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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외면한 교육부에 분노… 빨라진 하교 ‘돌봄공백’ 공포로 [심층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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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8-16 06:00:00 수정 : 2022-08-16 06:4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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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5세 입학, 엄마들은 왜 반대했나

‘아이 입학=퇴직’ 고민인데…
하루종일 돌보는 어린이집과 달리
방과후 아이들 사교육에 기대야
느닷없는 조기입학 비난여론 직면
“돌봄공백부터 공론장에 올렸어야”

‘전일제 학교’ 추진한다지만
돌봄교실 운영 오후 8시로 확대
교사들 “시설·여건 안된다” 반발
지자체 전담 체계 구축 등 촉구
이해관계 첨예 장기적 논의 필요

“모든 아이가 1년 일찍 초등학교로 진입하는 학제개편 방안을 본격 추진하겠습니다.” (7월29일, 박순애 당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입학연령 하향은) 현실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워졌다는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8월9일, 장상윤 교육부 차관)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교육부의 ‘만 5세 입학’ 정책이 발표 10여일 만에 사실상 폐기됐다. 교육정책은 태생적으로 찬반이 첨예하게 갈리지만, 이번 학제개편안은 특히 반대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컸다. 박 전 부총리가 들고나왔던 방안이 계획대로 추진되면 2018∼2022년생은 당장 3년 뒤부터 15개월씩 묶여 입학하기 때문에 부모들의 거부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부총리가 사퇴할 정도로 논란이 커진 것도 현장에 충격이 큰 정책을 갑작스럽게 발표한 ‘미숙함’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만약 교육부가 ‘10년 후쯤 뒤부터, 13개월씩 묶어 12년에 걸쳐 추진’ 등의 식으로 입학연령 하향을 천천히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이번만큼 반발이 거세진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부모들 사이에선 반대 목소리가 컸을 것이란 의견이 많다. 추진 과정의 문제와 별개로 입학연령 하향 자체가 부모에게 부담이란 것이다. 특히 맞벌이 부모들은 현 교육체계에선 ‘초등학교 입학=돌봄 공백’이라고 입을 모은다.

◆아이 입학하면 직장 그만두는 엄마

15일 교육부 등에 따르면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내리자는 주장은 노무현정부 때부터 나왔다. 초등학교 입학을 당겨 사회 진출이 빨라지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나왔고, 2017년 2월 국민의당 공동대표였던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만 5세 입학을 제안하자 우상호 당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상당히 의미 있는 제안”이라고 호응하기도 했다. 윤석열정부의 대선 공약이나 국정과제 등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아주 새로운 정책은 아니었다. 향후 언제든 또다시 나올 수 있는 얘기인 셈이다.

 

지난 3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만 5세 입학 반대’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정책 철회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재문 기자

하지만 부모들은 거부감이 크다. 박 전 부총리는 “교육 격차 해소를 위해 아이들을 공교육에 일찍 편입시키려는 것”이라고 했지만, 부모들에게 입학연령 하향은 ‘공교육 편입’보다는 ‘돌봄 기간 축소’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초등학교 4학년 자녀가 있는 A씨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 한동안 아이도, 우리 부부도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어린이집에선 6시까지 봐줬지만 학교는 일찍 끝나니 어렵게 하원 돌보미를 구하고, 학원을 두 개씩 다녔다”며 “아이가 이런 생활을 힘들어해 매일 울고, 밤에 악몽도 꿨다. 결국 아내가 휴직하고 아이가 적응될 때까지 돌봤다”고 말했다. A씨는 “아이가 입학했을 때 힘들었던 점을 생각하면 왜 지금 영유아 부모들이 정책을 반대하는지 이해된다”며 “그나마 유치원·어린이집에 다닐 때가 부모에겐 마음 편히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시기다. 학교는 일찍 끝나 아이들이 학원을 돌아야 하는데, 입학연령을 내린다니 부모들에겐 ‘공포’로 다가왔을 것”이라고 했다.

 

박순애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사퇴를 발표한 뒤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 많은 맞벌이 부부는 아이가 학교에 가면서 돌봄 공백을 맞닥뜨리게 된다. 아이 입학을 대비해 육아휴직을 다 쓰지 않고 남겨두는 이들도 많다. 어린이집·유치원과 달리 긴 방학 역시 부담이다.

올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B씨는 “방학 돌봄교실 경쟁률이 치열해서 어렵게 붙었다. 급식이 안 돼 매일 도시락을 싸가다 보니 유치원에 다닐 때가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며 “겨울방학은 거의 두 달인데 벌써 겨울이 오는 게 무섭다. 왜 엄마들이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면 회사를 그만두는지 이해가 간다”고 토로했다. 교육계 관계자는 “입학연령 하향은 부모들에게 단순히 ‘학교를 1년 일찍 가는 것’이 아니라 돌봄 공백을 어떻게 채울지와 연관된 문제”라며 “입학연령 하향을 논의하려면 학교의 돌봄 문제부터 공론장에 올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 세종 청사 교육부 건물. 세종=뉴시스

◆교육부 ‘돌봄 확대’ 들고나왔지만… 교사들 반대

교육부는 정책 발표 후 이런 불만이 나오자 돌봄교실 운영 시간을 오후 8시까지로 늘린 ‘초등 전일제 학교’를 들고나왔다. 내년에 시범 운영한 뒤 2025년까지 모든 초등학교로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이번엔 교사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현재 학교 시설·인력 여건상 돌봄을 강화할 여력이 없는데 교사에게 큰 부담을 지운다는 것이다.

교원단체들은 방과 후 과정을 확대한다면 책임을 지방자치단체에 이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정규교육에 전념해야 할 학교·교원에게 돌봄·방과후학교 운영을 떠넘겨선 방과 후 과정 확대, 질 제고를 기대할 수 없고 학교 본연의 교육활동에 지장을 초래하게 된다”며 “지자체로 운영을 일원화하고 전담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도 “돌봄은 국가의 책무”라며 “국가책임 아래에 예산을 확충하고 돌봄교실을 지자체에서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2020년에도 초등학교 돌봄교실을 지자체로 이관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돌봄전담사들이 총파업에 나서는 등 반발하면서 무산된 바 있다. 돌봄전담사들은 지자체로 업무가 이관되면 민간에 위탁할 가능성이 커지고, 돌봄전담사의 고용 불안이 커질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이 때문에 향후 전일제 학교 정책 추진 과정에서도 진통이 예상된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현장 의견을 반영해 세부 추진 계획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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