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들, 유엔고문방지위원회(CAT) 회부 요청
윤 정부 별다른 움직임 없어…“입장 변함없다”
이용수 할머니 “위안부 문제 해결 지금 시작을”
“윤석열 대통령님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약속하신 위안부 문제 해결, 꼭 해주시겠죠. 지금이라도 시작합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94)는 윤대통령을 다시 만나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13일 방송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반드시 사과 받겠다고 했고, 그렇게 해주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정부는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어 위안부 문제 해결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죽기 전에 해결 좀 하자”…단독 회부 가능한 CAT로
이용수 할머니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는 지난해 10월부터 위안부 문제를 유엔고문방지위원회(CAT)에 회부할 것을 정부에 요청해 왔다. CAT는 고문 및 그밖의 잔혹한·비인도적인 또는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의 방지에 관한 국제인권조약이다.
이들의 당초 계획은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회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ICJ에 제소하려면 한국과 일본 정부 양측의 동의가 필요하다. 일본 정부의 동의를 구하기 쉽지 않은 데다, 문재인 정부도 이 요청에 답하지 않았다. 당시 최악으로 치닫은 한·일관계와 위안부 문제 회부시 일본이 독도문제를 ICJ에서 다루자고 주장할 가능성 등 여러가지를 고려한 결과로 보인다. 이에 차선책으로 제안한 것이 CAT를 통한 문제 해결이다. CAT는 일본 측 동의 없이 한국 정부가 단독으로 안건을 올릴 수 있다.
이 할머니는 지난해 10월 기자회견을 열고 위안부 문제의 피해자 중심 해결을 위해 이 문제를 CAT에 회부하자고 제안했다. 지난 1월엔 이를 지지하는 피해 할머니들의 서명을 청와대에 전달하기도 했다. 당시 외교부는 “다수 피해자 할머니 입장과 학술적인 문제 등 여러 의견을 참고해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피해 할머니들이 CAT 회부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은 이들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 위안부 피해자 김양주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 240명 중 생존자는 총 11명으로 줄었다. 모두 90세가 넘었다.
이 할머니는 이날 YTN에 출연해 “나눔의 집에 있는 할머니들이 ‘용수야, 죽기 전에 해결 좀 하자’고 말한다.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다”면서 “CAT는 대한민국 단독으로, 윤 대통령님 한 마디면 위안부 문제를 회부할 수 있다”고 말했다.
◆尹, “대통령 안 돼도 해결하겠다” 약속…언제 지켜질까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9월 대구 일본군위안부기념관을 찾아 이용수 할머니를 만났다. 당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줄 사람을 찍겠다. 공약할 수 있느냐”라는 이 할머니의 질문에 윤 대통령은 “일본의 사과를 반드시 이끌어내고, 할머니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았던 것들을 다 (해결)해드리겠다”고 말했다. 약속의 의미로 손가락도 걸었다.
그 후로 9개월, 윤 대통령 취임 후 한 달이 지났다. 이 할머니는 13일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님이 대통령 되기 전에 오셔서 ‘대통령이 안 돼도 이 위안부 문제 해결하겠습니다’라고 했다”면서 “당시 너무 감동해서 마치 해결이 다 된 것 같은 기분이었고 너무 고마웠다”고 회상했다. 또 “그 때 말씀을 믿고 있다. 다만 지금 (취임 초기라) 바빠서 못하고 계시는 것 같다”면서 “제가 한번 찾아뵙고 말씀드릴 생각이다. 약속하셨으니 꼭 해결해 주시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피해 할머니들은 새 정부에 큰 기대를 걸고 있지만 위안부 문제 해결은 기약이 없는 상황이다. 대선 전이던 지난 3월 ‘일본군위안부 ICJ 회부 추진위원회’가 각 후보들에게 ‘위안부 문제의 CAT 회부를 추진할 계획인가’, ‘추진할 경우 취임 100일 안에 진행할 것인가’ 질문했으나 윤 대통령 캠프는 답변하지 않았다.
당시 심상정 후보는 “위안부 문제를 CAT에 반드시 회부하고 취임 100일 이내 모든 절차를 시작하겠다”고 답했고, 이재명·안철수 후보는 “외교적 노력 등 다양한 해결 방법을 강구하겠으며 하루 빨리 절차를 시작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 당선 후 이 할머니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했으며, 취임 후에도 한·일관계 개선보다 위안부 문제 해결이 우선이라고 여러차례 주장했다.
정부는 아직 묵묵부답이다. 고물가와 북핵 등 시급한 현안이 산적한 데다, 악화된 한·일관계를 풀어야하는 숙제를 안고 출범한 윤석열 정부로서는 일본에 위안부 문제부터 꺼내는 것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날 “정부 입장은 5개월 전과 변함이 없다”며 “다양한 의견과 외교적 상황을 고려해 위안부 문제의 국제기구 회부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재차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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