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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보름도 안 돼 ‘위안부’ 끌려가… 中 피해자 3명 추가 확인

입력 : 2022-05-30 16:25:13 수정 : 2022-05-30 16: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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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난징대학살 피해 동포 기념회가 최근 추가로 확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왼쪽부터 101세 팡할머니, 95세 어우할머니, 91세 선할머니. 관찰자망 캡처

101세인 팡(方)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던 그 날을 여전히 기억한다. 1939년 당시 18세였던 그는 시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다. 아이를 낳은지 보름도 되지 않은 어느날, 일본군이 집에 들이닥쳤다. 시아버지는 일본군을 막아 섰다가 총검에 목숨을 잃었고, 일본군은 집을 약탈한 뒤 팡 할머니를 데려갔다. 여드레가 지나 집에 돌아왔을 때, 아기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이름도 지어주지 못한 아기였다. 팡 할머니는 일본군에 폭행당한 후유증으로 다시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

 

중국 후난성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 할머니 세 명이 추가로 확인됐다.

 

난징대학살희생동포기념관은 29일 101세 팡 할머니와 95세 어우(欧) 할머니, 91세 선(沈) 할머니를 찾아 위안부 피해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자원봉사자들은 세 할머니와 가족들, 마을 주민들을 만나 일본 침략 당시의 상황을 전해 들었다.

 

어우 할머니는 1941년 일본군에 끌려갔다. 당시 그는 14세에 불과했다. 일본군이 마을에 왔을 때 사람들이 도망갔지만 어우 할머니는 귀가 들리지 않아 도망가지 못하고 붙잡혔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어우 할머니가 집에 돌아온 뒤 가족들은 그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 알게 됐다. 어우 할머니는 일찍 결혼했지만 아이를 낳을 수 없어 쫓겨났고, 아무도 그를 모르는 먼 곳으로 다시 시집을 갔다. 여동생의 일에 분노한 어우 할머니의 오빠는 군에 지원해 항일 전쟁에 참전했다. 어우 할머니의 오빠는 자원봉사자들과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눈물을 흘렸다.

 

선 할머니는 13세에 위안부가 됐다. 일본군이 그가 살던 산골짜기를 거점으로 삼으면서 마을 사람들을 데려갔다. 남성은 강제노역을 시켰고 여성은 위안부로 보냈다. 선 할머니는 당시 집안의 가장 큰 재산이었던 소를 끌고 도망가다 일본군의 눈에 띄었다. 그는 소와 함께 끌려갔다.

 

선 할머니는 일본군이 퇴각한 뒤에야 가족들에게 발견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어우 할머니는 이 때의 충격으로 평생 결혼하지 않았다. 그의 가족들은 “선 할머니의 부모님은 평생 딸과 함께 살았고 돌아가실 때까지 딸을 걱정했다”고 전했다.

 

난징대학살희생동포기념관 측은 “중국 내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이제 20명도 채 되지 않는다”며 “시간은 그 기억을 씻어낼 수 없고 역사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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