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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미칼럼]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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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5-25 00:07:22 수정 : 2022-05-25 00: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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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노동·교육 개혁은 시대적 소명
마크롱·슈뢰더의 개혁적 리더십 보여야

윤석열 대통령이 첫 국회 시정연설에서 영국 총리 처칠과 노동당 당수 애틀리의 전시연립내각을 언급했을 때 다소 느닷없다는 느낌이었다. 2차 세계대전 영웅 처칠을 롤모델로 삼는 대통령이 국정 파트너 더불어민주당에 협치 의지를 내보였다는 분석은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민주당 의원들이 전쟁 치르듯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처리하긴 했어도 지금을 ‘전시 상황’ 같은 국가 위기로 여길까 싶다. 그보다는 윤 대통령이 연금·노동·교육 개혁을 처칠·애틀리 협치 모델을 인용할 정도로 절박한 국정 사안으로 여긴다는 데 눈길이 갔다. 대선 과정에 표를 의식해 구체적 언급을 피했던 윤 대통령이 첫 시정연설에서 3대 개혁을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못 박은 것이다.

3대 개혁이 시급하다는 건 저성장 늪에 빠진 경제 통계가 뒷받침한다. 인적 자본으로 먹고살았던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저출산·고령화 추세를 보인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8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다. 나라 곳간을 채울 생산 인력은 주는데 기성세대가 제 밥그릇만 챙기다가는 텅 빈 곳간은 시간문제다. 연금·노동 개혁이 누군가의 밥그릇을 건드리는 일이니 조직적인 반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전임 문재인정부는 5년 내내 손대지 않고 ‘폭탄 돌리기’ 하듯 새 정부에 떠넘겼다.

황정미 편집인

윤 대통령이 3대 개혁에 정권의 승부를 걸려면 처칠의 길이 아니라 마크롱, 슈뢰더의 길을 가야 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집권 1기 활력이 떨어지는 프랑스 재건을 위해 노동·연금 개혁을 추진했다. 기업의 해고 부담을 줄이고 중소기업이 산별 노조가 아닌 개별 기업 노조와 협상하도록 바꿔 강성 노조의 힘을 뺐다. 연금 수령 시기를 현행 62세에서 64세나 65세로 늦추는 연금개혁은 진행형이다. 유류세 인상 파동, 연금개혁 반대 시위로 몸살을 앓았지만 경제성장률, 실업률 호조에 힘입어 마크롱은 지난 4월 대선에서 프랑스 역사상 20년 만에 재선에 성공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1998∼2005)의 연금·노동 개혁은 지금 독일 경제를 떠받치는 토양이 됐다. 진보 성향의 사민당 소속임에도 연금재정 적자를 줄이려 연금 수령 시기를 늦추고, 실업급여 요건 강화나 중소기업의 부당 해고 기준 완화 같은 노동개혁(어젠다 2010)을 밀어붙였다. 대가는 모든 주의회 선거와 조기 총선 패배로 혹독했지만 그는 실패하지 않았다. 앙겔라 메르켈의 기민당과 체결한 대연정 협약에 ‘어젠다 2010’의 일관성 있는 실행을 담았기 때문이다. 메르켈은 2015년 슈뢰더의 자서전 출판기념회에서 “오늘날 독일이 부흥하게 된 출발점은 의심할 여지 없이 그의 개혁정책 ‘어젠다 2010’이었다”고 했다.

개혁의 성패는 지도자의 리더십에 달려 있다. 유럽의 중도실용주의를 대표하는 두 지도자는 야유, 봉변을 피하지 않고 토론장을 돌며 반대파 설득에 나섰다. 관계부처 장관이나 공무원, 민관위원회에 맡기지 않았다. 슈뢰더는 노·사·정이 참여하는 독일식 사회적 합의 모델을 추진했다가 진전이 없자 ‘어젠다 2010’을 직접 주도했다. 그는 자서전에 “힘든 임기 중 배운 점이 있다면 개혁을 공포하고 실행하는 것 못지않게 정당과 이익단체, 사회의 어떠한 저항에도 흔들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굳은 의지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라고 썼다.

“국민만 보고 가겠다.” 윤 대통령의 당선 일성이다. 평소 그는 “정치인들에 빚진 게 없다”는 말을 한다. 정치적 득실에 따라 정책적 판단을 내리지 않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취임사에서 자유를 35번이나 외친 윤 대통령은 노동 현장이 강성 노조에 의해 얼마나 왜곡됐고 경직돼 있는지 실감할 것이다. 교육부 장관이 낙마해도 파장이 없을 만큼 교육부는 시대 흐름에 뒤떨어지는 규제관료집단이 됐다. 미래세대 부담만 키우는 연금 폭탄 시계는 째깍째깍 돌아가고 있다. 국가 지도자의 소명의식과 결의 없이 돌파하기 힘든 과제들이다.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다.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 대통령에 선물한 탁상용 패에 새겨진 글이다.


황정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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