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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나쁜 부모’ 찾아 삼만리… “아동복리 위해 국가 나서야” [뉴스 인사이드-한부모가족 ‘양육비 先지급’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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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6-25 20:00:00 수정 : 2022-06-26 11:2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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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끝에 법원 감치명령 받아내도
소재 파악 안 되면 집행할 방법 없어

‘한부모 지원’ 소득 기준도 비현실적
최저임금만 받고 일해도 ‘지원 불가’

부양 의무·아동 기본권 등 감안 필요
여가부,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 확대 계획

‘양육비 지급 지원’ 해외 사례
佛, 가족수당 공단 기금 활용 ‘先지급’
獨, 일부 아동에게 ‘최소부양비’ 지원
부산에 사는 김지연(가명·35)씨는 틈날 때마다 인천 연수구에 사는 지인들에게 전화해 전남편 A씨의 소재를 묻는다. 지난 2월, 3년의 지난한 소송 끝에 양육비를 주지 않는 A씨를 상대로 법원에서 감치명령을 받아냈지만 A씨는 자취를 감춰버린 뒤였다. 김씨는 “마음 같아서는 흥신소에 의뢰하고 싶은데 돈도 없다”며 “A씨를 찾으려고 지인들에게 A씨가 보이면 어디로 가는지 따라가 달라고 사정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정보를 올리는 게 고작”이라고 답답해했다.

 

A씨는 지금까지 4360만원의 양육비를 미납했다. 매달 두 아이의 양육비 140만원을 김씨에게 보내줘야 하지만 32개월간 A씨가 낸 양육비는 이혼 초에 쥐여준 120만원뿐이다. 김씨는 생계급여를 받으며 올해 중학생이 된 첫째와 5살 된 둘째를 홀로 키우고 있다. 폐 수술을 받고 몸이 좋지 않아 일도 할 수 없는 처지다. 김씨는 “외식은 거의 해본 적이 없다. 먹고 싶은 거 못 사주고, 학원을 보내는 건 엄두도 못 낸다”며 “앞으로 생활비가 더 필요해질 텐데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양육비를 안 주는 ‘나쁜 부모’를 제재하는 법이 강화되고 어려운 상황에 놓인 한부모가족의 지원도 늘었지만, 여전히 국내의 양육비 이행 현실은 열악하다. 이에 양육비 이행을 관리하는 담당 기관의 역할과 권한을 확대하고 양육비 선지급 제도를 도입해 아동의 복리가 훼손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양육비 이행이 개인 간 사적 채무가 아니라 부모의 부양책임과 아동의 기본권 측면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제재해도 양육비 안 주는 ‘나쁜 부모’

24일 여성가족부가 지난달 발표한 ‘2021년 한부모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부모가족 10명 중 8명(80.7%)은 양육비를 받은 적이 없거나, 최근에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부모가족의 월평균 소득은 전체 가구 평균의 절반(58.8%) 정도에 불과했고 자산은 전체 가구 평균 순자산액의 4분의 1(26.4%) 수준에 그쳤다. 한부모들은 가장 필요한 지원으로 ‘생계비·양육비 등 현금지원’(60%)을 꼽았다.

한부모가족의 현실은 개선되지 않는데 양육비 채무를 이행하지 않는 나쁜 부모의 실태가 끊임없이 전해지면서 이들에 대한 제재를 강화한 법이 지난해 시행됐다. 개정된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양육비이행법)을 보면 감치명령이 결정됐는데도 양육비를 주지 않으면 △운전면허 정지 △명단공개 △출국금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

법이 시행되고 13명의 명단이 공개됐고, 51명과 114명에 대해 각각 출국금지와 운전면허 정지가 요청됐다. 특히 양육비 미지급자를 제재하는 조치가 도입된 뒤 채무자가 처음으로 제재를 철회해달라며 양육비 채무액을 전부 또는 일부를 지급한 사례들이 나왔다. 일례로 양육비 1550만원을 미납해 운전면허가 정지된 B씨가 채무액을 완납해 정지 처분이 취소됐다.

나쁜 부모를 제재하는 조치가 효과를 내고는 있지만 처벌 요건이 까다로워 법의 실효성을 체감하기는 어려운 수준이다. 소송을 담당하는 가정법원은 위장전입 등으로 주소가 불분명한 미지급자들이 우편으로 보낸 서류를 송달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치명령을 기각하는 경우가 많다.

 

◆홀로 뛰고 벌고, ‘1인 다역’ 한부모

이경미(가명·37)씨는 3년간 소송을 진행해 감치명령을 받아냈고 직접 발로 뛰어 전남편 C씨의 실거주지를 찾아냈지만, 굳게 닫힌 문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씨는 “법원에서 상대방이 직접 서류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고 계속 진행이 미뤄져 C씨를 수십 번 찾아갔다”며 “감치명령을 겨우 받아도 C씨가 아예 무시하거나 잡아떼면 어쩔 도리가 없다”고 허탈해했다.

한부모 지원의 범위가 좁다는 지적도 있다. 이씨는 최저임금을 받지만 한 달 소득이 기준보다 높다는 이유로 한부모가족 양육비 지원 대상이 되지 못했다. 한부모가족으로 지원받으려면 기준 중위소득 52% 이하여야 한다. 2인 가구 기준 169만원 정도다. 올해 기준 2인 가구의 최저생계비가 195만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소득 수준이어야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씨는 “C씨의 양육비 미지급액이 2000만원이 넘고, 아이는 내년에 초등학생이 되는데 앞길이 막막하다. 제재든 지원이든 현실적이지 않고 개인에게 온전히 책임을 떠넘기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양육비는 아동의 긴급한 권리

양육비 불이행자를 처벌하는 전제인 감치명령까지 가는 절차를 간소화하고 양육비 이행을 관리하는 기관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소송 자체가 한부모가족에게 상당한 부담이 되기 때문에 행정기관 중심으로 양육비 이행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양육비는 아동이 건강하게 성장할 권리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선지급제와 같이 국가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양육비이행지원체계 5년의 평가와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2020)에서 연구진은 “양육비 이행을 단지 개인과 개인 간의 관계로만 둘 것이 아니라 국가가 아동복리의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해 일정 수준의 양육은 국가 차원에서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양육비 미지급에 따른 양육 부모와 아동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도 본격적인 양육비 지원책 논의에 나서기로 했다. 여가부는 다음 달부터 청소년 부모 아동 양육비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앞으로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 회수율 제고를 위한 관련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긴급지원은 정부가 생활고를 겪는 한부모가족에게 양육비를 먼저 지원하고 채무자에게 나중에 구상권을 청구해 돌려받는 제도다. 여가부 관계자는 “연구를 통해 회수율을 높이고 긴급지원도 확대할 계획”이라며 “양육비 불이행자 제재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美, 당국 긴밀협조로 연체 부모 위치탐색

 

양육비 이행과 지원 체계는 해외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는 주제다. 이혼과 동거, 혼외출산 등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짐에 따라 양육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는 아동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많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부모가 자녀 양육의 책임을 다하도록 양육비 지급을 담당하는 공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미국은 양육비 이행 지원을 전담하는 별도의 행정기관이 있다.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 내 자녀양육비 이행국(OCSE)에서 전담하는데 자녀 양육에 대한 부모의 책임을 독려하는 게 기관의 역할이다. 이 중 주목할 만한 부분은 부모위치탐색 서비스(FPLS·Federal Parent Locator Service)다. 각 주의 양육비 이행 관련 기관들이 양육비 채무자의 소재와 자산 등을 파악해 양육비를 지급도록 한다. 예컨대 양육비 채무자가 양육비를 연체했을 경우 채무자의 세금 환급액 등에서 연체한 양육비를 차감한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나쁜 부모’를 잡기 위해 국세청과 사법부, 주 정부의 관계 부처들이 긴밀히 협력하는 구조다. OCSE가 지난달 11일 게시한 예비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년간 미국에서 징수한 자녀양육비는 295억달러에 달하고 이 중 95%인 281억달러가 해당 가족들에게 전달됐다. 약 1320만명의 아동이 혜택을 받았다. OCSE는 이행기가 온 양육비의 67%와 체납된 사례의 69%를 징수했다.

 

프랑스와 독일 등은 양육비 선지급제를 운용하고 있다. 프랑스는 양육비가 제때 지급되지 않아 아동이 건강하게 성장할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사회보장제도로서 미지급 문제를 다룬다. 가족수당 공단에서 기금을 사용해 한부모가족에게 가족부양수당을 대신 지급한다.

 

독일은 아동 최소부양비에서 아동수당을 제외한 금액이 양육비로 선지급된다. 독일은 부모 수입에 상관없이 모든 아동에게 매달 219∼250유로(30만∼34만원)의 수당을 준다. 지난해 기준 독일의 아동 최소부양비는 6세 미만 자녀의 경우 348유로(약 47만원), 6세 이하 12세 미만 자녀라면 399유로(약 54만원), 12세 이하 18세 미만 자녀 467유로(약 63만원)다. 독일의 양육비 선지급제는 국가가 개인 대신 양육비 채무자에 구상권을 행사한다는 의미보다는 한부모가족과 아동의 권리를 지원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양육비 채무자가 사망하거나 경제력이 없더라도 양육비를 나라에서 선지급한다.


이정한 기자 h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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