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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가족의 ‘전쟁 같은 하루하루’ [심층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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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6-13 06:00:00 수정 : 2022-06-13 07:4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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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발달장애인 가족의 삶 (상)

병원비·24시간 돌봄 부담 신음
35%가 “극단 선택 생각·시도”
정부·지자체 지원 ‘별따기’
독박돌봄에 아파도 진통제로 버텨

복지관·보호센터 등 중증 거부
‘돌봄 병행’ 경제적 활동 어려움
차별적 시선에 정신적 상처도

“친구와 커피 한잔 상상도 못해
돌봄시스템 국가가 적극적 개입
예산 늘리고 시설 확충 해줘야”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살고 있어요.”

 

인천 서구에 사는 김지윤(60)씨는 매일 아침 전쟁을 치른다. 37세 발달장애인 아들과 맞이하는 아침은 수십년간 반복해도 버겁다. 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에 가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실랑이가 벌어진다. 중증 발달장애를 갖고 있는 아들은 말을 하지 못해 의사소통이 불가능에 가깝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한다. 물건을 부수거나 길거리로 뛰쳐나가는 돌발 행동은 일상이다.

 

지난 3일도 그랬다. 센터에 가기 위해 김씨의 남편이 아들을 씻기려고 했지만 씻기 싫어하는 아들의 저항이 시작됐다. 아들의 키는 178㎝. 정신 연령은 영유아에 가깝지만 신체는 건장한 성인 남성이 된 지 오래인 아들을 남편도 쉽사리 제어하지 못한다. 속상한 마음에 남편의 언성이 높아졌고, 아들의 몸부림은 심해졌다. 화장실에 있는 샴푸 등 물건들을 던지던 아들은 거실로 나와 식탁 위에 있던 물건들도 부수기 시작했다. 김씨가 말리려고 하자 아들은 김씨의 손을 깨물었다. 그의 손에 선명한 이빨 자국이 남았다.

 

30분가량 지나서야 아들은 진정됐고, 김씨 부부는 이미 녹초가 됐다.

 

김씨는 “이런 일이 매일 반복되는데 그럴 때마다 가슴이 터져 나갈 것 같다”면서 “112 신고도 자주 한다. 소음 때문에 이웃이 하기도 하고, 아들과 남편의 다툼이 심각해지면 내가 직접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도 만나기 싫고 무기력하다”면서 “이젠 나도 지친다. 인생살이가 싫어졌다”고 괴로움을 토로했다.

 

발달장애인 가족들의 삶이 무너지고 있다. 장애를 가진 자녀와 사는 부모가 고단한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생을 포기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잇따른다. 지난달 서울 성동구에서는 40대 여성과 6세 발달장애인 아들이 추락해 숨진 채 발견됐고, 지난 3일에는 경기 안산에서 홀로 20대 발달장애인 형제를 키워 온 60대 남성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최근 2년 동안 추산한 비슷한 사례만 최소 20건에 달한다.

12일 서울시와 서울시복지재단이 지난 4월 발표한 ‘고위험 장애인 가족 지원방안 연구’에 따르면 장애인 돌봄자 374명 중 35%가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거나 시도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의 36.7%는 우울·불안 등 정신 건강 문제를 겪고 있다고 했다.

 

◆몸도 마음도 무너지는 장애 가족의 삶

 

김씨의 삶이 무너지기 시작한 건 아들의 고등학교 무렵 때다. 더는 아들의 상태가 나아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어야 했던 시기다. 그 전까지는 김씨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처음엔 아들의 말과 행동이 조금 더디다고 생각했다. 유치원에 갈 나이에도 발달이 늦자 병원을 갔고, 발달장애 진단을 받았다. 청천벽력 같았지만 김씨 부부는 주저앉지 않고 아들을 위한 치료에 전념했다. 언어·운동·음악치료 등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검사는 끝없이 이어졌고, 약도 먹었다. 열심히 치료하면 나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증상은 더 심해졌다. 초·중·고등학교를 통합해 다닐 수 있는 경기 안산의 한 특수학교에 다니면서 치료를 이어갔지만, 아들의 돌발 행동은 더 잦아졌다. 학교를 졸업하면서 막막함은 더 커졌다. 언제, 어떤 돌발 행동을 할지 모르는 아들을 24시간 내내 돌보는 것은 오롯이 가족 몫이 됐다. 복지관과 주간보호센터 등을 알아봤지만 대기가 길고 중증 발달장애인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아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한 달을 다니고 쫓겨나는 경우도 있었다. 김씨는 “학교를 나오고 성인이 된 뒤 15년 넘게 여러 시설을 떠돌고 있다. ‘절망의 도가니’에 빠진 것 같다”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경제적으로도 내리막을 걸었다. 공무원이던 남편 월급으로는 병원비를 충당하기 어려웠다. 친정에 손을 내밀고 대출도 받았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남편은 공무원을 관두고 사업을 시작했다. 형편이 나아지고 악화하기를 반복하다가 사업 실패로 부도까지 났다. 돌봄에만 집중하던 김씨는 3년 전부터 작은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남편은 사업 실패 이후 정신적으로 불안해 일을 못 하고 있다”며 “아들이 센터에 가고 활동지원사가 잠시 돌봐줄 때 편의점을 열고 있다”고 했다.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차가운 시선과 차별은 가족을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더 피폐하게 했다. 아들이 발달장애라는 이유로 집주인에게 거부당하는 게 다반사였다. 김씨의 큰딸은 주변으로부터 수도 없이 놀림당하며 자랐다. 그럴 때마다 김씨는 혼자 울음을 삼켰다.

 

김씨는 현재 우울증뿐 아니라 고령에 접어들면서 몸도 성한 곳이 없다. 쓸개를 절제하고 신장도 한쪽 떼어냈다. 입원해야 할 때도 있지만 아들을 돌봐야해 그마저도 어렵다. 김씨는 “우리 엄마들은 아파도 입원도 못 한다.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다”며 “매일 집에서 진통제만 쏟아부으며 버티고 있다”고 했다.

지난 3일 오전 인천 서구에 사는 김지윤(60)씨의 발달장애인 아들 A씨가 목욕하는 과정에서 몸부림을 쳐 화장실 안이 어질러져 있다. 김씨 제공

◆7살 발달장애 아들… “인정하고 싶지 않아요”

 

서울에 거주하는 40대 이모씨는 중증 발달장애인 아들을 키우며 우울증을 앓고 있다. 둘째 아들이 20개월이 지나도 잘 걷지 못해 대학병원을 찾아갔다가 발달장애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들었다. 이씨의 아들은 7세가 됐는데도 발음이 불안정하고, 숫자를 세지 못한다. 근육 발달이 더뎌 잘 걷지도 못한다. 아이가 나아지기를 바라며 여러 치료를 이어오고 있지만, 정작 자신을 돌보지 못했다. 우울증이 생기면서 남편과 갈등도 잦아졌고, 결국 이혼까지 했다.

 

남편에게 생활비를 일부 받지만 아이 치료비까지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두 자녀를 혼자 돌봐야 해서 고정적인 직장을 갖기도 어렵다. 이씨는 “사무 보조 등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아이들을 키우고, 살림도 하려면 일에 시간을 다 쏟을 수 없다”며 “예전엔 심리 상담을 받기도 했지만 이제는 돈도, 시간도 부족해 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신적 고통은 더 커져서 아이들한테 짜증을 내는 등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울먹였다.

 

이씨는 여전히 아들에게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도, 인정하고 싶지도 않다. 그는 “바보 같은 희망을 버리지 못하면서도, 아이가 커서 어떻게 살지 불안하다”고 말했다.

 

◆“살고 싶다… 정보 제공·충분한 지원 못 받아”

 

부모들은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면서 필요한 정보를 얻지 못하고 충분한 지원도 받지 못했다고 입을 모은다. 발달재활서비스와 주간활동지원서비스 등 정부와 지자체가 여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수개월 이상 대기해야 하고 탈락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실제 보건복지부의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의 13.5%만 활동지원 등 생활지원서비스를 이용한 경험이 있었다. 이마저도 상당수가 하루 평균 3∼4시간이다. 김씨의 아들도 하루 2∼3시간만 활동지원서비스를 받고 있다. 중증장애인 아들을 활동지원사들이 꺼리는 경우가 많아 지원을 받기도 쉽지 않았다.

이씨는 자신과 아들을 ‘유목민’이라고 표현했다. 아들이 다닐 수 있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찾고 복지관 등에서 지원을 받기 위해 차로 수십분 거리에 있는 곳들까지 수소문하기 때문이다. 현재 이용하고 있는 발달재활서비스도 신청 후 6개월 지난 뒤에야 받을 수 있었다. 여러 복지관을 찾았지만 “대기자가 많다”, “예산이 부족해 올해는 힘들다” 등의 답변이 이어졌다. 그는 “아무도 장애인 부모로 사는 방법과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검색하고 주민센터를 찾아가보지만 대기자가 많다는 이유로 못 받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이어 “국가의 도움이 더 확대되면 삶의 질이 훨씬 나아질 것”이라면서 “발달장애인을 낳아도 걱정없이 살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우리의 소중한 가족이고 사회 구성원이다”라고 강조했다.

 

장애인단체는 비극적인 사건이 반복되는 것을 두고 ‘사회적 타살’이라고 외친다.

 

발달장애인 아들을 둔 임현주(58)씨는 “(지원서비스) 정보를 찾는 것도 한계가 있다”며 “초등학교 입학할 때, 군대에 갈 때 통지서가 오듯이 장애인 가족을 위해 정부가 미리 길을 제시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장애인이 태어나면 부모가 돌봄을 ‘독박’ 쓴다. 부모도 사람인데 사회생활을 할 수 없고, 친구와 커피 한잔 하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다”며 “장애인 돌봄 시스템을 강화할 수 있도록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한서·조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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