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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알고리즘에 가려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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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1-24 23:15:40 수정 : 2022-01-24 23: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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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이면 잊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 노트북을 열고 웹브라우저의 방문 기록과 검색 기록을 모두 삭제하는 일이다. 자주 접속하는 유튜브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기록도 주기적으로 지우고 있다. 다소 번거로운 이 일을 반복하는 것은 알고리즘 때문이다. 알고리즘을 방치하는 순간 그 늪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알고리즘의 폭력성을 경험하면서다. 가령 특정 대선후보가 젠더 갈등에 관해 한 발언을 접하고 나면 관련 콘텐츠가 끊임없이 추천된다. 실제 그 사안에 대해 가진 생각이나 관심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알고리즘에 젠더 갈등이 입력되는 순간 세상은 온통 젠더 갈등으로 시끄러워진다. 그리고 그것은 확증편향을 유도한다. 이른바 필터 버블 현상이다.

권구성 문화체육부 기자

그 과정에서 보다 관심이 필요한 사안들은 쉽게 외면당하고 만다. 지난해 경기 평택항에서 작업 중 사고로 숨진 청년의 사례가 그렇다. 당시 알고리즘은 그 사고에 대한 관심이 깊지 않았다. 알고리즘의 관심은 대중의 관심과 연결돼 있지만 무엇이 먼저인지는 알기 어렵다. 알고리즘이 작동하는 영역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닐 모한 유튜브 CPO는 “유튜브 시청 시간의 70%가 알고리즘에 의한 결과다. 알고리즘 도입으로 전체 시청 시간이 20배 이상 증가했다”고 말했다. 알고리즘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알고리즘의 추천 방식은 다양성에 기반을 두기보다, 보고 싶은 것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사용자를 가두고 있다.

사용자가 계속해서 보고 싶도록 유도하는 손쉬운 방식은 갈등을 유도하는 것이다. 실제 인스타그램은 선정적이거나 증오를 유발하는 콘텐츠를 더 많이 노출시킨다는 주장이 나왔다. 메타(전 페이스북)의 알고리즘 문제를 폭로한 프랜시스 하우건은 “(알고리즘 때문에) 중도 좌파는 극좌파로, 중도 우파는 극우파로 변하는 극단화 현상이 관측되고 있다”고 했다. 인공지능(AI)이 중립적일 것이란 기대와 달리 오히려 더 편향적이거나 양극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알고리즘은 더 이상 삶을 편리하게 돕는 보조적 수단이 아니다. 알고리즘의 작동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언제든 알고리즘에 지배당할 수 있다. 그렇게 한번 빼앗긴 주도권은 다시 찾아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이미 알고리즘에 시장을 잠식당한 뉴스 플랫폼이나 배달, 택시 등의 사례가 그 지배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알고리즘을 배척하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다. 결국 인간이 알고리즘의 구조를 이해하고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웹브라우저의 기록을 관리하는 것만으로 알고리즘을 통제할 순 없다. 어쩌면 알고리즘을 관리하겠다는 반복된 그 과정마저 알고리즘의 언어로 입력돼 통제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단지 그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이다.

보고 싶은 것 너머 보이는 것들을 직시하는 순간 깨닫는 것은 다양성의 가치다. 알고리즘에 가려져 놓쳤던 것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념적 가치 이전에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자세였을지도 모른다.


권구성 문화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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