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엄한 이미지 떨치고 화기애애 분위기
"외삼촌 두 분이 참전용사" 바이든 말에
아던 "저는 할아버지가 참전용사였는데"

“나와 나이차는 많지만 훌륭한 친구(a not-so-old but a good friend)를 만나니 기분이 좋네요.”
“총리님은 (젊으시니까)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you can do anything you want).”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백악관을 방문한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기 전 덕담처럼 한 말이다. 1942년 11월생인 바이든 대통령은 79세, 1980년 7월생인 아던 총리는 41세로 바이든 대통령이 무려 38살이나 더 많다. 바이든 대통령의 막내딸 애슐리 바이든이 1981년생이란 점을 감안하면 아던 총리는 말 그대로 ‘딸뻘’이다. 최근 총기난사 참사 등으로 지지율이 크게 하락한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기회를 젊은 유권자들에 어필할 기회로 여겼는지 근엄한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화기애애하게 분위기를 이어갔다.
백악관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집무실에서 아던 총리와 본격적인 정상회담에 들어가기 전 취재진과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아던 총리를 “나와 나이차는 많지만 훌륭한 친구”라고 치켜세웠다. 아던 총리에게 발언권을 넘기며 “총리님은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다”고도 했다. ‘이제 40대 초반으로 젊으니 앞으로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취지로 받아들여졌다. 아던 총리는 “멋지네요(Great)”라며 폭소를 터뜨렸다.
미국은 최근 텍사스주(州) 유밸디의 한 초등학교에서 총기난사로 어린이 19명을 포함해 21명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벌어졌다. 범인인 18세 남자 고교생은 출동한 경찰에 의해 현장에서 사살됐다. 지난달 29일 바이든 대통령은 부인 질 여사와 유밸디에 가서 희생자 유족을 위로했다.
마침 뉴질랜드도 2019년 3월 크라이스트처치의 한 이슬람 사원에서 총기난사로 51명이 희생되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범인은 당시 28세의 백인 청년이었는데 이슬람에 대한 혐오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살인 등 혐의로 법원에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아던 총리는 이 크라이스트처치 대참사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탁월한 리더십을 선보였다. 피해자 유족에 대한 진정성 있는 위로로 슬픔 극복과 사회통합을 앞당겼다. 총기 규제 강화 방안을 신속히 마련해 내놓음은 물론 증오와 혐오를 부추기는 일부 소셜미디어(SNS)에 대한 감시 필요성을 외쳐 국제사회 호응도 이끌어냈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 이후 아던 총리 인기가 급상승해 이듬해인 2020년 10월 총선에서 그가 이끄는 노동당이 압승을 거뒀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유밸디 총기난사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아던 총리의 리더십을 많이 참고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아던 총리를 향해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일어났던 것과 같은 폭력 및 극단주의 억제, 증오와 혐오를 부추기는 온라인 공간 정화 등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며 “총리님의 리더십은 세계 무대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찬사를 보냈다. 이에 아던 총리는 유밸디 참사에 관해 애도의 뜻을 표한 뒤 “우리는 필요하면 이 자리에서 아픈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고 답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원한다면 자신과 뉴질랜드 정부가 크라이스트처치 대참사를 어떻게 수습할 수 있었는지 노하우를 들려주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물론 바이든 대통령의 이같은 노력에도 둘의 나이차는 숨길 수 없었다. 그는 미국과 뉴질랜드의 오랜 우정에 관해 언급하던 중 두 나라가 연합해 제국주의 일본과 싸운 제2차 세계대전을 거론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2차대전 때 저희 외삼촌 두 분이 태평양 전선에 배치돼 뉴기니를 지키다가 전사했다”며 “안타깝게도 시신을 찾지 못했다”고 소개했다. 그러자 아던 총리는 이렇게 화답했다. “아, 대통령님은 2차대전 때 삼촌이 태평양에서 싸우셨군요. 저는 할아버지가 태평양에서 복무하셨습니다.” 무려 38살의 나이차가 여실히 드러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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