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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시선] 靑, 단순한 ‘유희 공간’으로 삼아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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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6-28 23:20:05 수정 : 2022-06-28 23: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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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근현대사의 현장… ‘사적’ 지정 필요
보존·활용 계획 후 재개방해도 늦지 않아

5월10일 새로운 정부가 출발하면서 청와대가 전격적으로 일반인에 개방되었다. 그 전날까지 대한민국 대통령이 집무하던 곳이니 가히 파격적이다. 혁명에 의해 정부가 바뀐 것도 아니고 자유로운 선거에 의해 평화적으로 정권이 교체된 마당에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다. 마치 새 정부가 전투에서 승리한 후 획득한 전리품을 자랑하는 것 같다. 청와대 개방이 ‘소프트랜딩’으로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의 역사성을 상고해 보면 절대로 가볍게 다룰 곳이 아니다. 경복궁은 조선의 도읍지 한양의 기원이었다. 조선의 설계자들은 북악산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온 등선을 중심으로 경복궁을 계획했다. 이곳을 중심으로 서울이 탄생했다. 종묘와 사직, 시장과 육조거리가 이곳에서 비롯되었다. 청와대는 경복궁의 후원으로 임금이 사용하던 공간이었으니 경복궁으로 생각해도 무리가 없다. 이는 마치 창덕궁의 후원인 비원이 창덕궁인 것과 매한가지다. 또한 청와대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최고 권력기관이 위치했던 곳이라 우리 근현대사의 현장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해답이 나온다. 역사적인 장소, 즉 ‘사적’으로 지정해 관리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이다. 사적으로 지정하면 성급한 개발의 압력으로부터 제도적으로 청와대를 보호할 수 있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6월22일 청와대 관람객이 100만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엄중한 금단의 장소였던 청와대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바꾸어 말하면 이를 통해 청와대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을 읽을 수 있겠다. 이 현상이 일시적일지 지속 가능할 것인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필요하다. 우선 사람들의 호기심을 수용해서 무엇을 보여 줄 것인지 앞으로 고민해야 할 것이다. 흔히 사람들의 호기심과 이로 인한 문화유산 관광은 문화유산 보존의 엔진이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정도가 지나치면 문화유산을 훼손하는 주범으로 바뀌고 만다. 관광 위주의 무리한 관람은 문화재 훼손과 환경오염은 물론, 주민과 관람객 간의 갈등을 유발한다.

청와대는 그동안 어느 누구도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엄중한 최고의 국가보안시설이었다. 그러니 현황에 대한 조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청와대를 관리하고 이용하려면 현상이 어떠한지 알아야 한다. 전문가들의 조사가 시행되고 이를 바탕으로 보존과 활용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5월10일부터 이루어진 청와대 개방은 기간을 한정해 일시적 개방으로 마무리 지어야 한다. 모든 조사가 이루어지고 보존과 활용 계획이 마련된 다음에 다시 개방해도 늦지 않다. 급할 것이 없다. 한번 훼손되면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역사의 흔적이다.

청와대에 대한 조사가 끝나면 이를 바탕으로 보존·활용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보존을 등한시한 활용이 되어서도, 활용이 전제되지 않은 보존이 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우리가 역사적인 장소와 건축물을 보존하는 목적은 그 장소와 건축물이 그곳을 찾는 사람에게 역사적인 사실을 상기시키고 곱씹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보존만이 능사가 되면 안 된다. 역사적인 장소와 건축물을 바라만 봐야 하기에 비경제적일 뿐 아니라 방문객에게 매력적인 장소가 되기 어렵다. 사람들은 바라만 보는 것보다 만지고 이용할 수 있을 때 만족감이 높다.

우리는 궁궐 활용의 나쁜 선례를 가지고 있다. 일제강점기 일제는 ‘구태를 청산한다’며 경복궁의 전각을 공매 처분하고 그 자리에 각종 박람회를 열어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의 업적을 선전했다. 또한 창경궁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어 조선의 상징이자 신성공간을 창경원으로 격하했다. 이러한 선례를 보면 청와대가 단순한 유희의 장소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조선이 망한 지 한 세기가 지났지만 우리의 감정에는 궁궐이 가지는 상징성과 이로 인한 경외감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먼 과거는 인류 공동의 역사이지만 가까운 과거는 그 역사와 맞닿아 있는 사람의 감정’이라고 한 말이 지금 이 시점에 가슴에 와닿는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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