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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느리게 지나가는 남해 다랭이마을 바래길 여행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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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1-05 14:13:54 수정 : 2022-11-05 14: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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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즐기며 걷는 ‘남해 바래길 ’ 본선 16개 코스· 지선 4개 코스 240㎞/ 10코스 앵강다숲길에서 다랭이마을 만나/11코스 다랭이지겟길엔 동글납작 선구항 몽돌해변 펼쳐져/남해바래길 8코스 섬노래길 설리스카이워크 환상 노을 잊을 수 없는 추억

 

다랭이마을.

바다가 코앞이지만 배 한 척 볼 수 없다. 가파른 해안절벽을 끼고 있어 선착장을 만들 수 없는 탓이다. 어쩔 수 없이 마을사람들은 물고기를 잡는 대신 농사를 택했고 먹고살기 위해 산비탈을 힘겹게 일궈 논으로 바꿔 나갔다. 그렇게 들쭉날쭉 높이도 모양도 제멋대로 생긴 논들이 들어앉았다. 시골마을의 고된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남해 가천 다랭이마을에 정겹고 투박한 가을의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남해바래길에서 만나는 다랭이마을

 

화전(花田). 경남 남해를 500년 전부터 그렇게 불렀다. 산과 바다가 그림처럼 어우러지고 다랭이논과 꽃밭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보물섬이기에. 제주에 올레길이 있다면 순박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남해에는 바래길이 이어진다. 바다를 지나고 논밭을 뚜벅뚜벅 거닐며 남해가 지닌 천혜의 자연환경과 대를 이어 마을을 지키는 이들을 만나는 길이다. 개통 10주년을 맞은 2020년 ‘남해 바래길 2.0’으로 리모델링됐는데 본선 16개 코스와 지선 4개 코스로 240㎞에 달한다.

 

다랭이마을.
다랭이마을 논두렁길.
다랭이마을 논두렁길.

그중 10코스 앵강다숲길은 원천마을∼앵강다숲(남해바래길탐방안내센터)∼화계마을(길현미술관)∼용문산 임도∼미국마을∼두곡&월포해변∼홍현해라우지마을∼가천 다랭이마을로 이어진다. 17.7㎞ 7시간 정도 걸리는 길은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원천마을에는 파도치는 소리가 앵무새 소리와 닮아 ‘앵강만’으로 불리는 만곡진 바다를 만나고 생태관광지 앵강다숲에는 환상적인 꽃무릇 군락이 기다린다. 폐교된 성남초교 운동장과 교사는 다양한 현대미술작품을 전시한 길현미술관으로 변신했다. 앵강만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조성된 이국적인 미국마을도 호기심을 잔뜩 불러일으킨다. 설홀산 일출을 즐기는 홍현해라우지마을은 앵강만 청정 해역, 시원한 송림으로 둘러싸인 자연경관이 빼어나다.

 

다랭이논.
다랭이지겟길 동백나무.

지루할 틈 없이 볼거리가 많은 길이지만 10코스 최고의 여행지는 다랭이마을. 시골 정취가 물씬 풍기는 소박한 마을로 들어서니 많은 여행자들이 몰려 주차할 곳을 찾기 힘들다. 버스정류장 쉼터갤러리에 서자 설홀산과 응봉산을 거느린 마을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높고 푸른 가을 하늘 아래 가파른 산비탈을 따라 계단처럼 이어지는 다랭이논은 황금물결을 이루다 끝자락이 남해 푸른 바다와 만나 수채화를 그린다. 사계절 아름다운 곳이다. 남해에서도 남쪽 끝이라 봄이면 쑥과 시금치 등 봄나물이 가장 먼저 고개를 내민다. 또 매화, 벚꽃, 유채꽃이 흐드러지고 마늘밭이 더해 그림 같은 풍경을 선사한다. 누렇게 벼가 익을 때가 가장 예쁘지만 추수가 끝난 요즘은 층층이 쌓인 다랭이논의 또렷한 얼굴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다랭이지겟길 해안풍경.
다랭이마을 논두렁길.
다랭이마을 논두렁길.

‘바래’는 남해 토속어. 어머니가 가족의 먹거리 마련을 위해 바닷물이 빠지는 물때에 맞춰 갯벌에 나가 파래나 조개, 미역, 고둥 등 해산물을 손수 채취하는 작업을 뜻한다. 하지만 해안이 절벽인 다랭이마을은 바래조차 불가능했기에 주민들은 척박한 땅을 개간해 한 층씩 석축을 쌓아 올렸고 그렇게 108층 680개의 계단식 논과 마늘밭이 탄생했다. 2m가 넘는 석축을 보니 마을 사람들의 팍팍했던 삶이 가슴으로 전해진다. 논과 논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가을바람에 나뭇잎이 사각거리고 아련한 파도 소리와 작은 새의 지저귐까지 더해지니 걷는 것만으로 힐링이다. 상수리길이 가장 예쁘다. 지금은 폐교가 된 초등학교 왼편을 따라 상수리나무가 울창하다. 야생화 핀 한적한 돌담길을 따라 걸으며 숲과 바다를 즐기다 보면 가슴이 가을 낭만으로 물든다.

 

다랭이마을 논두렁길.
다랭이마을 해안산책로.
다랭이마을 해안산책로.

◆동글납작 선구항 몽돌해변의 넉넉한 가을

 

발품을 팔아야 하지만 마을 골목에도 볼거리가 많다. 남해의 유명한 죽방 멸치요리 맛집과 카페, 공예품점들이 옹기종기 모여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마을 주민들의 집 담벼락마다 적힌 재미있는 글들이 눈길을 끈다. ‘하하호호 소리에 일하던 개미도 쉬다 갈 장곤네집’ ‘돌담을 따라 함께 걸으며 사랑이 피어나는 긴돌담집’이라는 설명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진다. 기념품을 판매하는 ‘오시다 남해’는 남해의 풍경을 담은 머그잔과 텀블러가 주인의 선택을 기다린다. 바닷가 쪽으로 작은 계곡을 따라 산책로도 이어진다. 다랭이마을 명물 암수바위, 밥무덤을 지나 구름다리 입구에 서면 남해바다가 시원하다. 태풍 피해를 본 구름다리와 해안데크는 현재 보수가 불가능한 것으로 진단돼 다시 길이 열리려면 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다랭이마을에서는 다시 서쪽으로 남해바래길 11코스 다랭이지겟길이 시작된다. 14㎞로 5시간 30분 정도 걸리며 펜션단지인 빛담촌을 지나 향촌 조약돌해안·선구항 몽돌해변∼선구보건소∼사촌해변∼유구마을∼바래길작은미술관(평산항)으로 이어진다. 탁 트인 남해 바다를 즐기는 언덕에 자리 잡은 펜션들은 이국적인 디자인으로 꾸며져 하룻밤 묵어가라며 여행자들을 유혹한다. 

 

선구항 몽돌해변.

선구항 몽돌해변은 도로가에 있어 찾기 쉽다. 동글납작한 몽돌이 끝없이 펼쳐진 해변에 누워 눈을 감고 파도소리에 귀 기울인다. “차르르 차르르∼.” 파도가 밀려왔다 사라질 때마다 들려오는 몽돌과 파도의 연주는 마음에 고요한 휴식을 안긴다. ‘흔한 몽돌이지만 저에게도 가족이 있습니다. 저를 데려가지 마세요.’ 해변 입구에 적힌 당부의 표지판. 몽돌이 너무 예뻐 집어오고 싶은 유혹이 들겠지만 자연은 그 자리에 있을 때가 가장 예쁘니 눈으로만 즐기시길.

 

멸치회무침.
멸치쌈밥.

◆설리스카이워크에서 즐기는 예쁜 저녁노을

 

죽방멸치로 유명한 남해에 왔으니 멸치요리를 빼놓을 수 없다. 연예인들도 많이 찾는 40여년 역사의 우리식당부터 다랭이마을 초입의 다랭이밥상, 로컬 맛집으로 소문난 서포밥상까지 모두 둘러봤는데 맛은 비슷비슷하지만 그중 서포밥상이 정갈하게 음식을 내온다. 멸치쌈밥은 싱싱하고 큼직한 멸치와 시래기, 고춧가루, 다진 마늘을 넣어 자작하게 끓여 나오는데 상추에 싸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매콤새콤한 양념에 무친 뒤 깨를 솔솔 뿌린 멸치회무침에 막걸리 한잔 곁들이면 여행의 피로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설리스카이워크.
설리스카이워크 강화유리 발판.

싱싱한 멸치로 힘을 내 남해바래길 8코스 섬노래길로 나선다. 천하마을에서 출발해 송정솔바람해변∼망산 정상전망대∼미조 북항∼남망산전망대∼미조 남항∼설리해변을 거쳐 다시 송정해변과 천하마을 돌아오는 13.8㎞ 코스로 6시간30분 걸린다. 송정해변은 몽돌과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단애 해안이 멋진 풍경을 선사고 해발고도 286m 정상에 오르면 국보급 한려해상국립공원 뷰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설리스카이워크 노을.
설리스카이워크 대형 그네.

설리해변엔 요즘 인기 높은 ‘신상 여행지’ 설리 스카이워크가 기다린다. 2020년 국내 최초로 비대칭형 캔틸레버(한쪽 끝은 고정되고 다른 끝은 받쳐지지 않은 상태로 있는 보) 구조로 지어졌다. 높이 38m에 바다를 향해 79m를 뻗어나가 바다 위에 아찔하게 대롱대롱 매달린 모습은 보기만 해도 짜릿하다. 더구나 바닥은 투명 강화유리여서 난간을 붙잡고 걸어야 할 정도로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 끝에 요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핫한 대형 그네가 달려있다. 세계적인 명물인 인도네시아 발리의 그네를 모티프로 제작했는데 드라마 ‘여신강림’에 등장해 더 유명해졌다. 바다를 향해 날아갈 것 같으니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라면 시도하기 힘들다. 

 

설리스카이워크 노을.
설리스카이워크 노을.

설리스카이워크는 해질 무렵 진면목을 드러낸다. 한려해상국립공원에서도 역대급 ‘노을맛집’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다리 끝에 섰다. 바로 앞 목도와 승차도, 소삼여도를 지나 저 멀리 소치도까지 섬들이 펼쳐지고 그 섬 사이로 불타는 노을이 서서히 떨어진다. 그냥 바다만 있으면 심심했을 텐데 점점이 박힌 섬들이 들러리를 서주니 노을은 장엄하면서도 예쁘다. 또렷하게 동그란 태양이 바닷속으로 서서히 빠져들어 가는 환상적인 풍경은 잊을 수 없는 가을의 낭만이다.  


남해=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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