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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오라" "즉시 간다"… 유엔사, 무어 장군 전사 71주기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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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2-25 09:00:00 수정 : 2022-02-25 08: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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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초반에 美육사 교장으로 재직
리지웨이, "한국에 자네가 꼭 필요" 부탁
"당장 가겠다"… 부임 20여일 만에 전사
6·25전쟁에서 전사한 미 육군 브라이언트 무어 장군(오른쪽 사진). 왼쪽 사진은 젊은 사관생도 시절의 모습. 유엔사 트위터 캡처

지금으로부터 꼭 71년 전인 1951년 2월 24일 한국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었다.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11월만 해도 북한 땅을 거의 다 점령해 한반도 통일을 이룩하는 듯했던 미군 등 유엔군이 중공군의 무자비하고 야만적인 인해전술에 밀려 도로 38선 이남으로 후퇴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했던 것이다. 이에 유엔군은 대대적 반격을 통해 1·4 후퇴로 빼앗긴 수도 서울을 되찾는다는 목표를 세우고 비장한 각오로 이른바 ‘킬러(Killer) 작전’에 돌입했다.

 

유엔군사령부는 24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 킬러 작전 수행 도중 목숨을 잃은 미 육군 브라이언트 무어(1894∼1951) 장군을 추모하는 글과 사진을 게시했다. 당시 소장 계급장을 달고 미 육군 제9군단을 지휘했던 무어 장군은 1950년 12월 전사한 미 8군사령관 월턴 워커 장군(당시 중장)과 더불어 6·25전쟁 도중 한국에서 생을 마감한 최고위급 미군 장교에 해당한다.

 

킬러 작전의 핵심은 미 9군단이 남한강을 안전하게 건너 신속히 서울 방향으로 진격하는 것이었다. 유엔사에 따르면 무어 장군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 및 유럽 전선에서 모두 활약한 백전노장답게 직접 헬리콥터를 타고 남한강변의 전투지형 순찰에 나섰다. 그는 위협을 무릅쓰고 조종사한테 “좀 더 낮게 비행하라”고 명령했는데, 이는 지상의 지형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당시 남한강변에는 전기 공급을 위해 부설한 고압의 송전 케이블이 있었다. 고도를 낮추던 헬기가 그만 이 케이블에 걸렸고 오늘날의 경기도 여주시 남한강 강천보 부근에 추락하고 말았다. 얼음장 같이 차가운 겨울 강물 속에서 사투를 벌인 무어 장군은 결국 몇 시간 뒤 사망했다. 당시 그의 나이 56세였다. 유족으로 미국에 부인과 두 딸을 남겼다.

 

무어 장군은 미국 북동부 메인주(州)가 고향이다. 1차대전 도중인 1917년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했다. 6·25전쟁 당시 미 8군사령관, 그리고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에 이은 제2대 유엔군 사령관을 차례로 지낸 매튜 리지웨이 장군이 그의 육사 동기생이다.

경기도 여주시 남한강 강천보 부근에 세워진 브라이언트 무어 장군(1894∼1951)의 추모비. 유엔사 트위터 캡처

유엔사는 1951년 1월 육사 교장으로 재직하던 무어 장군한테 연락을 취한 리지웨이 장군이 “지금 한국에 자네가 꼭 필요하다. 오는 데 얼마나 걸리겠나”라고 요청하자 무어 장군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즉시(At once)”라고 답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무어 장군이 9군단장에 부임한 것이 1951년 1월 30일의 일이니 한국 땅을 밟은 지 1개월도 채 안돼 불귀의 객이 된 셈이다. 훗날 미 8군 공병대는 한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무어 장군의 넋을 기리고자 고인의 추락 지점인 남한강 강천보 부근에 추모비를 세웠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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