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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기시다 ‘핵무기 없는 세계’ 공허한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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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8-14 22:57:44 수정 : 2022-08-14 22:5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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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총리, NPT 평가회의 참석 제시
피폭 강조… 가해의 역사 반성 없어
핵무기 금지조약엔 참여도 안 해
핵공유 논쟁도… 무엇이 진심인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8월에 접어들자 ‘핵무기 없는 세계’를 강조했다. 히로시마(廣島), 나가사키(長崎)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1945년 8월 6일, 9일을 기억하는 방식이었다. 지난 2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핵확산금지조약(NPT) 재검토회의에서 그는 “NPT의 수호자로 나서겠다”며 군축 및 핵무기 불확산을 위한 핵전력 투명성 향상, 핵무기 감소 경향의 유지 등 5가지 행동방침을 담은 ‘히로시마 액션 플랜’을 국제사회에 제시했다. 일본 총리가 이 회의에 참석한 것은 처음이었다. 6일과 9일에는 히로시마, 나가사키에서 “(핵무기로 인한) 참화는 결코 반복되어선 안 된다. 이것이 세계 유일의 피폭국인 우리나라(일본)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생명과 미래, 인생을 빼앗기는 희생을 당한” 피폭 당사자 히로시마, 나가사키 시민들에게 “애도의 정성을 드린다”고도 했다.

히로시마를 지역구로 둔 기시다 총리이니 8월을 맞는 감회가 남다를 듯도 하다. 올해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핵전쟁 가능성까지 입에 올려 국제사회 주요 지도자 중 한 명으로서 위기감도 컸을 것이다. 굳이 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핵무기 없는 세계는 국제사회가 추구해야 할 이상이며, 피폭으로 인한 고통은 두 번 다시 경험해선 안 된다는 건 모두가 동의하는 바이긴 하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무서운 교훈이 기억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의 경고는 깊이 새겨야 한다.

강구열 도쿄특파원

그러나 세계 유일의 피폭국, 수많은 희생자를 강조하며 “아무리 힘들어도 핵무기 없는 세계로 나아가겠다”는 기시다 총리의 다짐에는 공허함이 느껴진다.

일단은 원자폭탄 투하라는 참담한 결과를 초래한 가해의 역사에 대한 반성이 없어서다. 20세기 초 일본 제국주의는 아시아의 이웃 나라를 침략해 수많은 전쟁범죄와 가해 행위를 벌였다. 일제의 터무니없는 야욕은 1941년 12월 진주만 공습으로 이어져 태평양전쟁이 일어났다. 1945년에 들어 전황이 극도로 불리해지자 오키나와(沖繩)를 점령한 미군을 상대로 주민들까지 죽음으로 내모는 ‘옥쇄’(玉碎)를 강요했다. 이때의 전투로 오키나와 주민의 4분의 1인 12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그 끝에 원자폭탄 투하라는 비극이 있다.

일제가 만행을 저질렀으니 피폭은 마땅한 것이었다는 게 아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비극적인 결말에 이르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분명히 하고, 반성할 게 있다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침략 과정은 돌아보지 않고, 피폭이라는 결말에만 집중해 비극은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고 소리 높여서야 큰 울림을 가질 수 없다. 당시 일제가 벌인 일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없다 보니 세계 유일의 피폭국이라는 일본의 고유성이 피해의 기억으로 가해의 역사를 가리는 방패로 활용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온다.

일본 정부나 집권층이 핵무기 없는 세계와는 거리가 먼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정부는 핵무기의 확산을 막자는 NPT를 넘어 핵무기를 아예 금지하자는 취지의 ‘핵무기금지조약(TPNW)’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지난 2월 불씨를 댕긴 핵공유 논쟁은 어떤가. 미국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에 전술핵을 배치해 이들 나라와 공동 운용하는 방식을 일본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아픔이 여전한 일본 사회에서 극히 민감한 문제였지만 자민당의 2인자인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간사장, 지난 10일 개각으로 경제안보상으로 자리를 옮긴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당시 자민당 정조회장 등이 동조했다.

다시 8월15일이다. 일본이 ‘종전일’로 기억하는 날이다. 전쟁이 끝났다, 는 의미의 이 말에서 가해의 역사에 대한 반성이 게으른 일본의 태도를 다시 떠올린다. 핵무기 없는 세계를 이루겠다는 기시다 총리의 다짐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핵공유를 긍정한 일부 지도자들의 견해가 일본의 진심은 아닌지도 묻게 된다.


강구열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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