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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떨어진 낡은 전투기, 이젠 없애야 할 때다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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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1-22 06:00:00 수정 : 2022-01-22 20: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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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F-5E 전투기가 훈련을 위해 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1986년. 지난 11일 추락한 경기 수원시 공군 제10전투비행단 소속 F-5E 전투기가 도입된 시기다. 1993년. 추락한 F-5E를 조종하다 순직한 고 심정민 소령이 태어난 연도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 가능한 최신 기종을 쓰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아이폰이나 갤럭시를 주고, 본인에게는 1990년대식 구형 폴더폰으로 통화를 하라고 하면 기분이 어떨까. 

 

심 소령도 동료나 선배들처럼 최신 기종인 KF-16, F-15K, F-35A를 조종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기종은 본인보다 7살 많은 F-5E였다. 그래도 심 소령은 영공을 수호하는 공군 장교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간직한 채 자신보다 나이 많은 전투기를 몰았다. 공군은 그런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

 

현대전에서 위력을 상실한 노후 전투기를 계속 사용하는 상황에서 이같은 사고는 언제든 재발할 우려가 있다. 공군이 사고가 발생한 F-5, F-35A를 제외한 나머지 기종의 비행을 순차적으로 재개했지만 “근본적 해결책 마련 없이 비행을 재개하는가”라는 비판이 나온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근본 대책 마련, 쉽지 않아

 

이번 사고는 F-35A 스텔스전투기와 공중급유기,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 등 첨단 기종을 보유한 공군이 조종사보다 나이 많은 노후 기종을 여전히 적지 않게 운용중이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1970년대부터 국내에 도입된 F-5E의 설계 수명은 최대 25년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대 초반에는 퇴역해야 했던 기종이다. 하지만 수명연장을 거듭하면서 퇴역 시기도 계속 늦춰졌다.

공군 F-5E 전투기 추락사고로 순직한 고 심정민 소령의 안장식이 14일 오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가운데 동료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대전=연합뉴스

이에 따라 국산 KF-21 전투기 120대가 도입되는 2026~2032년까지 일선에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에서는 영화촬영이나 가상적기 용도로 민간 업체가 사용하는 기종을 한국 공군은 앞으로 최대 10년 동안 사용하게 되는 셈이다.

 

성능도 현대전에 맞지 않는 수준이다. 기관포와 로켓, AIM-9 단거리 공대공미사일에 한국형유도폭탄(KGGB)을 장착한 F-5E는 국산 FA-50보다 공격력이 약하다. 

 

KF-21로 완전히 대체될 때까지 최대 10년간 또다른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가장 이상적인 대책은 전력 공백을 최대한 줄이면서 노후 기종인 F-4E, F-5E/F 100여대를 서둘러 퇴역시키는 것이다. 

 

무장, 정비 등 지상 요원 소요가 많은 노후 기종을 일선에서 조기에 물러나게 하고, 관련 인력을 다른 기종에 투입하면 전투기 운영유지에도 도움이 된다. 

공군 제18전투비행단 장병들이 비상 상황 때문에 활주로에서 이탈한 전투기를 크레인으로 견인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현재 시점에서 공군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은 신규 기체를 조기에 도입하는 것이다. 

 

공군이 들여올 수 있는 신형 기종은 F-35A다. F-35A 40대를 도입한 만큼 20대를 추가 구매해 전략적 타격능력을 강화하고 노후 기종 퇴역에 따른 전력공백도 보완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발생한 F-35A 동체착륙이 변수다. 제작사인 록히드마틴은 설 연휴 직후 조사단을 한국에 파견, 사고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조사 결과가 언제쯤 나올 지는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다.

 

공군은 내심 F-35A 20대 추가 도입을 원하고 있지만. 사고 조사가 완료될 때까지는 F-35A 추가 도입에 필요한 공감대 형성조차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사업 착수 시점이 1년 지연되면 전력화 시기는 2~3년 이상 늦어지는 것이 전력증강사업의 일반적 특징이다. F-35A 추가 도입이 노후 기종 퇴역으로 인한 전력공백을 제때 해소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한 셈이다.

공군 제1전투비행단 활주로에서 F-5 전투기가 이륙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미국이나 유럽에서 중고 전투기를 임대하는 방안도 거론됐지만, 현실성이 없다. 미국은 F-35의 한국 판매에 관심을 갖고 있고, 동유럽 등에서 중고 F-16의 인기가 치솟고 있어 한국이 임대할 만한 물량이 없는 실정이다. 

 

결국 KF-21이 일선에 배치되는 2020년대 후반까지 F-5E의 추가 사고 위험과 전력공백을 막을 수단은 조종사와 정비사의 헌신 외에는 없는 셈이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인의 길을 택한 청년들에게 너무나 무거운 핸디캡을 지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KF-21과 6세대 전투기 주목   

 

F-35A 조기 도입이나 중고 기종 임대가 어렵다면, 남은 대안은 KF-21이다. 

 

실제로 F-5E 추락사고 직후 KF-21의 개발과 생산, 배치를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15일 페이스북에서 “기체 수명을 넘긴 F-5를 대체할 한국형 전투기 KF-21 120대가 2026년부터 2032년까지 양산되는데, 양산 및 공군으로의 인도절차가 조기에 이뤄지도록 민주당이 뒷받침 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국제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 2021(서울 ADEX) 프레스데이 행사에 F-35A 전투기가 전시돼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KF-21은 올해 상반기 중으로 시험비행에 나설 예정이다. 현재까지의 개발 상황도 기존 일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상태에서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공동개발국인 인도네시아와의 협조 문제 등으로 기존 개발 일정을 앞당기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이와 관련해 KF-21 생산 능력과 규모를 늘리는 방안이 주목을 받고 있다. 개발사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공군에 KF-21을 납품하려면 경남 사천 본사 내 고정익 공장에 생산라인을 구축해야 한다. 

 

공장에 생산라인을 최대 4개 라인까지 확보해 생산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뒤 전체 생산량을 120대에서 200대로 늘린다면 F-5E의 완전한 퇴역 시기를 다소나마 앞당기면서 전력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KF-21이 스텔스 성능이나 정보 융합 등의 측면에서 F-35A보다 부족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무인기나 순항미사일 격추도 가능한 미티어 중거리 공대공미사일을 아시아 최초로 장착, 공중전 능력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 있다. 

 

여기에 장거리 공대지미사일도 탑재해 전략적 타격력도 갖췄다. F-35A보다 스텔스 성능이 낮은 프랑스 라팔 전투기가 세계 전투기 시장에서 선전하는 것도 이같은 공격력 덕분이다. 국내에서 만든 기체라 운영유지와 정비가 쉬워 높은 가동률을 유지하는 것도 가능하다.

한국형 전투기 KF-21 시제1호기가 격납고에 전시돼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KF-21의 초기 생산분이 F-4E, F-5E를 월등히 능가하는 성능을 갖고 실전배치되도록 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KF-21 초기 생산 물량이 전력화되자마자 실전 능력을 확보하는데 필요한 항공무장 도입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국내 개발이 추진중인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연구개발을 할 수 있도록 중·후반부 생산 물량에 탑재하도록 조정하고, 초기 생산분은 공군이 현재 사용 중인 타우러스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을 장착해 전력 지수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KF-21 전력화와 더불어 6세대 전투기 도입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 2030년대에는 일본과 중국, 러시아가 6세대 전투기를 선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F-35A와  KF-21이 우수한 성능을 지니고 있지만, 첨단 장비와 고도의 스텔스 성능을 갖춘 6세대 전투기를 상대하기는 쉽지 않다.

 

소요제기에서부터 전력화까지 10∼15년이 걸리는 상황을 감안하면, 지금부터 6세대 전투기 도입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F-5E 추락사고는 항공우주전력 강화에 몰두하던 공군의 민낯이 드러난 사고였다. 조종사보다 더 나이 많은 기종을 몰도록 하는 것은 영공 수호의 열정에 넘치는 젊은 장교에게 너무나 가혹한 일이다.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이 없다면, 이같은 사고는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 낡은 전투기를 하루 빨리 없애는 방안을 정부와 군이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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