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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하면 멈추는 풍력발전… 공급 과잉 때 ‘우선 가동 중지’ 탓 [연중기획-지구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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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1-24 06:00:00 수정 : 2022-11-24 14: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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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재생에너지 오해와 진실

비효율적인 전원?
동복·북촌단지서 年 6만6600㎿h 생산
수요 적을 땐 과잉생산 방지 출력제한
껐다 켜기 쉬운 재생에너지부터 ‘스톱’

탄소중립 도움 안 된다?
재생에너지 늘렸는데 온실가스도 ↑
화석연료 중심 전력공급체계 변화
전기차 사용 등 동반돼야 감축 가능

전기차 폐배터리 다시 못쓴다?
재사용·재활용 기준 없어 용처 제한
관련 근거 담은 개정안 2023년 10월 시행
대규모 ESS 구축해 출력제한 ‘완화’

국내에서 재생에너지는 참 동지도 적도 많은 전원입니다. 친환경을 앞세운 재생에너지를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사람도 있지만, 초기 건설비용이나 전력 생산 효율성 등을 따져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햇빛, 바람, 물 같은 ‘공짜 원료’로 전기를 만들더라도 제반비용까지 고려하면 그렇게 값싸지 않다는 거죠.

제주 구좌읍 동복·북촌풍력발전단지 풍력발전기가 지난달 15일 멈춰서 있다. 이날 제주에는 풍력발전이 가능할 정도의 바람이 불었지만 전력거래소는 전력 과잉 공급을 우려해 가동 중지를 지시했다.

탄소중립을 향한 여정에서 발전 분야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려면 재생에너지 발전이 늘어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전국에서 가장 탄소중립에 적극적인 정책을 펼치는 지방자치단체는 제주도입니다. 국내에서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가장 높은 지자체 역시 제주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늘수록 재생에너지 생산을 억지로 중단시키는 출력제한 문제도 점점 심각해진다는 점입니다. 이를 두고 ‘반재생에너지파’는 ‘재생에너지 설비는 늘리더니 정작 전기는 만들지도 못한다’며 못마땅한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2018년 15회이던 제주 출력제한 횟수는 2019년 46회, 2020년 77회, 2021년 64회로 늘었습니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출력제한을 80회 지시해 이미 역대 최다를 기록했는데요. 수치상 증가하는 출력제한 횟수는 반박할 수가 없습니다. 정말 재생에너지는 늘려봤자 설비용량을 충분히 이용할 수도 없는 비효율적인 전원일까요? 점점 더 자주 재생에너지 발전을 중단시킬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작정 설비를 늘린 탓일까요?

제주 재생에너지를 둘러싼 오해, 정말인지 따져봅시다.

◆오해1. 풍력발전, 늘려봤자 쓰지도 못한다

지난해 기준 제주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은 18.31%입니다. 전국 평균인 7.43%(2020년 기준)를 크게 앞섭니다. 바람이 많이 부는 제주는 도내 재생에너지의 반 이상이 풍력발전입니다.

지난달 15일 방문한 제주에는 가을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초속 5∼7m의 바람에도 제주 구좌읍에 있는 동복·북촌풍력발전단지 풍력발전기는 돌아갈 줄을 몰랐습니다. 전력거래소로부터 운행중단 지시를 받은 탓입니다.

동복·북촌단지에는 풍력발전기가 15기 있습니다. 그러나 이날은 자체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저장할 목적으로 2기만 가동 중이었습니다. 한 기당 최대 발전량이 2㎿로 연간 약 6만6600㎿h를 생산할 수 있는데요, 4인가구 기준으로 약 1만8000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양입니다. 일 년에 줄일 수 있는 온실가스는 4만6000여t에 달합니다. 이날처럼 바람 부는 날에 풍력발전기가 잘만 돌아간다면요.

그러나 전력수요가 많은 여름이나 겨울을 제외하면 날씨가 온화한 3∼5월, 9∼11월에는 생산되는 전기가 오히려 남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기는 수요나 공급이 너무 많아지면 안 됩니다. 전력수요가 적으면 과잉 공급을 막고자 전력거래소는 발전소에 잠시 생산을 멈추라고 지시하는데요, 이게 바로 출력제한입니다.

출력제한은 주로 재생에너지에 내리는데요. 왜 하필 재생에너지냐고요? 그건 우리나라 전력 공급 구조를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한국전력이 생산된 전기를 모두 사간 뒤 전국 각지로 공급합니다. 갑작스러운 수요 증가만큼 갑작스러운 공급 과잉도 정전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안정적인 전력망 운영을 위해 한전은 석탄, 천연가스(LNG), 원자력발전, 재생에너지 등 발전원별로 전기를 얼마나 공급받을지 정해두는데요. 이 구성비는 예전부터 주요 전원이던 화석연료를 중심으로 짜여졌습니다. 전력수요가 적으면 과잉 공급을 막고자 전력거래소는 기저전원이 아닌 재생에너지 발전소에 생산량을 줄이라고 지시합니다. 게다가 일단 운전이 시작된 화석연료 발전은 즉각적인 정지가 어렵고 이 과정에서 오염물질도 다량 배출되는 반면, 재생에너지는 즉각적인 중단과 가동이 가능해 다른 전원보다 껐다 켜기가 쉽지요.

화석연료 중심 구조 아래에서 억지로 중단되는 재생에너지, 이 정도면 못 쓴다가 아니라 안 쓴다 아닌가요.

◆오해2. 재생에너지, 제주도 탄소중립에 도움 안 된다

2012년부터 제주는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섬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탄소중립의 섬 2030’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도내 전력수요는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내연기관차는 전기차로 바꾼다는 등의 계획을 세웠지요. 2012년 4.90%이던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이 이제 18%를 웃돌게 됐는데요, 보급용량으로 따지면 117.8㎿가 725.4㎿로 훌쩍 뛰었습니다.

 

이 사이 제주도 온실가스 배출량은 얼마나 줄었을까요. 배출량은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었습니다. 도에 따르면 2012년 440만t에서 2019년 460만t으로 4%가량 증가했습니다. 7년 새 제주 인구는 55만명에서 76만명으로, 도내 차량은 25만7000대에서 65만8000대로 늘었고요. 도는 이런 영향이 복합된 결과로 봅니다.

제주테크노파크 내 전기차 충전시설. 이는 폐배터리로 만든 에너지저장장치로부터 전기를 공급받는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재생에너지를 이렇게 늘렸는데도 온실가스 감축에는 도움이 안 됐다고요. 그러나 이 또한 설비만이 아닌 설비를 운영하고 전력을 사용하는 시스템을 봐야 합니다. 기존 화석연료 중심 체계에서는 재생에너지 설비가 늘어난 만큼 전력수요를 모두 재생에너지 공급량으로 충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이 늘었어도 발전량으로 직결될 수 없는 구조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있는 설비도 멈추는 출력제한만 발생하죠. 결국 전력공급체계, 전기차 사용, 생활패턴 등이 모두 변해야 온실가스 감축도 가능해집니다.

출력제한은 전기 사업자에게도 큰 손해입니다. 출력제한으로 인한 손실은 벌써 제주에서만 수십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동복·북촌 단지 기준으로, 설비를 가동해 실제로 전력을 발전한 수준인 이용률은 연간 20% 안팎입니다.

강상현 제주에너지공사 발전단지 운영사업소 재해안전운영총괄팀장은 “출력제한으로 연간 3∼5% 정도 손실을 보는데 금액으로는 수억원대”라며 “제주 전체로는 10억∼20억원 이상일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강문용 제주도 서울본부 행정지원과장은 “출력제한이 잦아지면 발전사업자가 처음 예상했던 손익분기점을 넘는 기간이 더 길어지게 된다”며 “언제 얼마나 발생할지 모르는 잠재적 손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재생에너지를 언짢게 보는 분이 설비만 무분별하게 확대해 생긴 결과라고 비판할지 몰라도, 기후변화 완화를 위해 에너지 전환이 필수적인 요즘 화석연료 중심의 전력 시스템은 재생에너지와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제주에서 벌어지는 출력제한 문제는 육지 어디서든 비슷하게 벌어질 수 있는 어두운 미래일 뿐입니다.

폐차한 전기차에서 수거된 폐배터리가 지난달 14일 제주테크노파크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에 모여져 있다.

◆오해3. 재활용 기준도 없는 전기차 배터리, 쓰지도 못한다

현 제도에서 출력제한을 해결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먼저 남는 전기만큼 전력수요를 늘리는 ‘플러스 DR(수요반응)’ 제도가 대안인데요. 예를 들어 재생에너지 발전이 많은 시간대에는 전기차를 충전하면 충전요금을 할인해주는 등의 식으로 전력수요를 인위적으로 유도하는 방법입니다. 제주도는 전기차에 잉여전력을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가정이나 다른 필요처에 쓰는 ‘V2H(Vehicle to Home)’ 또는 ‘V2G(Vehicle to Grid)’를 구상 중입니다. 장기적으로는 남은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그린수소를 만들려고도 합니다.

 

무엇보다 많은 양의 잉여전력을 저장해둘 수 있는 대용량 ESS가 꼭 필요합니다. 제주는 빠르게 늘어난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을 ESS 용량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주에는 전국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폐배터리 수거센터, 제주테크노파크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가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폐차된 전기차의 배터리를 수거해 다시 사용할 방안을 연구 중인데요.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에 배터리가 반납되면, 배터리를 작은 단위로 분해해 성능을 평가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배터리 안전성과 경제성이 확인되면 전동킥보드나 전기자전거 등 배터리를 사용하는 작은 이동수단, 전동휠체어, 소규모 ESS, 양식장이나 축산농가 용으로 배터리를 재제조하지요.

 

수거한 전기차 폐배터리를 작은 단위로 분해한 모습.

아직 재생에너지 잉여전력 저장까지 상용화되진 못했지만, 김형진 제주테크노파크 에너지융합센터 성능평가팀장에게 폐배터리 재사용의 최종목표는 대규모 ESS입니다. 김 팀장은 “규모가 커질수록 썼던 배터리를 다시 쓰는 위험성이 커진다”며 “기술이 충분히 개발될 때까지 소규모부터 차츰 용량을 늘려 최종적으로 재생에너지 전력을 저장하는 역할을 하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테크노파크 안에도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습니다. 바로 맞은편에는 폐배터리로 만든 ESS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ESS는 내부 저장용으로만 쓰일 뿐, 남은 전력을 외부에 공급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외부와 연결돼 있다면 여름·겨울 전력수요 피크시간에 공급을 보탤 수도 있을 텐데, 왜일까요.

김 팀장은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국표원)의 인증 문제를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꼽았습니다. 국표원의 인증을 받지 않은 ESS는 한전 전력망과 연결할 수 없기 때문이죠. 다행히 지난달 11일 국무회의에서 전기차 폐배터리 재사용 근거 등을 담은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전기생활용품안전법)’ 일부 개정 공포안이 의결되면서 내년 10월이면 개정안이 시행될 예정입니다. 이 개정안에 따라 국표원은 안전성 검사 관련 기준을 마련해야 합니다. 폐배터리를 ESS에 재사용하는 관련 규정도 이 기준에 따라 전면 수정되겠지요.

김 팀장은 “국표원 인증이 없는 ESS는 한전이 받아주지 않아 이 문제 해결이 우선이었다”며 “인증제도가 정립되면 폐배터리 재사용 안전기준도 같이 올라갈 수 있겠지만, 이후 계통 연결 문제만 잘 해결된다면 ESS 상용화에 상당한 진척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재사용·재활용 기준이 없어 ESS로 만들어도 용처가 제한되던 폐배터리, 이제는 재생에너지 출력제한을 줄일 해결사로 기대해봐도 좋을까요.


제주=박유빈 기자 yb@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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