인멸 및 교사 혐의, 나머지는 증거인멸 등의 혐의를 각각 받고 있다. 다만 정 경감은 지난 11일 극단적 선택으로 숨져 특수본이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종결 처리할 예정이다.
일각에선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등의 윗선이 삭제를 지시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으나, 특수본은 김 서울청장이 관련 보고를 받은 정황은 “현재까지 없다”는 입장이다.

참사 당일 이태원의 기동대 파견을 둘러싼 진실 공방 수사도 경찰 지휘부로 확대되고 있다. 김 서울청장은 “(용산경찰서에서) 기동대를 요청받은 사실이 없다”고 거듭 주장했지만,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이 참사 전 서울청에 기동대 요청을 지시했다는 진술이 나오면서다. 만약 용산경찰서의 기동대 요청을 서울경찰청이 묵살한 정황이 드러날 경우 김 서울청장을 비롯한 경찰 고위직도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기동대 요청에 대한 진술은 용산경찰서 내부에서도 엇갈리고 있어 향후 보강 수사가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서장은 핼러윈에 앞서 이태원에서 열린 지구촌 축제 대비 내부 회의에서 기동대 요청을 ‘노력해 보라’는 취지로 지시했고, 이후에도 다시 지시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지시의 대상과 시점이 불분명한 데다, 관계자들의 진술도 상이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수본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서울경찰청에 기동대를 요청했는지가 관건”이라며 “지시만으로 사고가 예방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수본은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김 서울청장도 소환해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특수본 관계자는 “사고 당일 기동대 배치 등 경력 운용에 관한 의사결정 과정 전반을 수사 중”이라며 “관련 조사가 마무리되면 (김 서울청장을) 바로 소환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