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한국에살며] 과일 깎는 법에도 문화 차이가 있다

관련이슈 한국에 살며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22-05-04 23:00:13 수정 : 2022-05-04 23:13:59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은 참외다. 그런데 보면 화가 치미는 과일도 참외다.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신혼 초 시댁에서 잠시 생활하면서 문화 차이로 이전까지의 습관을 지적당하기 일쑤였기에 많이 힘들었다. 어느 날, 식사 후 참외 껍질을 깎아 먹기 좋게 세로로 잘라 접시에 담아 놓는데 시어머님이 “참외를 왜 이렇게 자르냐? 우리 한국에서는 가로로 자른다”고 하셨다. 또 그 ‘우리 한국에서는…’ 잔소리가 시작되나 하면서 나는 습관처럼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하고 가로로 잘라 접시에 놓았는데 온 가족이 참외를 드실 때 ‘욱∼’ 하는 심정을 참을 수 없었다. 맛있는 중간 부위는 아버님하고 남편이 쏙쏙 빼서 드시고 나머지 가장자리만 남았다. 갑자기 통닭을 먹을 때 닭다리를 빼앗긴 것처럼 서러움이 밀려왔다. ‘세로로 자르면 누구나 공평하게 맛있고 맛없는 부위를 나누어 먹을 수 있을 텐데….’ 나의 불평불만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김지현 중국어 강사

과일은 그냥 길게 자르면 안 되는 것일까? 참외나 키위, 오렌지 같은 경우 자를 때 김밥 자르듯 세워 자르는 것이 한국의 문화일까? 찾아보니 예쁘게 보이는 방법으로 자르는 것을 추천하는 내용은 있으나, 그것이 한국의 전통적 방식이라고 소개된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나의 고향에서는 참외를 껍질 무늬를 따라 세로로 잘라 먹었다. 그것이 끝과 중간 부분의 차별 없이 모두 공평하게 먹는 방법이었고 여기에 아무도 불만은 없었다. 중간과 끝이 나뉘면 먹는 위치를 두고서 눈치를 봐야 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을까? 자연스럽게 차별이 생기지 않나?

남편과 이 일에 대해 한참 상의한 적이 있다. 예쁘게 보이는 대로 잘랐을 때 중간 부분, 맛있는 부위는 누가 먹고 끝 부분은 누가 먹는지 생각해 보니, 가부장적인 한국의 전통사회가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은가 하고 의견을 내놓게 되었다. 과거의 남편은 그것이 더 옳은 한국의 문화라고 강조했을 것인데, 요즘은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며 내게 동조하는 분위기다. 아마 오래전부터 며느리와는 겸상하지 않았을 테니, 제사 절차부터 어른을 대하는 태도 등 남녀 차이가 그대로 자녀에게도 전해지지 않았을까? 언제부터인가 나도 자녀들에게 먼저 과일의 맛있는 부위를 주고 남는 부분을 먹는 부모가 되어 시어머니 지적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이왕이면 맛있는 부분을 자녀와 가장에게 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주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놀랍게도 신혼 초 남편은 중국 하면 영화 ‘황비홍’부터 떠올렸다. 다문화사회에 진입한 한국에서 다른 문화에 대한 인식 교육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한국에서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린 지 어언 15년이다. 지금 나는 참외를 두 가지 방법으로 자른다. 하나를 길쭉하게 반으로 갈라 반쪽은 먹기 좋게 세워 자르고, 남은 반쪽은 여러 개의 긴 채로 썰어 한 접시에 반반씩 두 가지 모양을 다 담아낸다. 이러면 누구든 원하는 부분을 택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 과일 하나에서 시작해 문화의 차이를 서로 이해하고 존중할 수만 있다면 한국은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사회, 살 만한 나라로 기억되지 않을까?


김지현 중국어 강사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에스파, 패리스 힐튼 만났네…
  • 에스파, 패리스 힐튼 만났네…
  • 선미 '시선 사로잡는 헤어 컬러'
  • 김향기 '따뜻한 눈빛'
  • 김태리 '순백의 여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