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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파업도 업무방해죄 처벌 ‘합헌’

입력 : 2022-05-27 07:00:00 수정 : 2022-05-26 16:5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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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만에 나온 헌재 결정
연합뉴스

노동자의 쟁의행위인 파업을 업무방해죄로 형사처벌 하는 현행 형법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심리 10년 만에 내려졌다.

 

헌재는 26일 형법 314조 1항 중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 부분이 노동자의 단체행동권 등을 침해한다는 내용의 헌법소원에서 재판관 4대5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일부 위헌 의견이 5명이었으나 위헌 결정 정족수(6명 이상)에 이르지 못해 합헌 결론이 나왔다.

 

합헌 의견인 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 재판관은 "심판 대상 조항은 사용자가 예측 못한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뤄져 사업 운영에 심대한 혼란이나 막대한 손해를 초래해 사용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혼란시킨 집단적 노무 제공 거부에 한해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다"며 "단체행동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반면 일부 위헌 의견을 낸 유남석·이석태·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단순 파업 그 자체를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하는 것은 사실상 근로자의 노무제공의무를 형벌 위협으로 강제하는 것"이라며 "노사관계에 있어 근로자 측의 대등한 협상력을 무너뜨려 단체행동권의 헌법상 보장을 형해화할 위험도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2010년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에서 벌어진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정리해고다.

 

비정규직지회 간부 A씨 등은 노동자 18명이 해고 통보를 받자 3회에 걸쳐 휴무일 근로를 거부했는데, 검찰은 자동차 생산 업무를 방해했다는 혐의(업무방해)를 적용해 A씨 등을 기소했다. 1심에서는 유죄가 선고됐다.

 

당시 대법원의 입장은 노동자들의 파업 등 쟁의행위를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집단으로 근로 제공을 거부해 정상적인 업무 운영을 저해하고 손해를 발생시키는 행위'는 당연히 '위력'에 해당하므로 합법적인 쟁의행위 요건을 갖추지 않는 한 대부분의 파업은 업무방해죄를 규정한 형법 314조 1항을 어긴 것으로 간주됐다. 사업장 점거나 기물 파손 같은 폭력이 수반되지 않은 단순 파업도 거의 예외 없이 업무방해죄 처벌 대상이 됐다.

 

그런데 A씨 등의 2심이 진행 중이던 2011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파업에 관한 업무방해죄 해석을 더욱 엄격하게 한 판단을 내놓았다.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파업이 이뤄져 사업 운영에 심대한 혼란이나 손해를 초래하는 때에만 위력 업무방해죄가 성립하므로 전후 사정을 따지라는 것이다.

 

이를 본 A씨 등은 이듬해 형법 314조 1항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헌재는 만 10년이 되도록 결론을 내리지 않았고, 이 사건은 헌재 출범 후 최장기 계류 사건으로 기록됐다. 그 사이에 A씨 등은 2011년 대법원 판단을 근거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이 사건의 처리 지연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기 '사법농단' 의혹과 연관된다는 것이 법조계의 시각이다. 법원행정처는 2015년께 헌재 파견 판사를 통해 헌재 내부 정보를 파악했다는 의혹을 받았는데, A씨 등 사건에 대한 헌재 재판관들의 논의 내용과 연구관 보고서를 빼돌렸다는 점도 포함됐다.

 

헌재가 '업무방해죄 적용이 가능하다'고 본 대법원의 판단을 넘어 파업 노동자를 업무방해죄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결정을 내릴까 봐 대법원이 우려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검찰은 양승태 대법원이 '최고법원' 위상을 놓고 헌재와 벌인 힘겨루기에 이 같은 헌재 내부 자료를 활용한 것으로 봤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은 이 사건과 관련한 문건을 청와대에 보고해 헌재를 압박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업무방해죄 사건을 꺼내든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려 대법원의 2011년 판단을 뒤집을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이날 헌재는 "대법원은 (2011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확립된 해석을 제시하고 있으므로 헌법재판소는 이를 존중해 그 조항의 위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며 대법원의 입장을 수용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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