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민주주의를 닮았을 뿐이야(It’s that democracy looks like).”
15일(현지시간) 낮 12시쯤 이집트 샤름엘셰이크 평화공원 부근 주차장.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 등 기후단체 소속 독일·폴란드·우크라이나 기후운동가 10여명이 “내게 민주주의가 어떤 건지 말해줘”라는 구호를 선창하더니 이같이 외쳤다. 이들이 “민주주의를 닮았을 뿐”이라고 한 건, 바로 본인들이 벌이고 있는 시위에 대해서였다.

이날 시위는 이집트 정부가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 기간 중 일반인이 기후위기에 대해 의견을 표할 수 있도록 한 ‘그린존’ 내 ‘기후시위 지정구역’에서 진행됐다. 일반 시민을 위한 공간인 그린존은 COP 의장국인 이집트 정부가 관리한다. 외국인이 이 구역에서 시위를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때때로 이집트 환경단체가 집회를 열지만 대개 관변단체라는 전언이다. 지정구역은 사실상 ‘죽은 공간’인 셈이다.
실제 이집트 정부는 이 공간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시위를 주도한 기후운동가 10여명과 해외 취재진 전원은 지정구역 진입 전 이집트 경찰의 여권·소지품 검사를 받아야 했다.

검사를 마친 기후운동가들이 가져온 손팻말에는 ‘공인받은 시위(Authorised protest)’, ‘사상 최고의 시위(Best protest ever)’ 등 기후시위 지정구역을 비꼬는 말들이 가득했다. 이집트 정부의 기후시위 가이드라인이 인쇄된 것도 있었다. 제한 내용 중에는 ‘기본적인 예의에 어긋나는 비판’도 포함돼 있었다.
지난해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COP26만 해도 약 10만명 규모의 거리 행진이 있었다. 전 세계 시민사회의 목소리는 복잡한 역학관계 속 국제사회의 기후 논의를 조금이나마 진전하게 하는 ‘믿을 만한 힘’이다. 샤름엘셰이크엔 그게 보이지 않았다. 과거 COP에 수차례 참석했던 한 기관장은 “무덤 같은 COP”이라 평했다.

기후운동가들은 이날 드넓은 주차장에서 “민주주의 없이 기후정의는 없다”고 외쳤다. 그들을 둘러싼 건 취재진과 이집트 정부 관계자뿐이었다. 정부 관계자 서너 명은 기후운동가들의 발언을 꼼꼼히 메모했다. 시위는 이집트 정부가 정한 시간인 30분이 지나 종료됐다.

이날 시위를 취재한 기자 또한 기후시위 지정구역에 들어가기 전 여권·소지품 검사를 받았다. 여권을 확인한 이집트 경찰은 활짝 웃으며 “웰컴(환영해)”이라고 말했다. 그때 “생큐(고마워)”라고 답했지만, 시위가 끝났을 땐 그 말이 ‘환영 인사를 닮았을 뿐인 경고’란 걸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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