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방송으로 진행된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 도중 초유의 진행자 폭행 사건을 벌인 배우 윌 스미스(54)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은 가운데 스미스가 오스카 뒤풀이 행사에서 남우주연상 수상을 자축하듯 춤추고 노래하면서 현지 언론과 영화계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다. 사실상 시상식을 망치는 행동을 하고도 반성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는 스미스의 오스카 시상식 폭행을 규탄하고 공식 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28일(현지시간) 영화 전문 매체 할리우드리포터 등에 따르면 스미스는 시상식이 끝난 뒤 열린 애프터 파티에 자정을 넘긴 시간 가족과 함께 참석했다. 영화 ‘킹 리차드’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스미스는 손에 오스카 트로피를 들고 아내 제이다 핑킷 스미스, 두 아들 트레이·제이든, 딸 윌로우 등과 함께 춤 추고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파티 도중 자신의 히트곡인 ‘서머타임’, ‘마이애미’ 등이 나오자 직접 랩을 했다. 파티 참석자들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귀가 길에도 취재진을 향해 트로피를 흔들어 보이며 “아름다운 밤이었다”고 말하는 등 수상 기쁨에 차있는 모습이었다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그러나 스미스를 향한 할리우드 배우와 감독, 매체들의 반응은 대체로 싸늘했다. 스미스는 전날 오스카 시상식에서 다큐멘터리상 시상자인 코미디언 크리스 록이 탈모 증상을 앓는 자신의 아내(제이다 핑킷 스미스)를 놀리는 농담을 하자 갑자기 무대에 올라 록의 뺨을 때렸다. 그는 남우주연상 수상 소감을 통해 주최 측과 참석자들에게 사과했지만, 폭행 피해자인 록에게 직접 사과의 뜻을 밝히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 현지 매체 등에 따르면, 원로 여배우 미아 패로는 이 폭행 사건에 대해 “오스카의 가장 추악한 순간”이라며 “단지 가벼운 농담이었고, 그건 록이 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루크 스카이워커를 연기한 마크 해밀도 ‘역대 가장 추악한오스카의 순간’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스미스를 겨냥했다. 코미디언 겸 감독 저드 애퍼타우는 “자기도취증이자 절제력을 상실한 폭력”이라며 ”록은 죽을 수도 있었다. 스미스가 미쳤다”고 비난했다.
스미스가 남우주연상 수상 소감에서 폭행 원인이 가족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고 주장한 것도 지지를 받지 못했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어 퓨 굿 맨’ 등을 연출한 랍 라이너 감독은 “스미스의 변명은 헛소리”라며 폭행 피해자인 록에게 직접 사과할 것을 촉구했다.
에미상 수상 경력의 댄 부카틴스키는 “스미스가 눈물과 함께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폭행을 정당화했다”며 “그가 하지 않은 한 가지는 록에게 사과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스미스 아내의 탈모를 놀림거리로 삼은 록의 농담이 수준 미달이었으나 그것 때문에 스미스 폭행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흑인 여배우 우피 골드버그는 ABC 방송 ‘더뷰’ 코너에서 “스미스가 과잉반응을 보였다”고 지적했고, 공동 진행자 애나 나바로는 “록의 농담은 저속했지만, 농담과 뺨 때리기는 동일하지 않다. 폭행은 범죄”라고 비판했다.
소피아 부시 감독도 “록은 농담은 잔인하고 잘못됐지만, 폭력은 결코 답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농담으로 한때 살해 위협까지 받기도 했던 코미디언 캐시 그리핀은 “코미디언 폭행은 매우 나쁜 습관”이라며 “이제 우리는 코미디 클럽에서 누가 제2의 스미스가 될지를 걱정하게 됐다”고 우려했다.
스미스 아내와 영화 작업을 함께했던 흑인 여배우 티퍼니 해디시가 “흑인 남성이 아내를 옹호하는 모습은 나에게 큰 의미였다. 내가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웠다. 남편은 그렇게 해야 하는 게 맞다”고 한 것처럼, 일각에선 스미스의 폭행을 두둔하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현지 언론은 스미스의 폭행으로 이번 시상식의 빛이 바랬고 역대 오스카 시상식 가운데 최악의 장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할리우드리포터는 비평 코너를 통해 “록의 추악한 농담에 대한 스미스의 폭행은오스카 방송 중 최악의 순간이었다”며 “올해 오스카 시상식은 이미 나빴고, 그 사건으로 더욱 나빠졌다”고 진단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는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운 오스카였다”고 했고, 버라이어티는 “스미스 폭행이 오스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고 전했다.
시상식이 끝난 뒤 “어떤 형태의 폭력도 용납하지 않는다”고만 언급했던 아카데미 측은 공식 성명을 내고 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AMPAS는 성명을 내고 “아카데미는 어제 행사에서 스미스가 보여준 행동을 규탄한다”며 “우리는 공식적으로 이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고 내규와 행동 규범, 캘리포니아주 법률에 따라 추가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다만 앞서 폭행을 당한 록 측은 스미스를 LA 경찰에 신고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이번 사건은 평소 심한 농담을 하기로 유명한 록이 스미스의 아내 제이다 외모에 관한 발언을 하면서 시작됐다. 록이 삭발 형태인 스미스 아내의 헤어 스타일을 언급하며 “‘지. 아이. 제인2’의 주인공을 맡아야 할 것 같다”고 놀리자 스미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무대 위로 올라가 록의 뺨을 때렸다. 스미스의 아내는 질병 문제로 탈모증이 오면서 머리를 민 것으로 알려졌다. 1997년에 나온 영화 ‘지. 아이. 제인’은 데미 무어가 주연한 영화로 무어의 삭발로 화제가 됐었다.
스미스가 무대로 올라오자 당황한 록은 “스미스가 무대로 올라오고 있다”고 말했고, 이내 스미스는 록의 뺨을 쳤다. 자리로 돌아간 스미스는 록을 향해 욕을 내뱉으며 “내 아내를 입에 올리지 말라(Keep my wife’s name out of your fucking mouth)”고 했다. 록은 서둘러 시상을 마무리하고 “내 생애 잊지 못할 시상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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