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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2026년부터 곰 사육 중단”… 종식 선언은 ‘끝이 아닌 시작’ [연중기획-지구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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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2-04 06:00:00 수정 : 2022-02-03 16: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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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나주에 있는 한 농장에서 사육되고 있는 곰.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제공

환경부가 지난달 27일 곰 사육 종식을 선언했다. 2026년부터이긴 해도 이제 우리나라에서 곰을 경제적인 목적으로 기르고 이용하는 행위는 금지된다. 일상에서 쉽게 볼 수는 없지만 흔히 동물원에서나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곰도 소나 돼지 같은 일반 가축처럼 철창 안에 가두고 기르는 곰 사육 농가가 우리나라에 수십 곳 있다. 수십 년간 이어져온 엄연히 합법적인 사육이다.

 

동물복지단체들은 환경부의 이번 선언을 지난하게 이어진 곰 착취의 역사를 끊을 중요한 전환점으로 보고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경선 녹색연합 공동대표는 “웅담채취용 곰 사육 산업의 종식은 사육곰 문제에 관심을 갖고 구출에 참여해준 시민이 함께 만들어낸 성과”라며 정부 결정을 반겼다.

 

◆곰 사육의 긴 ‘흑역사’

 

3일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국내 사육곰(반달가슴곰)은 24개 농가에 총 360마리가 있다. 우리나라 곰 사육의 역사는 약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놀랍고 안타깝게도 정부 주도로 1981년 시작됐다. 당시 전두환정부는 농가 수입 창출을 목적으로 곰을 포함해 다양한 야생동물 수입을 허용했고 경제적 수입 효과까지 나서서 홍보했다. 곰 쓸개인 웅담을 채취해 팔면 농가에 새로운 수입원이 생기는 데다 곰을 잘 키워서 다시 수출할 수도 있다고 농민들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이렇게 수입된 곰이 496마리였다.

 

곰 사육은 한국 정부와 농민의 처음 기대처럼 대내외적으로 환영받지는 못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개최하고자 국제 여론을 의식해 정부는 곰 수입을 1985년 돌연 중단했다. 1993년에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도 가입한다. 웅담채취와 곰 도축에 쏟아지는 국제적 비난이 강한 상황에서 곰 재수출도 쉽지 않았다. 국내에서 웅담을 찾는 사람들도 점차 줄었다. 웅담의 효능이라고 알려진 효과들을 대체할 의약품이 개발되면서 웅담 수요는 자연스럽게 반감됐다.

 

곰 사육과 각종 관리 비용 대비 수입이 줄자 농가에서 토로하는 불만은 점점 커졌다. 정부는 농민들을 달래기 위해 웅담채취를 합법으로 풀어두고 도축 가능한 곰 나이도 1999년 24세 이상에서 2005년에는 10세 이상으로 완화하는 조치 등을 시행한다. 농가에서 곰을 증식시켜 2010년 국내 사육곰 개체수는 1063마리까지 불어 있었다.

사육곰을 기르고 있는 경기도 한 농장의 열악한 곰 사육 환경. 동물행동권카라 제공

그러나 국내에서도 커지는 곰 보호 여론과 함께 웅담의 인기 하락으로 가격까지 추락하자 정부는 끝내 2014년 곰 중성화 수술을 진행한다. 곰 번식 자체를 억제해 사육곰 수를 줄인다는 계획이었다. 환경부 관계자는 “당시 정부와 농가가 곰 사육 산업을 종식하자고 합의했다”며 “우선 증식을 금지하자고 약속하고 정부는 손실보상을, 농가는 그에 따른 증식금지를 이행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사육곰 개체수는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해 2015년 1000마리 아래로 내려왔다. 다만 사육곰을 받을 시설도, 다른 활용안도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웅담채취는 합법으로 남겨뒀다.

 

◆철장 벗어난 사육곰, 보호시설로

 

이처럼 국내 곰 사육 산업은 성장하고, 성원받고, 투자가 지속되는 분야가 아니었다. 그 반대였다. 세월의 직격타를 맞아 노후화한 시설과 그 사이 전혀 개선되지 않은 후진적인 복지를 오롯이 감내해야 하는 건 곰이었다. 철장은 좁고 녹슬었다. 내부는 먹이와 배설물의 공간 경계가 불분명할 만큼 방치됐고 위생적이지 않았다. 콘크리트 바닥에서 지내야 하는 곰을 찾아보기도 어렵지 않다. 동물보호단체 활동가들은 곰 사육 농가를 방문하면 사료가 아닌 음식물쓰레기를 밥이라 받으며 각종 위생문제와 스트레스로 인해 피부병, 정형행동 등 이상증세를 겪는 곰을 쉽게 발견한다고 전했다. 곰이 농가에 더 이상 ‘수익성 사업’이 아닌 상황에서 농가는 새로운 투자를 할 유인이 없는 실정이다. 

강원도 화천군 한 농장에서 사육되다가 구조된 곰. 동물행동권카라 제공

철장이 오래되면서 허술해진 문제도 심각하다. 시설이 낡고 관리가 부족한 틈에 곰이 철장을 탈출하는 사고도 이어졌다. 녹색연합이 기록한 사례만 2000년부터 지난 20여년간 21회에 달한다. 사고는 최근 10년 사이 집중됐다. 지난해에만 울산 울주에서 탈출한 곰이 포획됐고 경기 용인에서 7월에 한 마리, 11월에 5마리가 탈출했다. 2012년에는 탈출한 곰이 등산객을 물고 달아나는 사고도 있었다. 탈출한 곰은 포획을 시도하나 인근 주민을 위협할 수 있어 인명피해 등이 우려되는 경우 사살하기도 한다.

 

환경부는 지난해 8월에 곰 사육 농가, 4개 시민단체 등과 민관협의체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사육 종식을 논의했다. 지난해 12월 사육 종식에 최종 합의했고 전남 구례군과 충남 서천군에 각각 하나씩 곰 보호시설(생추어리·sanctuary)을 건립할 예정이다. 생추어리는 전시·관람을 주목적으로 하는 동물원과 다른 개념의 보호시설을 말한다. 사육곰처럼 가축으로서 민간에서 키울 수 없지만 야생으로도 돌아갈 수는 없는 야생동물이 여생을 편하게 보내다 죽을 수 있도록 만든 시설이다. 2026년부터 사육이 금지되는 현재 사육곰들은 정부와 지자체 주도로 지어지는 이곳에서 지내게 된다. 환경부는 곰 사육 종식을 법제화하기 위해 ‘곰 사육 금지 및 보호에 관한 특별법’(가칭)도 제정하려 한다.

전남 나주에 있는 곰 사육 농장에 사육곰들이 철장에 나란히 갇혀 있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제공
경기도 한 농장에서 반달가슴곰이 녹슨 철장에 갇힌 채 사육되고 있다. 녹색연합 제공

◆ 사육 금지는 끝이 아닌 시작

 

2026년부터는 자연스럽게 웅담채취도 사라지게 되지만, 반대로 말하면 2025년까지는 곰들이 현재 열악한 상황을 버텨야 하는 상황이다.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들이 가장 아쉬움을 표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동물권행동 카라의 고현선 활동가는 “정부가 농민에게 사료비를 지원한다든지 다른 협약을 더 강조해 2025년까지의 곰 복지도 신경을 썼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강하다”며 “요즘 웅담 수요가 별로 없어 농민들도 같은 조치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가 설치하는 보호시설이 수용할 수 있는 사육곰 수에도 한계가 있어 추가로 시설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예산 등의 문제로 구례군과 서천군에 짓게 되는 보호시설에는 총 100마리 남짓한 곰만 들어갈 수 있다. 2026년 전에 일부가 죽더라도 수백 마리일 것으로 추정되는 절반 이상의 사육곰은 새롭게 갈 곳을 찾아야 한다. 고 활동가는 “이전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환경부가 수습하고 있는데 부처를 넘어 전 정부 차원에서 지원과 해결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강원도 화천군의 한 농가가 사육을 포기한 곰들을 매입·구조해 2마리는 죽고 13마리를 보호 중인 카라와 곰보금자리프로젝트는 자체적으로 민간 생추어리도 건립하려 추진하고 있다.

베트남 탐다오 애니멀스아시아 보호시설(생추어리)에서 생활하는 곰들이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제공

야생동물이 야생동물답게 남은 생을 살기 위해서는 어떤 공간이 만들어져야 할까. 수의사이기도 한 최태규 곰보금자리프로젝트 대표는 “자연스러운 행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강조했다. 최 대표는 “보호시설은 너무 많은 개체수를 받기보다 야생과 가깝게 넓은 면적으로 조성하고 야생에서 하루종일 먹이를 찾아다니는 곰이 (시설에서도) 그런 행동을 할 수 있게끔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보호시설은 여러 곳을 돌아다니고, 높은 나무에 올라가고, 나뭇잎을 따먹고, 땅을 파고, 벌집을 쑤시면서 먹이를 찾고 만족감을 느끼는 곰을 위한 공간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최 대표에 따르면 동물이 일을 해서 먹이를 먹을 때 더 기분이 좋다는 연구결과가 다수 있다.

 

최 대표는 “지난해 7월 안락사를 한 곰이 기억난다”며 “나이 먹은 곰이 허리에 디스크 탈출증이 와서 걸음도 잘 못 걷고 엉덩이와 뒷다리를 끌고 다녀 피부까지 다 망가졌는데 사육되면서 야생이라면 죽어야 했을 때에 죽지 못한 꼴이었다”고 회상했다. 최 대표는 “단순히 사는 것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생추어리는 개별 개체의 동물복지를 생각해 만들어져야 하지 큰돈을 들인 또 하나의 동물원이 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베트남 탐다오 애니멀스아시아 보호시설(생추어리)에서 살고 있는 곰의 모습.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제공

박은정 녹색연합 자연생태팀장은 “우리나라는 생물다양성을 종 복원 차원에서 많이 접근해왔다”며 “반달가슴곰도 그간 지리산에 방사된 고유종 복원과 보호에 집중됐었다”고 설명했다. 박 팀장은 “야생동물이 보호받되 비교적 자유롭게 지낼 수 있는 생추어리 건립이 명문화돼 감격스럽다”면서도 “농가에 남은 곰을 구출하고 보호할 시설을 확보할 때까지 과제가 많아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박유빈 기자 yb@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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