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한귀은의멜랑콜리아] ‘오징어게임’을 하지 않는 방법

관련이슈 한귀은의 멜랑콜리아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22-10-03 22:56:14 수정 : 2022-10-03 22:56:14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오랜만의 회식서 '부동산 토크'
패닉바잉 현상 이젠 패닉셀링
‘투자=성공’ 게임판 환상 그만
소박한 내 집 있으매 감사한 마음

회식이 있었다. 부동산이 주제는 아니었다. 이슈는 ‘이사’였는데, 이사 이야기는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부동산 이야기로 쏠렸다. 오래지 않아 구멍이 생겼다. 나였다. 그들이 이사한 고급 아파트 이름, 나로서는 처음 들어본 것이었다. 같은 도시에 살아도 마치 다른 공간에 사는 것처럼, 다른 시간대를 사는 것처럼 서로 겉돌았다. 나의 무지에 대해 약간의 놀림 섞인 감탄도 이어졌다.

유쾌하고 따뜻한 빈정거림은 오랜만에 느끼는 동료애였다. 살고 있는 집을 환산가치로 여기지 않는 것에 대한 나르시시즘도 슬쩍 일깨워졌는데, 이 기분 또한 나쁘지 않았다. 비싼 집에 사는 것도, 비싸지 않은 집에 살면서 만족하는 것도 모두 나름의 인정욕망을 충족시켜 주었다. 인정투쟁 없는, 인정의 장이었다.

한귀은 경상국립대 교수 작가

어쨌든 여기는 수도권 중심에서 한참 떨어진 지방의 소도시. 전지적 서울 시점에서는 이런 상황 자체가 일종의 코미디일 수 있겠다. 이 코미디 속에 있는 것이 다행스럽기도 하다. 중심이 아니라 주변이어서 오히려 정부 정책에 영향을 덜 받는 장점도 있다. 적절한 소외만이 자유를 준다. 자유는 무언가를 희생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아니다, 이 생각조차 안일하다. 어떤 이들은 부동산에 관심을 갖지 않을 선택권조차 갖지 못한다. 당장 주거 문제 자체가 해결되지 않는 사람도 적지 않다. 나의 안정감과 만족감이 적절한 소외와 냉소적 아이러니에서 온 것이라 해도, 이조차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집은 단지 거주지일 뿐이라고 역설하는 것은 도덕적 허영이거나 권력을 가진 자의 이데올로기다. 서민 고통 운운하며 양극화와 불평등을 완전히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극단적 이념 또한 이미지 메이킹일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마치 원주민의 노동력을 착취해 유기농 제품을 생산하여 판매하는 다국적기업처럼, 이미지를 구매하는 소비자 같은 지지자를 끌어모은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 발표는 분명 예측 효과가 있다. 최근 부동산 조정대상지역 일부를 해제한다는 정책이 나왔다. 이 정책이 떨어지는 집값을 잡고 거래를 활성화시킬까. 아니, 오히려 앞으로 집값이 더 떨어질 거라는 사실을 예고한다. 투기지역 지정이 앞으로 더 집값이 오른다는 시그널인 것처럼.

정치가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정치는 오직 그 잘못된 것들의 지속을 통해서만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것들, 부조리한 것들은 정치의 자원이다. 양극화 해소 또한 영영 불가능하기 때문에 늘 정치권의 이슈가 되고 그 이슈에 권력이 모인다.

부에 대한 관심이 경제에 대한 관심과 직결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부에 대한 집착이 경제에 대한 문맹을 만든다. 빚투와 영끌이 그 결과다. 부동산·주식 유튜버는 이 시대 구루(Guru)다. 이들은 예측은 할 수 없다는 단서를 달고 예언한다. 구독자는 마치 신도들처럼 열광하며 불안해한다. 실패를 자책하며 ‘더 공부’하겠다고 다짐한다.

전 세계가 ‘오징어 게임’이다. 얼마 전, 패닉바잉 하던 사람들이 패닉셀링에 몰입한다. 주가 폭락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 결정적 시기라며 투자를 종용하는 목소리도 다급하다. 불안과 공포가 마케팅에 악용된다. 마케팅만이 아니다. 정치도 이 불안과 공포를 권력의 정당성에 이용한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누가 이득을 보던가. 게임에서 이긴 ‘기훈’이 아니었다. 그도 희생자일 뿐이었다. 오징어 게임을 즐긴 자는 그 게임을 한 자가 아니라 본 자들이었다. 이 세상도 그렇게 작동한다. 누군가는 게임을 하고, 그 게임에서 이기든 지든 상관없이 희생양이 된다. 권력자와 자본가는 그 게임을 이용해 더 강한 권력과 더 거대한 자산을 모은다.

남들이 모두 부동산하고 주식할 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이 가장 피해가 덜했다. 일시적 성공은 실패의 전조처럼 돼 버렸다. 정보에 민감하고, 정부 발표를 적극적으로 해석한 많은 사람이 그 정보 때문에 길이 막혔다. 자발적 무지는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선택하는 지혜가 돼 버렸다.

무정부주의는 아니다. 무정부주의를 지향하면 정부와 싸울 수밖에 없다. 중심세력에 대한 직접적 저항은 그 중심세력과 동일한 방식의 투쟁을 하게 만든다. 적과 싸우면서 적과 비슷해지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에 무조건 저항하다가는 죽을 수 있다. 그 게임판에서 맹목적으로 경쟁하다가도 죽을 수 있다. 오징어게임판에서는 이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면 안 된다. 패배에 대해 자위해서도 안 된다. 이 게임판이 만드는 환상에 걸려들지 않아야 한다. 노력하면 성공할 것 같은 환상이 모두를 희생시킨다.

내게도 부동산에 대한 욕망이 없지 않다는 것을 안다. 알기 때문에 이 이데올로기와 삶을 조율한다. 부동산에 대한 관심이 만들어낼 기회비용을 계산한다. 자본주의 게임판을 직시하면서 게임 룰의 빈틈을 찾는다. 빈틈은 타인과 함께하는 삶 속에 있다.

3년 만의 회식은 불편했다. 이 불편함이 가능해진 것에 감사했다. ‘불편하다’며 어리광 부리듯 너스레 떠는 것도 재밌었다. 마치 낯선 여행지에서 이방인을 만난 듯했다. 우리는 다소 아쉬워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식 종결이 아쉬운 것도 낯선 경험이었다.

한적한 길을 지나, 이렇다 할 인프라가 없는 조용한 아파트에 들어섰다. 내 밥벌이 일터와 적당히 가깝고, 삶의 패턴에 적절히 어울리는 곳. 변심하지 않는, 어느새 친구같이 돼 버려 약간은 서운하기도 한, 오랜 연인 같은 나의 집이었다.


한귀은 경상국립대 교수 작가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홍진영 '매력적인 무대'
  • 홍진영 '매력적인 무대'
  • 이지은 '너무 아름다워'
  • 이유미 '사랑스러운 미소'
  • 있지 유나 '여신의 손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