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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밥값을 지불하지 않고 그냥 나갔다는 식당 주인의 하소연이 소셜미디어에 올라왔다. 한두 번도 아니고, 이쯤 되면 한 번쯤 우리를 되돌아봐야 할 문제다. 기실 밥은 우리 민족에게는 특별한 상징이자 기호이며, 우리 공동체의 구심점이기도 하다.

유난히 우리에게는 밥과 관련한 이야기가 많다.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밥과 관련시켜 말하거나 밥에 관한 일화들이 많은 것이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단식투쟁을 하고, 살기 위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밥을 먹기도 한다. 또 ‘식사하셨냐’는 인사로 상대의 안부를 묻고, 경제활동을 하는 것을 ‘밥벌이한다’고 표현하기도 하며, ‘나중에 밥 한 끼 먹자’는 말로 고마운 인사를 갈음하고, ‘밥심으로 산다’거나 또 누군가 일에 훼방을 놓으면 ‘다 된 밥에 재 뿌린다’고 표현한다. 어디 그뿐일까. 누군가가 미우면 ‘국물도 없다’거나, ‘같이 밥 먹기도 싫다’는 말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도 한다. 또 ‘식구’나 ‘한솥밥을 먹는 사람’처럼 밥은 소속감과 정체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우리의 회식문화는 유명하지 않던가.

어머니는 그랬다. 옛날에 아주 먼 옛날에. 전기밥솥이 없던 시절에. 외출한 식구의 밥을 그릇에 퍼서 그 밥이 식지 않게 이불에 앙구어 두곤 했는데, 나중에라도 따듯한 밥을 먹이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한데 그 식구가 늦게라도 들어오면 무심코 이불을 꺼내다 그 밥이 방바닥에 떨어져 난리가 나곤 했다. 식구뿐만이 아니다. 어떤 집은 행여 손님이라도 올까 싶어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도 불구하고 식구 수보다 한두 그릇 여유 있게 밥을 지었고, 동냥 온 걸인에게는 따로 한상 정성껏 차려 밥을 대접했다는 이야기들은 우리 주변에 흔하다.

우리가 이처럼 밥에 민감하고 진심인 까닭은 우리의 역사가 예사롭지 않다는 반증이다. 그 강퍅하고 신산했던 시절에 어떻게든 살아남아야만 했던 선대의 절박함과 지혜가 밥 문화 속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 민족은 밥에 대해서만큼은 진정이었고, 진심이었고, 또 경건했다. 오죽하면 죽은 조상에게도 산해진미를 빠트리지 않고 지극정성으로 상을 차려 대접할까. 그러니 밥은 그냥 밥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이며, 신성한 것이었다.

그런 ‘경건한 밥’의 의미와 신뢰를 저버리는 일. 참 아쉽고 안타깝다. 이른바 ‘먹튀’의 행위는 우리가 오랫동안 쌓아온 밥에 대한 정서와 문화와 정성과 인정과 밥에 깃든 경건함을 저버리는 일이기도 하며 또 신뢰를 깨트리는 일이기도 하다. 신뢰가 사라진 사회에서는 인정이 깃들 수 없다. 그러니 밥을 먹는 행위도 그만한 예의와 고마움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도 밥은 먹었냐는 따듯한 관심과 인정이 남아있고, 콩 한 쪽도 나누어 먹으려는 인심이 있는 한, 우리는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따져보면 우리는 밥을 먹는다기보다는 복을 먹는 것이다. 그러니 ‘먹튀’는 금물!


은미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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