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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시오. 어린이를 가까이 하시어 자주 이야기하여 주시오.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보드랍게 하여 주시오.” 소파 방정환이 1923년 5월1일 내놓은 ‘어린이날 선언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이란 부제를 달았다. 훗날 사람들은 이를 두고 ‘세계 최초의 어린이 인권 선언’이라고 평가한다. 어린이 인권에 대해서 이처럼 조목조목 정리해 발표한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린이라는 말의 사용과 어린이날 제정은 일제강점기 아동문학가들이 주도했다. 이들은 암울한 현실에서 벗어나려면 미래의 주역인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동화는 어린이 계몽운동에 큰 효과가 있었다.

동화를 창작하고 번역·번안한 아동문학가 방정환은 어린이 인권이 철저히 무시된 채 억압받던 일제강점기에 아동 문화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천도교 3대 교주 손병희의 사위였던 방정환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천도교의 ‘인내천(人乃天)’ 교리를 따라 어린이를 ‘인내천의 천사’로 보았다. 수필 ‘어린이 예찬’에서는 어린이를 “더할 수 없는 참됨과 더할 수 없는 착함과 더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갖추고 그 위에 또 위대한 창조의 힘까지 갖추어 가진 어린 하느님”이라고 했다. 그가 아이를 인격을 갖춘 사회 구성원으로 대해야 한다는 의미로 ‘어린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배경이다.

이어 그가 조직한 천도교소년회는 창립 1주년을 맞은 1922년 5월1일을 어린이날로 선포하고 기념식을 열었다. 어린이날 행사가 민족의식을 고양할 것을 염려한 일제의 탄압으로 1939년부터 중단됐다가 광복 후엔 5월5일로 변경됐다. 1931년 33세의 나이로 요절한 방정환의 묘비명은 ‘동심여선(童心如仙)’이다. 아이 마음은 신선과 같다는 뜻이다. 어린이를 사랑한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금도 어린이 인권이 확고히 보장된다고 말하기 어렵다. 아동학대 등 사각지대가 많다. 내일이 어린이날 100주년이다. 서울시는 서울도서관 정문 위 대형 게시판을 ‘어린이들의 꿈이 서울의 미래입니다’라는 문구로 단장했다. 어린이의 꿈을, 방정환의 꿈을 되새겨 볼 때다.


박완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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