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의 낭만주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이다. 균형과 절제를 강조했던 고전주의자들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억제하려 한 역동적이며 극적인 분위기가 넘쳐흐른다.
1816년 관리들과 사람들을 싣고 식민지인 아프리카 세네갈로 가던 프랑스의 메두사호가 지중해에서 난파된 사건을 그린 그림이다. 350명이 죽고 15명만이 살아남아 뗏목을 만들어 구조를 요청하는 장면을 제리코가 상상력을 발휘해서 나타냈다. 전경에 죽은 사람과 죽어가는 사람의 축 처진 모습과 체념한 듯 비탄에 잠긴 사람을 그렸고, 그 위에 파도 사이로 구조선을 발견하고 흥분에 차 기뻐하는 사람들을 그려 넣었다. 꼭대기에는 찢어진 옷을 벗어 구조선을 향해 흔들고 있는 흑인을 그려 넣는 등, 비극적 상황에서 고통과 싸우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을 다양한 모습으로 묘사했다.
그림 형식에서는 색, 명암 대비, 감정의 흐름을 강조한 낭만주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고전주의자들이 강조하는 선이나 형태보다 어둠침침한 갈색 톤을 화면 전체에 흐르게 해 불안한 분위기를 표현했고, 강한 명암 대비로 희망과 절망이 교차되는 극적인 순간도 잘 나타냈다.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화면을 가로지르는 사선 구도를 사용해서 당시 긴박했던 순간의 역동성을 느끼게 했다. 그 꼭대기에 흑인을 그려 넣은 것은 ‘타락한 서구 문명’과 ‘고상한 야만’을 대비시키며 자연적인 것을 강조한 루소의 낭만주의 이론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그림 크기는 세로가 5m에 가깝고, 가로는 7m가 조금 넘는다.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는데, 올여름 파리를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현장에서 이 그림을 직접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성인 키의 2배를 훌쩍 넘는 높이와 5∼6명을 감싸고도 남는 폭의 거대한 그림 앞에 서면 그 크기에 압도당하고, 당시 사람들이 겪었던 고통과 공포의 감정이 우리 안으로 밀려들어옴을 느낄 수 있다. 책 속의 작은 사진으로만 접했던 그림에 대한 감동이 현장에서 접할 때는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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