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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급 창작진이 뭉친 ‘마디와 매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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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9-29 20:11:17 수정 : 2022-09-29 20: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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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에 따른 옛 여인들의 삶과 희노애락 세 가지 소리로 풀어

2017년 처음 뭉쳐 음악극 ‘적로’를 만들었던 어벤저스급 창작진이 다시 호흡을 맞췄다. 배삼식(극작가)이 지은 글과 최우정(작곡가)이 만든 노래로 정영두(안무가·연출가)가 연출한 ‘마디와 매듭’은 이들의 이름만으로도 화제를 모은다. 10월7~8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예술극장2 무대에서 초연될 이 작품은 우리네 할머니와 어머니 등 옛 여인들이 24절기를 보내며 겪는 일상과 삶의 풍파, 희노애락을 소리와 춤으로 들려준다. 도시화 이전, 자연이 부여하는 질서 속에서 계절을 보내고 맞이하는 여인들의 생활상과 심리를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이번 작품에선 24절기 중 동지부터 하지까지 13개 절기의 풍경과 세시풍속이 작품의 큰 틀을 구성한다. 시간의 마디마디 안에서 여인들의 ‘옹이진 마음에’서리고 ‘세월에 묻은’ 이야기가 춤과 노래에 실려 매듭처럼 이어진다. 

 

앞서 ACC는 아시아의 가치를 반영한 차별화된 공연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추진한 2020년 ‘아시아스토리 공모전’을 통해 ‘아시아 여성들의 삶’을 새로운 공연의 키워드로 발굴했고, 그해 배삼식·정영두·최우정에게 이를 주제로 한 작품리서치를 의뢰하면서 공연제작에 들어갔다. 안무와 연출을 맡은 정영두가 작품 연구 과정에서 시간에 따른 자연의 변화를 몸과 마음으로 감각하며, 인내와 지혜로 시간의 마디마디를 살아내는 여인들의 삶에서 착안, 작품 틀을 구체화했다. 이후 지난해 6절기를 내용으로 한 선보임 공연(쇼케이스)으로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2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기자클럽에서 열린 ‘마디와 매듭’ 제작발표회에서 배삼식 작가(왼쪽부터), 김무빈(소리), 황경은(음악조감독), 조아라(소리), 김나리(소리), 정영두 안무 겸 연출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공

다양한 연령대 여인을 화자로 등장시켜 절기에 따른 그들의 생활상과 심리를 시적인 노랫말 안에 녹여낸 배삼식 작가는 지난 2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기자클럽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24절기를 통해 과거 여성들의 삶을 다룬다. 그 자체로 아름다운 삶이고 우리 공동체의 이야기”라며 “찬찬히 그 기억과 흐름을 더듬어 보는 마음으로 작업했다”고 말했다. 다만, 옛 여성들의 고된 삶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그는 “그 삶이 인고와 끝없는 희생으로 국한되지 않길 바랐다. 힘듦 속에서도 즐겁고 반짝반짝 빛났던 순간들, 끝끝내 놓지 않았던 작은 기쁨과 희망, 누구보다도 아름다워지고자 했던 마음 등이 있다”며 “그들도 어린 시절엔 단발머리를 한 작은 소녀였고, 머리를 땋고 꿈에 부풀어 있던 처녀였다. 삶의 단계마다 거쳐왔던 순간을 작품 속에 담아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극창작과 교수이기도 한 배삼식은 ‘3월의 눈’, ‘먼 데서 오는 여자’, ‘열하일기만보’, ‘1945’, ‘화전가’, 창극 ‘리어’ 등의 작품으로 유명하다.  

 

작품 속에서 절기에 따라 그 모습을 바꾸는 자연은 때로는 추위와 기근으로 여인들에게 역경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눈부시게 아름답고, 풍요롭기도 하다. 그동안 여인들의 모습도 다양하게 그려진다. ‘꽝꽝한’ 소한에 ‘갈라터진 얼굴’로 잠든 어린 자식들을 들여다보는 어머니는 한때 ‘마음엔 가만히 봄’이 들어섰던 입춘의 여인이었고, 한식날 ‘불 꺼진 아궁이에 찬밥을’ 먹으며 할머니의 옛 이야기를 듣던 꼬마이기도 했다.

 

배삼식은 ‘마디와 매듭’이란 제목에 대해 “말 그대로 24절(마디) 시간에 주어진 마디 속에서 여성들이 세월을 어떻게 매듭지으며 건너왔는가(를 이야기하는 거)여서 고민하지 않고 ‘마디와 매듭’이란 제목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여러 민속자료를 찾아보기도 했지만, 마지막으로 쓴 하지의 밤 장면은 어린 시절 하지 무렵에 복숭아가 익을 때 되면 어머니가 들려줬던 이야기예요. (당시 상태가) 좋은 복숭아는 팔고 벌레 먹은 것(복숭아)은 먹었대요. 사실 벌레 먹은 게 달고 좋기 때문에 벌레들도 복숭아 안에 들어가 먹어치우는 것이라고 하면서. 그 무렵 동네 아주머니들이 깊은 밤 중에 동네 정자에 모여 벌레 먹은 복숭아 가져다 ‘벌레까지 먹어야 피부가 고와진다’고 깔깔대며 먹었다’는 얘기를 들려주신 적 있습니다.”

 

지난해 쇼케이스에서 6절기였던 이야기는 이번에 13절기로 확장했고, 실제 70~80대들의 인터뷰도 새로 넣었다.

 

정영두는 “인터뷰는 여성들뿐만 아니라 남성을 포함한 부부도 있다. 이분들이 경험한 자연과 더불어 그 지혜와 경험이 사라진다는 게 안타까웠다”며 “올해 더 풍성하게 (작품을) 꾸몄다. 특정 세대만이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 어린아이부터 할머니·할아버지까지 온 가족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고 소개했다. 정영두는 국립현대무용단과 작업한 안무작 ‘심포니 인 C’, ‘구두점의 나라에서’, 두산아트센터에서 기획한 다원 퍼포먼스 ‘포스트 아파트’에 이어 올 초 국립창극단에서 창극 ‘리어’ 연출을 맡으며 작업의 외연을 확장해 가면서도 시간과 조형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놓지 않는 영민한 예술가로 평가받는다.

 

개인 사정으로 제작발표회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최우정은 오페라 ‘연서’, ‘달이 물로 걸어오듯’, ‘1945’, 뮤지컬 ‘광주’, 여창가곡 ‘추선’, 합창극 ‘마지막 눈사람’ 등을 작업했다. 서울대 음대 작곡과 교수이기도 한 그의 음악은 서정적이고 때로는 경쾌한 선율로 배삼식의 노랫말과 정영두의 안무를 유기적으로 이어준다. 최우정은 서면을 통해 “하나의 작품에서 무용과 음악은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번 작품은 각 장르가 나란히 작동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절기에 따라 화자도, 심상도 변주된다. 한 무대에서 서로 다른 창법과 분위기를 가진 정가, 판소리, 서도민요가 어우러진다. 정가는 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이수자 김나리, 서도민요는 국가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이수자 김무빈, 판소리는 ‘판소리 움직임 탐구’ 등 활동으로 현대적 계승을 추구해온 조아라가 맡는다.

 

김나리는 “정가는 조선시대 풍류방에서 양반 등 사대부가 즐긴 노래인데 좌창으로 앉아서 부르다 (이번 공연에선)서서 몸짓까지 하며 노래를 해야해 굉장히 힘든 작업이었다”면서도 “민요와 판소리까지 함께 하는 작품이 처음인 것 같은데 잘 어우러진다”고 말했다.

 

김무빈은 “서도소리는 황해도와 평안도 지방 소리를 말한다. 판소리, 정가와 어떻게 하며 잘 어우러질지 고민하면서 준비했다”며 “(관객들이) 따로 또 합쳐지는 소리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아라는 “전라도 지역 민속음악으로 출발한 판소리는 민중의 삶과 많이 맞닿아 있고, 삶의 질곡을 소리로 구성지게 표현한다”며 “(이 작품은) 자연의 흐름과 변화 속에 여성들이 가진 삶의 지혜와 재미 그리고 슬픔과 울음 등을 소리로 표현하는 게 흥미롭다”고 말했다.

 

연주는 피아노, 대금, 클라리넷, 타악, 아코디언 등 서양악기와 국악기로 이뤄지며, 광주 지역 송원초등학교 중창단도 참여한다.

 

정영두 연출은 “이번엔 대관 일정 등 여러 사정으로 광주에서만 짧게 공연하지만 앞으로 가능하면 24절기 이야기를 다 담아낸 작품으로 전국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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