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초현실의 차이는 무얼까? 이상하고 비상식적이고 때론 충격적이기도 한 물건이나 상황을 볼 때 우리는 ‘초현실적’이란 말을 한다. 하지만 현실이 암담하고 절망적이라 느껴질 때 그런 세계의 충격 속으로 빠져들며 현실을 잠시 벗어나려 한다. 1차 세계대전 후 절망적 현실을 배경으로 등장한 초현실주의가 그랬고, 독일의 조각가이며 화가였던 막스 에른스트가 그런 예술의 역할을 아주 잘 간파했다.

1차대전 후 유럽의 거리엔 폭격으로 부서진 건물들이 즐비했고, 전사자로 인한 가족 파괴나 상실감도 극에 달했다. 이런 현실 앞에 사람들은 절망감과 반항심만을 갖게 됐고, 그 어느 것에서도 감흥을 갖지 못했다.
초현실주의는 이런 비참하고 절망적인 현실을 넘어서는 또 다른 현실이라는 의미의 ‘초현실’ 세계를 예술을 통해 제시하려 했다. 비합리적이며 낯설고 신비스러운 느낌을 주는 것들에 주목했다.
이 작품에서 에른스트는 캔버스 위에 석고로 만든 이상한 담장을 쌓아 올렸다. 그 안에 나무 막대기에서 녹색 싹들이 돋아 올라가고, 사마귀 같기도 하고 도마뱀 같기도 한 이상한 생명체가 기어오르는 모습을 그려 넣었다. 거기서 나온 줄에 매달린 붉은색 열매와 그걸 잡아보려 애쓰는 기형적인 긴 손가락 등 어떤 것 하나 명료하지 않고,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이다.
그런데 에른스트는 이 작품에 ‘첫번째로 명료한 단어’라는 역설적인 제목을 붙였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결합하고 놀라움과 충격을 줘 절망적 현실을 잠시 잊기 위한 것이었을까? 다른 해석도 있다. 아버지가 농인에게 수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었기에 그는 어려서부터 수어를 접했고, 손의 움직임이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이 된다는 것을 보면서 자랐다. 여기서 손이 그림 중앙에 자리 잡고 중심 역할을 하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불확실하고 절망적인 현실이지만, 그럴수록 보다 구체적이며 손에 잡히는 그 무엇을 향한 마음이 필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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