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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인문정원] ‘보랏빛 소’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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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6-24 22:41:17 수정 : 2022-06-24 22:4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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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태우고 온 보랏빛 소, 혁신가 상징
기대 컸던 대통령 행보 좀 더 지켜봐야

기원전 5세기 중국 주나라의 국립도서관장이자 역사기록물 관리자 직책에 있던 한 노인이 정치가 문란해지고 왕의 권력이 쇠락하자 홀연 나라를 버린다. 노인이 150세를 넘길 무렵이다. 어느 날 아침 함곡관 관령이던 윤희가 동쪽에서 보랏빛 소를 타고 오는 노인을 보았다. 함곡관은 오늘날 국경관리소로 여겨진다. 윤희는 노인에게 뻗쳐 나오는 신성한 기운을 보고 나아가 큰절을 하고 예를 갖춘다.

윤희는 노인에게 이 혼란한 세상에 사람들에게 지혜의 말을 남겨줄 것을 청한다. 노인은 며칠간 그곳에 머물며 죽간에 5000자 안팎의 글을 썼다. 이 초기 죽간은 ‘도경’과 ‘덕경’으로 구성되는데, 이것을 저본으로 편집된 것이 ‘도덕경’ 81장이다. 노인은 다시 보랏빛 소를 타고 서역으로 떠난다. 이때 윤희도 관직을 버린 뒤 흰소를 타고 노인을 따른다. 이 노인이 노자다. 두 사람의 행적은 신비에 가려진 채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노자는 200년을 더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질 뿐이다.

장석주 시인

도덕경은 2500년 동안 세상을 흔드는데, 지금도 많은 이들이 이 책의 심연을 들여다본다. 동양의 도와 무위자연 철학을 집대성한 도덕경은 이전에 없던 혁신 사상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도,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도 도덕경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나는 도덕경을 읽을 때마다 ‘노자를 태우고 왔다가 사라진 보랏빛 소는 무엇일까?‘를 궁금해했다.

보랏빛 소(purple cow)는 없다. 이것은 따분한 무리 속에서 단연 눈에 띄는 새로운 것을 표상한다. 실재가 아니라 상징으로 보아야 할 보랏빛 소는 현실에서 전에 없이 흥미로운 신제품, 아이디어, 새로운 감각으로 무장한 채 등장하는 새 세대, 약진하는 혁신가로 나타난다. 단조로운 현실을 뚫고 나오는 보랏빛 소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이며 화젯거리가 될 만하다. 마케팅 분야의 베스트셀러로 유명한 세스 고딘(Seth Godin)은 ‘보랏빛 소가 온다’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고, 예외적이고, 새롭고, 흥미진진”한 것이 보랏빛 소라고 말한다.

기업들은 끊임없이 혁신 제품을 만들어내라는 압력 속에 날마다 새 제품들을 시장에 쏟아내고, 엄청난 마케팅 비용을 투자한다. 그러나 제품들은 시장에서 밀려나 사라진다. 소비자들은 넘치는 제품들에 진절머리를 치고, 따라서 소비자의 필요와 흥미를 충족시키는 보랏빛 소가 아닌 것들을 버린다. 오늘날에는 ‘탈소비형 소비자’들이 많다. 웬만한 물건은 다 있고, 원하는 것도 다 있다. 없는 것은 시간뿐이다. 그들은 제품을 구매할 때 까다롭게 이모저모를 따진다. 오늘날 혁신 기업들은 보랏빛 소를 만들기 위해 낮밤을 지새운다.

우리는 왜 정치와 경제 등에서 보랏빛 소를 기다리는가? 새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선’은 따지고 보면 보랏빛 소를 뽑고 우리의 기대와 희망이 담긴 정치권력을 몰아주는 일이다. 문재인정부는 실패했다. 두 차례 치른 선거에서 국민은 민주당에 참패를 안겼다. 민주당은 자신들만이 보랏빛 소라고 외쳤지만 공허한 헛소리일 뿐이었다. 전임 대통령은 고향 마을로 귀향해 조촐한 삶을 꾸린다고 했다. 그 뒤 초파리 떼같이 웅웅대는 일부 보수 인사들이 이 마을로 몰려가 확성기로 욕설과 저주의 말로 아수라장이라는 얘기가 들려왔다.

많은 이들이 새 대통령에게 보랏빛 소라는 기대를 걸었다. 전 정부를 넘어서려는 새 정부의 의지는 의욕적이다. 한데 기자가 전임 대통령 사저의 소동에 대해 묻자 ‘법대로’ 처리하겠다고 답변했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이 사태는 법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에서 해결할 문제다. 현실 공간에서 상호충돌하는 크고 작은 갈등의 관리와 조정은 정치의 몫이고, 그 정치의 피라미드 최정상부에 있는 게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제 의무를 회피했다. 과연 새 대통령은 보랏빛 소가 되어 혁신으로 세상을 바꿔놓을 것인가? 아니면 분노한 ‘황색 소’가 되어 세상을 뒤흔들고, 정쟁으로 시끄럽게 만들 것인가? 그가 보랏빛 소일지도 모른다는 내 기대는 낮아졌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오직 시간만이 말해줄 것이다. 조금 더 기다리자. 지금은 대통령의 시간이다.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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