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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 알 수 없는 공포 ‘기숙사’ 얘기
없는 것을 ‘지긋하게’ 바라보게 해

오가와 요코, <기숙사>(‘임신 캘린더’에 수록, 김난주 옮김, 현대문학)

무척이나 많이 팔린 책들을 사서 읽을 땐 사실 소설가로서 두 가지 마음이 든다. 얼마나 잘 썼는지 볼까? 하는 약간 비뚤어진 호기심과 그렇게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면 틀림없이 뭔가 배울 점이 있을 거라는 기대감. 2004년 출간 후 스테디셀러가 된 오가와 요코의 장편소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처음 읽을 때도 그랬다가 다 읽고 나서는 그만 그의 팬이 되고 말았다. 사랑, 휴머니즘, 우정, 소통이라는 큰 주제어가 일상에서 투명한 문체로 흐르며 어떤 강요도 주장도 하지 않는다는 데 놀랐다. 개인적으로 나는 장편도 잘 쓰지만 단편소설도 잘 쓰는 작가를 흠모한다.

조경란 소설가

오가와 요코의 단편소설 ‘기숙사’는 남편이 있는 스웨덴으로 이주를 앞두고 있으나 그저 하루하루 패치워크를 하며 무력하게 지내는 ‘나’에게 15년 만에 사촌동생이 전화를 걸어오며 시작된다. 도쿄의 대학에 입학하게 돼 기숙사를 좀 알아봐달라는 부탁. 나는 6년 전에 한 사설 기숙사에서 졸업할 때까지 지낸 적이 있었다. 사촌동생과 다시 찾은 기숙사는 소박한 건물의 외향은 변함없으나 안으로 들어가자 퇴락의 기운이 느껴졌다. 깊은 정적 속에서 학생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기숙사의 경영인이자 관리인인 선생님. 나는 기숙사에 들어설 때에서야 사촌동생에게 알려주었다. “선생님은 양팔과 한쪽 다리가 없어.” 짧은 침묵이 지나간 후 사촌동생이 왜 그런지 이유를 궁금해하자 나는 그건 물어볼 수 없었다고 했다. “양팔과 한쪽 다리를 절단한 이유가 슬프지 않을 리 없으니까.”

선생님의 방에서 그들은 이 기숙사에서 행복한 학창 시절을 보낼 것을 맹세한다는 서약서를 작성한 후 선생님이 끓여주는 차를 마신다. 멍하게 있다 보면 놓쳐버릴 만큼 순간적이며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선생님은 차를 끓이고, 나는 천장 한구석에 있는 얼룩을 본다. 사촌동생과 함께 지낸 며칠간은 활기가 생겼고 외롭거나 무력하지도 않았다. 스웨덴은 전혀 알지 못하는 추상적인 장소라 거기서 생긴 불안을 잊으려면 지금의 이 유예기간이 조금 더 지속되어야 하는데.

남편에게서는 하루빨리 스웨덴으로 오라는 국제우편이 오고, 폭풍이 지나가는 밤에 이불을 뒤집어쓴 채 나는 “혼탁함이 없는 장소”에 대해 떠올린다.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었던 추억이 있던 장소를. 달콤한 디저트들을 사 들고 나는 기숙사를 방문하기 시작한다. 사촌동생은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았거나 핸드볼부 합숙 훈련을 떠나서 만날 수가 없었다. 그사이에 부자연스러운 몸으로 생활한 탓에 늑골이 변형된 선생님은 자리에서 일어나기 어려워진다. 나는 어느새 매일 기숙사로 가 선생님을 간호하며 천장의 점점 커지고 짙어지는 얼룩과 그 자리로 날아 앉는 화단의 꿀벌을 보며 왜 매번 사촌동생을 만날 수 없는 걸까, 여기 살았다 실종됐다던 수학과 학생은 어디로 간 걸까, 선생님이 그 학생과 함께 심었다는 화단의 튤립들은 어떻게 저렇게 선명하며 반들거리기까지 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한다. 선생님이 잠들고 어둠이 내렸을 때 갑자기 꿀벌의 날갯소리와 함께 천장에서 톡, 끈적끈적한 방울이 톡, 톡,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가와 요코는 작가 후기에서 “어딘가에 보이는 듯하면서도 실은 보이지 않는 장소가 숨어 있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이 단편을 시작했다고 한다. 잘 안다고 여기는 집에도, 주방이나 마당에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지긋하게 바라본 적이 없는 무언가가 거기 있을지 모른다.

이 단편소설은 ‘없는 것을 보게 되는 이야기’라고 해도 될까. 나는 동생이 없는 기숙사를 보고, 있어야 할 곳에 양팔과 한쪽 다리가 없는 선생님을 보고 자신의 깊은 외로움과 결핍을 보는, 그리고 어떤 음습하고 잔혹한 소문 때문에 모든 기숙생이 나가버린 쓸쓸한 기숙사의 선생님 방 통기창으로 내가 의심하고 겁에 질린 채 그것을 마침내 “지긋하게 바라”보게 된다. 언제까지나 하염없이 흘러나올 것 같은 그것을, 탄성을 숨죽인 채 독자도 보게 될 것이다.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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