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김환기칼럼] ‘수리남’이 들춘 한국 마약 오염

관련이슈 김환기칼럼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22-09-26 23:19:25 수정 : 2022-09-26 23:19:24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코카인 한 번만 흡입해도 중독”
국내 상습 투약자 54만명 추산
국제 유통조직 주도 거물 급증
수사 강화, 청정국 지위 되찾길

“처음엔 메스암페타민 같은 각성제로 시작을 하죠. 피곤함을 잊고 살찌는 걸 막기 위해서요. 다음엔 엑스터시예요. 패션쇼의 여흥을 만끽하기 위해서죠. 그리곤 눈이 더 초롱초롱해지도록 코카인의 힘을 빌리고, 겉만 화려한 삶의 허망함을 잊고자 LSD에 손을 대지요. 마지막엔 헤로인을 찾아요. 헤로인에 빠지면 거짓말도 서슴지 않고 환각을 더 얻기 위해 목숨까지 내놓으려 들지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뇌’에서 세계적인 톱모델 나타샤 안데르센이 털어놓은 마약 중독의 진행 과정이다. 한 인간의 삶을 파멸의 길로 이끄는 마약의 폐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한 번의 코카인 흡입이 중독과 연관된 뇌세포 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워싱턴주립대 중독연구센터의 연구 결과(2018년)는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 기분전환을 위해, 호기심에 손을 대는 순간 마약의 노예로 전락한다는 얘기다.

김환기 논설실장

창작의 영감을 마약에서 구하려 한 예술인들의 말로는 어땠을까.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는 ‘악의 꽃’에서 마약에 취했을 때의 황홀경을 “내 머릿속에서 예쁜 고양이가 산책을 한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중독의 끝은 46세의 이른 죽음이었다. 일시적인 쾌락을 선물하는 대신 정신과 육체를 무너뜨리는 게 마약이다. 마약과의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연유다.

마약 세계를 그린 넷플릭스의 웹드라마 ‘수리남’이 세계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남미 수리남에서 대규모 마약 밀매 조직을 이끌다 2009년 체포된 한국인 마약왕 조봉행 사건을 모티프로 한 ‘수리남’은 방영 2주 만에 비영어권 드라마 부문 시청시간 1위를 차지했다.

K콘텐츠의 우수성이 또다시 입증된 것이다. 우리 국민은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한국의 마약 유통·중독 실태의 심각성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드라마를 본 외국인들이 한국의 어두운 부분의 속살을 마주하게 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마약 청정국으로 불리던 한국이 마약 위험국으로 바뀐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마약 밀수 단속량은 2017년 69.1㎏에서 2021년 1272.5㎏으로 18배 폭증하고 마약 사범도 2017년 이후 1만명을 상회하고 있다. 최근에는 헤로인의 100배, 모르핀의 200배 이상의 효능이 있는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의 10, 20대 병원처방이 급증해 우려를 낳는다. 마약 용도로 잘못 처방된 건수가 그만큼 늘었다는 방증이 아닌가.

뇌손상을 유발하는 펜타닐 과다복용은 미국의 18~45세 사망원인 1위다. 펜타닐 중독자들이 마약거리인 필라델피아시 켄싱턴에서 허리를 굽히고 팔을 늘어뜨린 채 위태롭게 서 있는 모습은 영혼이 빠져나간 좀비 형상 그대로다. 우리도 강 건너 불구경할 때가 아니다.

요즘의 마약 유통과 거래는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국제 택배 등 주로 비대면으로 이뤄지는 게 특징이다. 그 중심에 한국 마약조직들이 있다. 검찰과 경찰, 국정원은 최근 3년간 ‘캄보디아 마약왕’ 호모씨, ‘텔레그램 마약왕’ 박왕렬, ‘탈북 마약왕’ 최상선, 박·최씨에게 마약을 공급한 사라 김 등 한국인 마약조직 총책들을 잇달아 검거했다. 호씨는 태국과 캄보디아를 오가며 19만8000명분인 메스암페타민 6kg을 국내로 밀반입했다. 박씨와 최씨, 김씨는 동남아 3대 마약왕으로 악명을 떨쳤다. 조봉행급의 마약왕이 급증한 것은 한국의 마약 유통 시장이 그만큼 커졌다는 증거다.

2020년 기준 국내 마약 상습투여 인구는 54만명으로 추산된다. 증가세가 가팔라 비상 대응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런데도 거대 야당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으로 마약 수사 역량을 약화시킨 것은 한심한 일이다. 경찰이 클럽·유흥업소 등의 마약범죄 대응 태스크포스(TF)팀을 가동해 단속을 강화하고 있지만 충분하지 않다. 다행히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시행령을 고쳐 마약범죄를 경제범죄로 재분류해 수사 역량을 살려놓았다. 검·경의 고강도 공조수사와 위험성 교육으로 마약청정국 지위를 속히 되찾아야 한다. 의사가 펜타닐 처방 시 투약 내역 확인을 의무화하는 법의 제정도 서둘러야 할 입법 과제다.


김환기 논설실장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홍진영 '매력적인 무대'
  • 홍진영 '매력적인 무대'
  • 이지은 '너무 아름다워'
  • 이유미 '사랑스러운 미소'
  • 있지 유나 '여신의 손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