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공공 연구기관 블라인드 채용 전면 폐지 방침을 밝힌 가운데, 다수의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이 블라인드 채용으로 인한 어려움을 겪어온 것으로 나타났다.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이 2일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소관 25개 정부출연연구기관에 블라인드 채용에 대한 입장을 묻자 18개 기관이 ‘지원자의 전문성 확인이 어렵다’며 개선을 요구했다.
홍 의원이 받은 답변서를 보면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KRIBB), 한국건설기술연구원(KICT) 등 각 분야 연구기관이 “블라인드 채용으로 지원자의 전공 적합성, 전문성, 연구역량 및 수월성 등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한국재료연구원(KIMS)은 “직장경력, 자기소개서 내용 이외에 평가위원이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는 항목이 거의 없다”며 “정년퇴직한 지원자는 연구원 정년제도로 채용 대상이 될 수 없지만, 채용 전형에서 확인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기계연구원(KIMM)은 “외부평가위원을 위촉할 때 이해관계를 사전에 파악할 수 없어서 연구 분야별 강점 있는 주요 대학의 교수를 외부 평가위원으로 위촉하지 못하거나 전형 과정 중 회피 신청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했다. 한국식품연구원(KARI)도 “채용 시 연구실적을 확인하는 것이 필수이나 블라인드 채용으로 인해 연구실적의 진위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또 실제 현장에서는 지원자 정보를 간접적으로 유추해 채용에 활용한 경우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화학연구원(KRICT)은 “연구직 채용의 경우 응시자의 논문 검색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학교 정보 등 블라인드 처리되는 정보를 유추할 수 있어 블라인드 채용에 대한 유용성보다는 행정적 부담이 크다”고 비판했다.
연구기관들은 블라인드 채용을 완화하고 예외 사항을 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은 “연구수행인력에 대해서는 이름, 가족관계 등 연구업무수행과 무관한 개인정보를 제외한 논문 전문, 과제참여내용, 연구실 및 학교 정보, 학교에서 수학한 내역을 공개하는 등 전반적으로 블라인드 채용을 완화하여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도 “연구개발 목적기관에 대해서는 주무 부처 협의를 통해 별도로 블라인드 예외 사항을 정할 수 있도록 한다면 우수 인력 확보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공공기관 블라인드는 문재인 정부에서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겠다며 지원자의 출신 지역, 학력 등이 채용 과정에서 노출하지 않도록 한 제도로 2017년 도입돼 모든 공공부문 채용에 적용됐다.
하지만 과학기술계 등에선 지원자의 연구 성과를 확인하기 어렵고 연구 기관별 필요한 인력들이 다른데도 일괄적으로 공정 채용 조건을 적용하는 것이 오히려 불평등과 과학기술 저하를 초래한다며 반발이 있어왔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회의를 열고 공공 연구기관의 블라인드 채용 폐지 방침을 밝혔다.
윤 대통령은 “최근 몇 년 동안 우수 연구자 확보를 가로막았던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은 연구기관에 대해 우선적으로 전면 폐지하겠다”며 “위원회도 정부출연연구기관의 발전 전략과 함께 고민해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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