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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이탈리아 대법원은 세계가 주목할 만한 판결을 내놨다. 부모는 성년이 된 자녀를 부양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소송을 제기한 35세 남성은 시간제 음악강사로 일하는데 2만유로(약 2800만원)의 연봉으로는 생활을 꾸려나가기 힘들다며 부모에게 지원을 요구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장애를 가진 자녀는 법적 보호를 받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부모의 재정적 지원은 무한정 이어질 수 없다”고 판시했다. 그러고는 “어떤 상황에도 (성년) 자녀는 독립적인 생활을 위해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유사 소송이 수십만건에 달했다.

캥거루는 미숙(未熟) 상태로 새끼를 낳기 때문에 다른 짐승이 갖지 않은 주머니를 차고 있다. 캥거루의 이름을 차용해 만든 말이 캥거루족이다. 학교를 졸업해 자립할 나이가 됐는데도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젊은이들을 일컫는다. 청년 실업이 사회문제로 불거진 2000년대 초 생겼다. 캥거루족은 전 지구적인 문제다. 세계 도처에 같은 뜻의 말이 있다. 부모에게 얹혀사는 성인을 이탈리아에서는 ‘밤보치오니’(큰 아기), 일본에서는 ‘기생독신’, 캐나다에서는 ‘부메랑 키즈’라고 부른다.

갈수록 캥거루족 연령층이 높아지는 모양이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펴낸 ‘보건복지포럼 6월호’에 따르면 국내 만 19∼49세 남녀 중 29.9%가 부모와 동거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40대 중 미혼자가 부모와 동거하는 비율도 48.8%에 달했다. 만혼(晩婚)·비혼(非婚) 풍조가 퍼지고 취업난과 주거비 부담 등이 겹쳐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진짜 캥거루는 새끼 크기가 2㎝에 불과하고, 어미 배주머니에서 젖을 빨다 대개 1년 안에 독립해 나간다. 반면 인간 캥거루족들은 커다란 덩치에 남부럽지 않은 학벌을 갖추고도 부모에게 얹혀산다. 더구나 캥거루족이 의존하는 부모는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고 있다. 자립하지 못한 성인이 증가하면 저출산이 가중되고 노동인구는 감소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사회 불안을 조장할 수도 있다. 초고령사회에서 캥거루족의 증가세, 중년화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박창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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