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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대형 방송사의 흔한 노동착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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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6-24 22:42:32 수정 : 2022-06-24 22:4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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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유튜버도 편집자에게 저런 대우는 안 한다.”

이쯤 되면 ‘무지를 가장한 악의’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방송업계 노동착취 관행이야 유명하지만 그 수준이 도를 넘고 있다. 뉴미디어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퉁치기에는 기저에 깔린 반노동적 인식이 너무 뿌리 깊다. TV에서 유튜브, 틱톡 등 디지털 플랫폼으로 패권이 넘어온 지가 언제인데 여전히 지상파의 이름값에 심취해 ‘이 정도면 후한 열정페이’를 지급한다고 여기는 듯하다. 최근 온라인에서 논란이 된 한 방송사의 구인글에 대한 이야기다.

정지혜 사회2부 기자

“날로 먹는다”는 비판이 쏟아진 해당 공고를 보면 업계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고개가 갸웃해진다. 한국에서 가장 큰 방송사 중 한 곳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자사 아카이브를 활용한 영상 편집, 채널 이벤트 기획 등을 맡기면서 ‘최저임금 적용’을 당당히 내걸었다. ‘최저임금이 곧 최고임금’이라는 역설을 이렇게 또 목도하는 순간이다.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이 아닌 2차 가공이긴 하지만 법이 정해놓은 최저 수준의 임금을 받을 업무인지에는 의문이 든다.

지원자격은 더 경악스럽다. 영상 편집 업무가 메인인데 개인 노트북을 지참하란다. 심지어 월 수만원의 구독료가 드는 영상·이미지 편집 프로그램명을 콕 집어 해당 툴 사용이 가능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 프로그램을 노트북으로 구동하려면 고가의 사양이 아니면 힘들다. 대기업 경력 한 줄이 절실한 청년, 취업준비생에게 이런 부담까지 꼭 안겨야 할까. 요즘은 개인 유튜버들도 영상 편집자를 구할 때 컴퓨터나 편집 프로그램 등을 지원하기도 한다. 조회수에 따른 부가 수익을 편집자와 나누는 등 철저한 인센티브로 동기 부여를 하는 곳도 적지 않다.

아직 끝이 아니다. 유튜브 채널 기획과 운영 분야에 관심이 있어야 한다니 단순 편집자를 구하는 것도 아니다. 영상, 섬네일 제작 능력 관련 포트폴리오를 받는다는 건 최저임금일지언정 경력자를 선호할 것이며 뉴미디어 감각도 보겠다는 요량이다. 다시 확인하자면 원격이나 재택근무하는 프리랜서가 아니고,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사무실에 출근하는 직원이다. 계약은 3, 6개월 단위로 갱신. 일주일 만근 시 주휴수당을 지급한다고 굳이 써놓았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상시근로자든 단기근로자든 주 15시간 이상 근무한 모든 근로자에 주휴수당이 적용되는데, 역시 논란을 더할 만한 부분이다.

1인 미디어보다 짠 방송사의 행태는 ‘이런 기회조차 간절한 이들’이 넘쳐나는 상황 속 반복되고 심화된다. 악조건투성이 공고에도 울며 겨자 먹기로 지원하는 이들이 많다고 다들 입을 모았다. 비슷한 다른 공고들에도 ‘근무 후 OOO 방송사명을 기재한 경력증명서 발급 가능’이라고 강조한 것을 볼 수 있는데, 극심한 취업난에 솔깃하지 않을 수 없는 한 줄인 것이다.

문제의 공고를 뜯어보다가 지원서를 받는 이메일 주소가 새삼 눈에 띄었다. 방송사 도메인의 그 이메일 아이디는 영화 ‘세 얼간이’의 명대사 ‘알이즈웰(alliswell)’, ‘다 잘 될 거야’라는 뜻이다. 요구사항은 많지만 돈은 쥐꼬리만큼 주겠다는 공고의 마지막에 만난 이 문장이 부조리의 대미를 장식하고 말았다.


정지혜 사회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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