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무기로 ‘자력자강’ 매진할 듯
바이든 무력… 러, 北·中과 밀착 전망
새 대통령, 꼬인 외교방정식 풀어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019년 대선에서 73%가 넘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당선됐다. 코미디언이자 배우인 그의 당선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였다. 그는 2015년 정치 드라마 ‘국민의 일꾼’에서 하루아침에 대통령이 되는 고교 역사교사를 맡아 큰 인기를 얻었다. 2018년에는 드라마 제목을 그대로 빌려 ‘국민의 일꾼’ 정당을 창당하고 이듬해 대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시작은 순조로웠다. 대통령이 된 그는 우크라이나의 고질병인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국민 지지를 얻었다. 취임 이후 국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치러 여당 과반 의석을 만들며 정치 기반도 다졌다.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출신의 젤렌스키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등 친서방 정책을 추진하는 동시에 대러시아 강경노선 대신 대화를 통해 동부 내전을 끝내겠다고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 앞에 꽃길만 놓여있지는 않았다. 코로나19에 따른 경제 불황, 높은 실업률과 빈곤, 동부 지역의 계속된 내전에 지지율이 내리막을 걸었다. 지금은 러시아의 침공으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러시아 침공을 계기로 젤렌스키를 향해 늘 제기된 ‘코미디언 출신의 한계’라는 비판이 나온다. 정치와 외교 경험이 부족한 그가 20년 넘게 러시아를 이끌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맞서기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젤렌스키의 한계 탓이기만 할까.
27세에 정치에 입문해 80세를 바라보는 자타공인 ‘외교 전문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처지가 곤란하기는 마찬가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예상날짜까지 예고하고, 기밀급 군사 정보까지 실시간으로 공개하며 러시아에 경고를 보냈지만 푸틴은 보란 듯 침공을 감행했다. 전례가 없고, 재앙에 가까운 제재를 하겠다는 바이든의 경고는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발표한 제재가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이어진다.
지난해 아프가니스탄 철군 과정에서 취임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은 바이든 대통령은 다시 국제무대에서 체면을 구기게 됐다. 한때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던 미국은 러시아의 침공을 속수무책 지켜봤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일 바이든 대통령은 이렇다 할 발표 없이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을 뿐이다.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간에서는 이런 바이든을 향한 비판과 조롱이 쏟아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한반도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하나 확실한 것은 북한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서 절대 핵을 포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할 것이라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1991년 구소련 해체 당시 우크라이나는 미국, 러시아에 이어 세계 3대 핵보유국이었다. 구소련 해체 이후 체제 보장을 약속받고 핵탄두 전부를 러시아에 넘겼지만,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를 합병했고 이번엔 수도까지 위협하고 있다. 북한이 우크라이나를 반면교사 삼아 줄곧 강조한 ‘자력자강 노선’에 더욱 매진할 것임은 불 보듯 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등 국제사회 대응도 무기력하기는 마찬가지다. 안보리는 지난 25일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즉각 철군을 요구하는 결의안 채택을 시도했지만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의장국인 러시아가 비토권을 행사하며 무산됐다. 이달 초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규탄하기 위한 안보리 긴급회의도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빈손으로 끝났다. 러시아가 미국 및 동맹국에 맞서 중국, 북한과 더욱 밀착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열흘 뒤 선출될 한국의 대통령은 언제나 그렇듯 복잡한 외교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미국에선 한국보다 앞서 재외국민 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는 평가 속에 투표 신청률이 저조했다. 취재 중 만난 재외국민들은 투표 신청 여부와 상관없이 한결같이 “뽑을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투표가 중요하다며 몇 시간을 운전해서 투표장을 찾은 유권자들이 있었다. 신냉전의 초입에서 위기를 겪고 있는 외국의 대통령들 모습에서 대통령직의 무한 책임과 한 표 한 표의 무게를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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