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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지방대… 정원 70%도 못 채울 판 [심층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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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6-07 06:00:00 수정 : 2022-06-06 19: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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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령인구 급감에 폐교 위기감… 신입생 모집 때 선물 공세

2024년 10곳 중 3곳 충원율 70% 이하
등록금 등 수입 줄어 재정부실 악순환

“입학생 전원에 아이패드·현금 제공” 광고
교수들 고등학교 돌며 ‘입학설명회’ 영업
2021년 4년제 국립대 일부 학과 미달 충격
서울은 입학생 늘어 수도권 집중 영향도

지방대 “교육부 평가 ‘부실 대학’ 낙인”
“다 같이 살려다 다 같이 몰락” 반론도
윤석열 정부 ‘지자체에 권한 위임’ 제시
단체장 권한 크게 작용… 자율성 저해 우려

광주대, 10개 학과·부 성인 중심 개편
中·동남아 등 유학생 전용 홈피 개설

“○○대 가고 아이패드 받자!”

 

올해 대학 신입생 모집을 앞두고 광주의 한 대학에서 내건 광고 문구다. 전년 신입생 모집 당시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선물’로 준다고 해 화제가 됐던 해당 대학은 올해도 등록자 전원에게 아이패드를 주겠다고 선전했다. 이에 질세라 합격자에게 현금 50만∼100만원을 준다고 홍보하는 대학도 등장했다. 학원 수강생을 모집하는 것 같은 대학 광고를 보며 씁쓸하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이런 광고들은 현재 지방대가 처한 현실을 보여준다. 높은 경쟁률을 자랑하는 수도권 주요 대학과 달리 지방대는 “제발 우리 대학에 와 달라”고 영업을 하는 상황이다. 지방대 교수들은 고등학교를 돌며 입학설명회를 하고, 수시 접수를 독려하기 위해 교사들에게 ‘접대’를 하기도 한다. 이러한 노력은 ‘이대로 가다간 대학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학령인구가 급감하면서 대학이 느끼는 불안감은 현실이 되고 있다.

 

◆‘벚꽃 위기’는 미래 아닌 현실

 

대학들의 위기감은 특히 비수도권, 전문대에서 고조되고 있다. 6일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대학의 평균 충원율은 91.4%지만 △수도권 일반대 99.2% △비수도권 일반대 92.2% △수도권 전문대 86.6% △비수도권 전문대 82.7%로 격차가 크다. 지난해 지방대를 중심으로 대규모 정원 미달 사태가 발생했는데, 전남대 등 4년제 국립대 일부 학과도 정원을 채우지 못해 충격을 줬다.

 

절대적인 신입생 수가 줄어든 데다, 수도권으로 몰리는 탓이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의 분석 결과 2010년 대비 2020년 대학 입학생 증감률은 전국 평균 -8.2%인데 특히 △울산(-17.9%) △경남(-16.6%) △전남(-16.4%) △경북(-15.6%) 등에서 감소율이 높았다. 반면 서울(0.9%)과 인천(1.8%)은 오히려 입학생이 늘었다. 수도권에서 먼 대학일수록 신입생이 감소하면서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는 이야기가 사실로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현상은 앞으로 더 심화할 것이란 점이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26만3000명으로, 지난해 대학 입학 정원(47만2000명)의 절반 수준이다. 20년 뒤에는 대학 입학생이 현재의 절반가량으로 줄어드는 셈이다. 대학교육연구소는 2024년 지방대의 34%, 2037년에는 84%가 정원의 70%를 채우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신입생 미충원은 곧 대학의 경영 위기다. 한국사학진흥재단 자료를 보면 2020년 국내 사립대 재정규모 중 등록금 수입은 53.7%로, 미국(30.4%)보다 훨씬 높다. 신입생이 들어오지 않으면 대학 수입이 줄고, 재정이 부실해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구조조정 나선 교육부… 지방대는 불만

교육부는 3년 단위로 대학 기본역량을 진단하고, 탈락 대학에는 연간 50억원에 달하는 지원금을 제한하는 식으로 대학 자율혁신을 꾀하고 있다. 지난해 285곳 평가 결과 52곳이 탈락했다. 최근 추가 심사를 통해 13곳이 구제됐지만, 탈락 대학 사이에선 여전히 반발이 나온다. 지방대는 평가 자체가 자신들에게 불리하고, 재정지원을 받지 못한 대학은 ‘부실 대학’으로 낙인찍혀 신입생 모집에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고 호소한다. 한 지방대 관계자는 “현재 평가는 당연히 수도권 대학에 유리하다. 수도권 대학은 다 남기고 비수도권 대학은 퇴출하는 것이 옳은 방향은 아니지 않나”라며 “비수도권 대학 중 살려야 할 곳엔 과감한 지원을 해줘야 하는데 현재 제도는 거꾸로 가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지방대 관계자는 “교육부의 정원 감축 계획은 대부분 비수도권 위주”라며 “우선 수도권 대학 정원을 줄여야 비수도권 대학이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최근 사립대 총장들과의 간담회에서도 이 같은 불만이 나오자 “향후 정부 주도의 획일적 평가는 개편하고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지방대들은 보다 적극적인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죽어가는 대학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일각에선 정부가 대학 눈치를 보지 말고 오히려 좀 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반론도 나온다. ‘살을 깎아내는’ 고강도 개혁 없이는 대학 위기를 타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입시업계 관계자는 “현재 대학이 너무 많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상당수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며 “다 같이 살려 달라고 버티다 다 같이 몰락할 수 있다. 지방대들은 투자만 바라거나 평가를 두려워하지 말고 현실을 인식해야 하고, 교육부는 피를 묻히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지자체에 권한 위임’ 대안 될까

윤석열정부는 지역대학에 대한 행·재정적 권한을 중앙정부에서 지자체로 위임해 지방대와 지자체의 상생을 모색한다는 방안을 내놨다. 대학이 문을 닫으면 인구가 줄어드는 등 지역사회 경제에도 큰 피해가 돌아간다. 지방대 위기는 곧 지역 위기인 만큼 지자체와 대학, 지역 산업계 등이 참여하는 ‘지역고등교육위원회(가칭)’를 설치하고, 지역에서 인재를 길러 취업까지 연계해 지역 생태계를 활성화한다는 것이 요지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지방대 육성은 지역 기업과 연계해 고려해야 한다”며 지자체 차원에서 통합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제언했다.

전국대학노동조합과 전국교수노동조합 등이 지난 2월 강원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방 대학 3분의 1이 10년 내 폐교될 수 있다"며 정부가 지방대학을 살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전국대학노동조합 강원대학교지부 제공

대학에서는 오히려 지방대 상황이 더욱 열악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대학교육연구소는 “지방대 행·재정 권한을 지자체에 위임하면 지자체장 권한이 크게 작용할 것”이라며 “지자체장과의 친소관계나 선거를 의식한 지역사회 영향력 등에 따라 지원이 몰릴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지자체 입장에선 대학이 문을 닫으면 지역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일단 대학이 문을 닫는 것을 막기 위해 부실 대학에 무리해서 재정을 투입하고, 정작 육성해야 할 대학에는 지원금이 돌아가지 않는 등 역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전국대학노동조합 등도 “재정 확충 방안이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학 사무를 지자체로 위임하는 것은 골치 아픈 지방대 문제를 지방에 떠넘기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수(교육학)도 모든 권한이 일시에 지자체로 내려가면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이 각자 있다. 지자체가 지방대를 부속기관처럼 여기고 규제하면 대학의 자율성, 창의성을 억누르는 최악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며 “정부가 모든 권한을 지자체에 한 번에 주기에는 지자체도 준비가 안 돼 있고 부작용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교육부와 지자체의 합리적인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다만 정부가 이런 방안을 내놓은 것은 각 지자체가 지방대 살리기에 좀 더 책임 있게 참여하라는 취지라고 생각한다”며 “지자체는 지방대와 공동운명체라는 파트너십을 가지고 지방대 지원을 늘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각 대학, 만학도·외국인 유학생 유치로 돌파구

 

각 대학은 살아남기 위해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학령인구 감소는 막을 수 없는 흐름인 만큼 많은 대학이 외국인이나 ‘늦깎이’ 대학생을 유치하는 데 힘을 모으고 있다.

 

6일 종로학원의 ‘고등교육기관 학교급별 입학자 연령 현황’에 따르면 2021학년도 일반대 신입생 중 26세 이상 입학자는 2.6%(8435명)로, 10년 전(4105명)보다 2배 이상 늘었다. 26세 이상 입학생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전남(8.5%)이었고, 이어 경북(8.2%), 광주(6.3%), 부산(5.2%) 등의 순이었다. 전문대 신입생도 26세 이상이 같은 기간 12.2%에서 14.6%로 높아졌다.

 

이러한 변화는 고용노동부가 설립한 한국폴리텍대학 등 기능대 입학생이 늘어난 영향도 있지만, 각 지방대에서 성인 학습자 유치에 공들인 결과로 분석된다. 과거 성인 대상 대학 과정은 통상 평생교육원 중심으로 진행됐지만, 최근에는 아예 성인만 입학 가능한 정규 과정을 늘리는 추세다.

 

광주대는 몇 년 전부터 만 25세 이상 성인 대상 정규 대학교육을 강화해 ‘성인친화형 대학’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25세 이상을 위한 다양한 교육·장학금 프로그램은 운영하는 것은 물론, 산업기술경영학부 청소년상담·평생교육학과 경영학과 음악학과 사회복지학부 등 10개 학과·부를 성인중심 학과·부로 개편했다. 동서대(부산)도 실버컨설팅학과 등 늦깎이 대학생을 위한 6개 학과를 운영 중이고, 대구한의대는 30세 이상 성인이나 특성화고 졸업 3년 이상의 직장인만 입학이 가능한 미래융합대학을 개설했다.

 

외국인 유학생 유치도 자구책 중 하나다. 각 대학은 외국인 전용 홈페이지를 만드는 등 동남아시아 국가와 중국을 중심으로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방안들을 고심하고 있다.

 

다만, 외국인 유학생의 경우 입학 후 중도 탈락하는 비율이 높아 안정적인 정착이 숙제다. 또 외국인 유학생이 비자가 만료된 뒤에도 귀국하지 않고 불법체류자로 남는 사례가 늘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9년 유학비자 입국자 중 불법체류자 비율은 2.8%였는데, 지난해 1∼10월에는 4.9%로 높아졌다. 이 때문에 단순히 ‘머릿수’를 위한 무차별적 유학생 유치보다는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학사 운영, 전용 프로그램 확충 등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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