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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때 조선인 차별의 현장, ‘평화의 상징’ 거듭나다

입력 : 2022-05-02 06:00:00 수정 : 2022-05-01 22:4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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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토로기념관 개관

일제때 건설동원 조선인 마을에
상징적인 장소 만들어져 큰 의미

전시물 500여점·디지털 자료 등
당시 주민들 혹독한 상황 보여줘

“평생 힘들었는데 기념관 생겨 기뻐”
일본 시민과 재일동포들이 지난달 30일 개관한 일본 교토부 우지시 우토로평화기념관을 찾아 전시물을 관람하고 있다. 우지(일본 교토부)=강구열 특파원

“재일 (한인) 1세들이 필사적 삶을 살다가 떠난 현장이 한·일 젊은이들이 평화를 이야기하는 장소가 되길 기대합니다.”

 

지난달 30일 모진 세월의 고통 속에서 문을 연 일본 교토부 우지(宇治)시 우토로평화기념관 다가와 아키코(田川明子) 관장이 말했다.

 

우토로 마을은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1년 일제 정부가 교토 군사비행장 건설을 위해 재일 조선인 1300여명을 동원하면서 생겼다. 주민은 혹독한 노동을 하고 입에 담기도 어려운 욕설을 듣는 등 인간 이하 취급을 감내해야 했다.

 

주민 일부는 해방 후 귀국했지만 적지 않은 사람이 당시 한반도의 혼란, 일본 정부의 엄격한 재산 반출 제한 탓에 우토로에 그대로 남았다. ‘천민 부락’ 신세로 방치된 판잣집 마을에선 1988년까지 수도가 들어오지 않아 우물물을 써야 했고 장마철마다 물난리가 났다. 2000년엔 일본 최고재판소가 토지 소유주 니시니혼쇼쿠산(西日本植産)의 퇴거 요구를 받아 줘 저항하던 주민은 오갈 데 없이 쫓겨날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지난 4월 30일 일본 교토부 우지시에서 열린 우토로평화기념관 개관식 모습. 

이는 한·일 시민사회와 한국 정부가 움직이는 계기가 됐다. 2005년 ‘우토로국제대책회의’가 만들어졌고, 토지 매입을 위한 캠페인이 시작됐다. 2008년 한국 정부의 30억원 지원이 결정되면서 2010년 마을 부지의 약 3분의 1을 매입해 강제퇴거 위기에서 벗어났다.

 

기념관은 바로 그 역사를 기록한 곳이다. 기념관 이름은 전쟁의 참화와 민족 차별을 겪은 현장이라는 점에서 한자로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기념관’(紀念館)이 아니라 ‘평화를 기원한다’는 의미의 ‘기념관’(祈念館)으로 했다.

 

일반 관람이 시작된 이날 기념관은 금세 기분 좋은 소란함으로 가득 찼다. 1층 다목적홀의 좌석은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티켓을 받고 10분 정도를 기다려 입장한 2·3층의 전시실에는 해설사에게 질문을 던지는 중년 일본인, 노트에 관람 내용을 적어 가며 전시실을 둘러보는 젊은이 등 관람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지난 4월 30일 개관식을 가진 우토로평화기념관의 1층 다목적홀이 관람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면적 461㎡(약 140평), 지상 3층 규모의 기념관은 우토로 마을의 형성과 주민들의 삶, 강제퇴거에 대한 저항, 한·일 양국의 도움 등을 보여 주는 500여점의 전시물, 6000여점의 디지털 자료를 모았다. 아쉬움이라면 지난해 8월 벌어진 방화로 전시를 위해 보관 중이던 세움 간판 등 사료가 다수 소실됐다는 점이다.

 

오사카에서 태어나 어릴 적 우토로 마을로 이주한 한금봉(83) 할머니는 “기쁘고 고맙다. 앞으로도 여기서 계속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강도자씨(77·여)도 “평생을 어렵게 살아왔는데 멋진 기념관이 생겨 기쁘다”며 활짝 웃었다.

 

다가와 관장은 “우토로에서 필사적인 삶을 살다 세상을 떠난 1세대들이 하늘에서 기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며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들이 찾아와 평화를 이야기하고 실현하는 만남의 장소가 되길 기대한다”고 바랐다.


우지(일본 교토부)=강구열 특파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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