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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국기 펼쳤다 징역 5년 위기 처한 19세 라트비아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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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8-19 16:00:00 수정 : 2022-08-19 16:3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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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3국 라트비아, 러에 역사적 '트라우마' 커
러의 우크라 침공 후 자국 내 러시아계 '단속'
러시아계 주민들은 반발 조짐… "분열 가능성"

북유럽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현 러시아)이 나치 독일을 격퇴한 것을 기리는 전승 기념비가 있다. 라트비아는 2차대전 기간 독일에 점령되었고 종전 후에는 소련의 지배를 받았다. 지난 5월10일 이 기념비 앞에서 알렉산드르(19)란 이름의 청년이 러시아 국기를 펼쳐들며 소련 승리를 축하하는 발언을 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는 일이 벌어졌다. 2차대전 때 소련군 참전용사의 후손인 알렉산드르는 조사에서 “나치 독일과 싸워 이긴 선조들의 용기를 기리고자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으나, 수사당국은 그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한 것으로 판단해 ‘학살 등 전쟁범죄 미화 금지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유죄가 확정되면 알렉산드르는 최장 5년의 징역살이를 해야 한다.

 

라트비아의 19살 청년 알렉산드르가 수도 리가의 소련 전승 기념비 앞에서 러시아 국기를 펼쳐든 모습. 알렉산드르는 그 직후 전쟁범죄을 미화했다는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영국 BBC 홈페이지

영국 BBC 방송이 18일(현지시간) 소개한 알렉산드르의 사연은 오늘날 라트비아가 처한 복잡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접한 에스토니아 및 리투아니아와 함께 ‘발트3국’으로 불리는 라트비아는 18세기부터 제정 러시아의 지배를 받다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도중 일어난 혁명으로 제정이 무너지고 공산주의 소련이 성립한 뒤인 1921년 독립했다.

 

소련은 스탈린 정권 시절인 1939년 라트비아 등 발트3국에 “주권을 양도하지 않으면 쳐들어가겠다”는 협박을 가해 결국 굴복을 받아냈다. 이듬해 소련에 강제로 병합된 라트비아는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며 겨우 독립국 지위를 되찾았다.

 

이런 굴곡진 역사 때문에 라트비아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러시아와 깊이 엮이고 말았다. 약 190만명의 라트비아 인구 중 러시아계 주민이 무려 26.2%에 달한다. 소련이 라트비아를 강점했던 1940∼1991년 러시아에서 라트비아로 이주한 이들과 그 후손이 대부분이다. BBC는 “라트비아에선 거의 3명 중 1명이 러시아를 모국어처럼 구사한다”며 “특히 러시아와의 접경지역은 주민의 90% 이상이 러시아어를 쓰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앞서 소개한 알렉산드르도 러시아계 집안 출신으로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라트비아 수도 리가 중심가에 있는 소련 전승 기념비. 2차대전 기간 나치 독일에 점령된 라트비아를 ‘해방’시킨 소련군을 찬양하는 조형물이다. 라트비아 정부는 이를 공산주의 잔재로 간주해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SNS 캡처

올해 2월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러시아에 대한 라트비아의 오랜 트라우마를 건드렸다. 러시아가 1939∼1940년에 그랬던 것처럼 라트비아를 다시 공격할지 모른다는 우려와 비(非)러시아계, 그리고 러시아계 주민들 간에 갈등이 커져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질 수 있다는 걱정이 증폭되고 있다. 라트비아 정부는 안보 강화를 위해 징병제 도입을 검토하고 나서는 한편 내부 단합 차원에서 자국에 남아 있는 러시아 및 소련 잔재 청산에도 착수했다. 라트비아 국민의 러시아 시민권 취득 및 러시아 방송 시청·청취 행위는 금지됐다. 라트비아 국민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면 형사처벌을 받는다. 알렉산드르가 그 앞에서 러시아 국기를 흔들었던 리가 시내의 소련 승전 기념비는 곧 철거된다.

 

문제는 이와 같은 조치들이 라트비아 내 러시아계 공동체를 뒤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중에는 여전히 러시아에 동질감을 느끼는 이가 많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진 않아도 러시아의 언어·문화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주민들 입장에선 최근 정부의 조치를 일종의 ‘소수민족 탄압’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최근 라트비아를 방문한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왼쪽)이 아르투르스 크리스야니스 카린스 라트비아 총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스틴 장관은 “나토 동맹국인 라트비아의 안전을 반드시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미 국방부 홈페이지

판결 선고를 앞둔 알렉산드르의 어머니 스베틀라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나의 할아버지는 2차대전 참전용사”라며 “나치 독일에 맞서 싸운 역사는 영광스럽고 존경 받아야 할 기억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러시아계라는 점을 부끄럽게 여기라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며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많은 러시아계 주민은 소련이 2차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점령된 라트비아를 ‘해방’시키고자 막대한 희생을 치렀다고 여기며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BBC는 “라트비아 내 러시아계 주민들이 라트비아, 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인 라트비아가 속한 서방 진영에 대한 충성을 위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포기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고 느낄수록 라트비아 사회는 더욱 분열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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