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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베란다 청소를 했다. 잡동사니가 생길 때마다 무심히 베란다로 내놓았더니 언제부턴가 베란다가 꽉 차서는 보는 것만으로도 답답했다. 뭘 얼마나 잘 살아 보겠다고 그리 사다 쟁여 놓았을까. 치우다 보니 저장강박증을 의심케 할 만큼 별 쓸모 없는 물건들이 많았다. 어떤 것은 사 놓고는 까맣게 잊은 채 다시 구입한 것도 있었고, 당장 쓸데가 없는데도 큰 폭의 할인율에 혹해 사 놓은 것도 있었으며, 또 어떤 물건은 포장도 뜯지 않은 채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그걸 보자니 스스로가 한심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나는 미니멀라이프를 좋아하고, 또 꿈꾼다. 삶이 단출할수록 모든 것이 명징하게 드러나지 않던가. 당장에 몸담고 살아가는 환경도 환경이지만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질척거리거나 집착하지 않고 순리대로 따라가는 것. 그리고 투명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것. 내가 지향하는 미니멀라이프였고 여전히 희망사항이다. 한데 현실은 그와 정반대다. 잔정이 많아 이별에 취약하고, 무언가 충족되지 않으면 불안감을 느껴 물건이나 사람으로 대신하려는 잘못된 습성이 몸에 뱄다. 그러니 베란다가 창고로 변할 수밖에. 어디 베란다뿐일까. 기실 내 마음 한편에는 그런 창고 같은 공간이 들어 있다. 그곳은 온갖 자질구레한 기억들로 가득 차서는 나를 무겁게 만들고 내 눈을 어지럽힌다. 미니멀라이프로 살기 위해서는 잘 버려야 한다는데, 나는 버리거나 비우지 못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나와 같이했던 물건들을 버릴 때면 왠지 나를 버리는 기분이 들어서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언젠가 일 때문에 지인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여간해서는 집에 손님을 들이는 일이 쉽지 않을 텐데 그분은 흔쾌히 모임의 회원들을 초대했고, 우리는 호기심과 궁금증을 안고 그분의 집을 찾았다. 한데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 모두는 조건반사처럼 감탄사를 내뱉었다. 집 안이 마치 모델하우스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정갈했다. 그 공간의 여백에서 절제미가 느껴지면서 마음까지 차분해졌다. 생각해 보면 그분은 언제나 단벌로 한 계절을 보냈다. 만날 때마다 늘 같은 옷에 같은 모자였고, 같은 신발이었다. 그분의 집을 보기 전까지 오해했었다. 은퇴한 지 오래인 터라 새 옷을 살 여유가 없나, 하고. 집을 방문하고 나서야 그분의 단출한 입성을 이해할 수 있었고, 오히려 그 같은 삶의 태도와 자세가 부러웠다.

따지고 보면 사는 데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하진 않다. 손에 쥔 게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근심도 늘어나기 마련이어서 미망에 빠지기 쉽다. 한데 살아 보니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게 더 어렵다. 물건뿐만이 아니라 관계도 마찬가지다. 지인의 아파트 빈 공간이 말해 주듯 삶은 여백으로부터 여유와 관용이 나오는 것이다. 자신의 욕망을 줄였을 때 타인의 고통도 눈에 들어오는 법.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단출하게 살도록 노력해야겠다. 우선 잘 버리는 것부터!


은미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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