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단독] 환경부 산하기관 시험결과 ‘수정’ 관행 사라질까… ‘독립성 보장’ 규칙 추진

관련이슈 디지털기획

입력 : 2022-06-08 12:04:30 수정 : 2022-06-08 12:09:27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 시험의뢰 규칙’ 개정안 마련
시험결과 누설 금지·독립성 보장 내용 포함
제재 없어 실효성에 한계 있을 듯
환경부 측 “선언적 내용…위반 시 행정감사 지적사항”
노웅래 의원 “분석에 영향 미칠 수 있는 행위 전면 금지해야”

“3페이지에 벤젠 내용 부분은 아예 빼면 좋겠다고 하셔서…”

 

이는 지난해 8월 환경부 원주지방환경청 관계자가 시멘트 사업장 환경조사를 수행한 국립환경과학원 측에 보낸 메일 내용 중 일부다. 이 관계자는 “저희 과장이 검토해보고 수정한 부분은 빨간색으로 표시했다”며 이같은 의견을 전달했다.

 

지난해 8월 환경부 원주지방환경청 관계자가 시멘트 사업장 환경조사 결과에 대한 수정의견을 담아 국립환경과학원에 보낸 메일 내용 중 일부.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실 제공 

이 조사는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실이 과학원에 분석을 요청한 건이었다. 과학원은 의원실 보고를 앞두고 원주청과 환경부에 분석결과를 수차례 공유했고, 이 과정에서 일부 내용이 수정됐다. 결과값 자체를 조정한 건 아니었지만, 보고서 본문에서 벤젠 등 일부 결과값을 누락시키는 등 사실상 조사결과를 왜곡했다. 당시 원주청장은 이같은 문제가 제기된 지난 국회 국정감사에서 “벤젠 수치가 유의하지 않다고 봐 본문 내용에서만 삭제한 것”이라며 “자료 자체를 빼거나 수정한 사실은 없다”고 해명했다.

 

그간 환경부와 지방환경청은 이처럼 관행적으로 의뢰자 동의 없이 산하기관의 시험결과를 공유받아 직접 고치거나 수정 의견을 내왔다. 환경부는 이같은 공유·수정절차에 대해 ‘부차적인 내용 조정’일 뿐 ‘연구 조작’이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상급기관의 외압으로 연구 객관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는 사안으로 보인다. 

 

이같은 우려가 계속되자 환경부가 뒤늦게 시험 수행기관의 독립성 보장을 규정으로 못박기로 했다. 

 

8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환경부는 최근 내부적으로 ‘국립환경과학원 시험의뢰 규칙’ 개정안을 마련했다.

 

이 개정안에는 국립환경과학원장이나 시험수행자가 시험 의뢰인 동의 없이 의뢰받은 시험결과를 제3자에게 누설해선 안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원장에게는 시험의 공정성·객관성 확보를 위한 시험 수행자의 독립성 보장 의무를 부여하기로 했다. 상급기관인 환경부나 지방환경청이 규칙상 임의로 시험결과를 확인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개정안에 대해 “현재 실무적으로 검토 중인 단계로 다음달까지는 내부 보고를 거쳐 연내 개정 작업을 완료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개정안은 입법예고, 법제심사 등 절차를 거쳐 시행된다.

 

다른 산하기관인 한국환경공단에 대해서도 자체 내부 운영예규 개정을 통해 시험·검사 등 업무의 독립성 보장과 그 결과의 제3자 유출 금지를 명문화하기로 했다. 한국환경공단은 이같은 내용을 담은 ‘환경 시험 검사 및 측정 분석 운영예규’ 개정안을 지난달 사전예고했다.

 

한국환경공단이 지난해 9월 영산강유역환경청에 포스코 광양제철소 BET 슬러지 분석결과 수정본을 보낸 메일 내용 중 일부.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실 제공 

다만 이같은 규칙 수준의 명문화만으로 환경부 산하기관의 독립성이 완전히 보장될 거라고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실제 한국환경공단의 경우 기존 예규에 이미 시험·검사 담당자의 기밀 누설 금지 의무가 명시돼 있었지만 그간 환경부의 시험결과 수정 관행을 막진 못했다. 한국환경공단은 노웅래 의원실이 의뢰한 포스코 광양제철소 BET 슬러지(석탄 유해성분 제거 시 발생하는 폐수를 침전시켜 만든 찌꺼기) 분석결과를 지난해 9월 영산강유역환경청에 전달하고 수정 지시를 받은 게 이미 확인된 바 있다. 

 

환경부나 그 산하기관이 시험결과 공유·수정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대로 갖지 못한다면 새로 마련된 규정 또한 ‘휴지조각’이 될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실제 국립환경과학원은 문제 제기 이후 최근까지 독립성 보장 규정을 마련하는 데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온 것으로 전해졌다. 규정 개정 작업을 과학원 내 법무담당자가 아닌, 국정감사에서 시험결과 수정 사례로 제시된 조사 담당 연구원에게 맡기는 식으로 대처한 것이다. 결국 과학원은 한국환경공단처럼 자체 예규가 있는데도 거기에 독립성 보장을 반영하지 않았다. 대신 환경부가 이번에 직접 나서 관할 규칙을 고치는 식으로 과학원의 독립성 보장을 명문화하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어렵사리 개정안이 마련됐지만 여기에 위반에 따른 제재가 명시돼 있지 않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환경부 관계자는 이같은 지적에 대해 “이번에 개정하는 규칙은 선언적인 내용을 담았다고 봐야 한다”며 “지침 성격이라 제재 규정은 따로 없지만, 이걸 어길 경우 행정감사에서 지적을 받을 순 있다”고 말했다. 

 

노웅래 의원은 “독립성 보장 규정이 신설됐음에도 제재 규정이 없다는 것은 지키지 않겠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분석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는 전면 금지하고, 연구자의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여자)이이들 미연 '순백의 여신'
  • (여자)이이들 미연 '순백의 여신'
  • 전소니 '따뜻한 미소'
  • 천우희 '매력적인 포즈'
  • 수지 '하트 여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