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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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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0-14 22:47:48 수정 : 2022-10-14 22: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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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다’라는 라틴어를 어원으로 한 ‘르네상스’란 말은 부활 혹은 재생을 뜻했다. 예술가들은 중세 1000년 동안 잊혔던 고대 그리스·로마의 문화예술적 영광을 부활시키려 했고, 그리스 미술의 사실적 묘사와 조화나 균형 같은 미의 규범을 되살리려 했다. 르네상스는 서양미술사 최고의 전성기를 이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성 히에로니무스’(1481)

회화에선 형태 묘사를 위한 비례론이 연구되고, 공간 구성을 위한 원근법이 창안됐으며, 해부학이나 생리학의 규칙도 창작에 적용됐다. 르네상스의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회화가 과학과 같은 하나의 학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술이 지적인 작업으로 여겨졌고, 미술가도 인문학자처럼 교양을 갖춘 지식인으로 대접받게 됐다.

이 그림은 다빈치가 기독교 4대 성인 중 한 사람인 성 히에로니무스를 그린 것이다. 그는 라틴어로 성경을 번역한 성인인데, 잡생각이 들 때마다 돌로 가슴을 쳤다 한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 같다. 가슴을 치려 쭉 뻗은 손에 들린 돌과 고뇌하는 얼굴 표정이 무척 진지하면서 고통스러워 보인다. 히에로니무스 옆에는 항상 사자가 동행했는데, 나귀를 잡아먹었다고 오해받던 사자의 진심을 그가 끝까지 믿어준 것에 대한 고마움에서였다.

그림 방식에선 치밀한 계산이 엿보인다. 다빈치는 팔과 목, 어깨 등의 근육과 뼈의 구조를 해부학 지식을 바탕으로 그렸다. 앉아 있는 히에로니무스의 폭과 높이도 대략 4대 6 황금분할 비례의 틀 안에 맞췄다. 명암 대비를 통해 이 순간의 극적인 느낌도 놓치지 않았다. 키아로스쿠로라 불리는 명암대조법이 사람, 동물, 배경을 포함한 화면 전체를 뒤덮고 있다. 이런 계산된 형식이 좀 답답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림 한 장을 그리는 데에도 원칙이 있어야 한다는 다빈치의 노력이 서양미술사 최고의 전성기를 만들었다.

안보도 정치도 경제도 암울해 보인다. 다시 태어나기 위해 원칙이 지켜지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 그러지 않아 답답하기도 하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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