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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검사 강제·식당 문전박대… 일상 파고든 ‘제노포비아’ [연중기획 - 포스트 코로나 시대]

,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 세계뉴스룸

입력 : 2022-01-13 07:00:00 수정 : 2022-01-13 10:2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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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장기화에 ‘차별’ 호소 늘어

국내 이주민 10명 중 3명 “차별 심해져”
60%는 “지하철·길거리 등서 실제 경험”
‘코로나 진원지’ 중국 출신에 집중 경향
“세금 내며 일해도 지켜주지 않아” 울컥

전문가 “외부충격에 사회적 불안 표출”
민·관협력 모니터링 등 대응 제도 필요

#1. 지난해 10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유럽에서 한국사람 인종차별’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영상에는 한국인 여성이 유럽의 한 거리를 걷고 있을 때 행인이 갑자기 여성 얼굴에 주먹질을 하거나, 식당에서 밥을 먹는 동양인을 비하하는 ‘눈 찢는 행위’를 하는 모습 등이 담겼다. 이 여성은 누군가가 자신이 들고 있는 카메라를 거칠게 치고 지나가자 결국 눈물을 흘린다.

 

#2. 중국인 유학생 A(22)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이후 황당한 일들을 겪기 시작했다. 중국인 친구와 함께 택시를 타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택시기사가 다짜고짜 “빨리 내리라”고 윽박지른 것이다. 평소 자주 들렀던 식당 입구에는 ‘중국인 출입금지’라고 적힌 종이가 나붙었다. A씨는 “중국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피하거나 비방하는 것을 네 번 경험했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제노포비아 확산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가 확산하고 있다.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들은 일상 곳곳에서 차별과 혐오를 겪고 있다고 호소한다.

12일 국가인권위원회의 이주민 인권 실태 모니터링 결과를 보면, 307명의 응답자 중 29.2%가 코로나19 이후 일상에서 차별과 혐오가 심해졌다는 것을 느낀다고 밝혔다. 코로나19와 관련한 실제 차별을 겪었다고 응답한 외국인은 전체의 60.3%에 달했다.

국내 체류 외국인들이 차별을 경험한 장소(복수응답)는 지하철과 버스 같은 대중교통수단과 식당, 길거리 등 대중시설이 31.5%로 가장 많았다. 이어 직장(18.9%)과 의료기관(8.3%), 주민센터 등 행정기관(6.0·%), 인터넷게시판·댓글(5.0%), 언론보도(3.3%), 학교·어린이집(3.0%), 가정(1.7%) 등의 순이었다. 거의 모든 일상 공간에서 차별을 느낀 셈이다.

제노포비아는 특히 코로나19가 발병한 것으로 알려진 중국 출신들에게 집중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발간 학술지 ‘보건사회연구’에 지난해 5월 게재된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한국 거주 중국인 유학생의 사회적 낙인경험’ 논문에서는 코로나19 유행 이후 이 같은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심층조사에 참여한 중국인 유학생 20명은 온라인상 또는 지역사회에서 비난, 경계, 거부, 멀리함 등 다양한 형태의 ‘낙인’을 경험했다고 입을 모았다.

◆외국인들 “일상에서의 차별·거부 너무해”

중국인 유학생 B(29)씨는 최근 다니는 대학 안에서 노골적인 차별을 겪었다. 기숙사에서 입주정보를 쓰는데 기숙사 관리자가 긴장한 표정으로 자신의 이마와 손목의 체온을 5번이나 잰 것이다. 그는 “담당자에게 ‘나는 이번에 들어온 게 아니라 수년 전부터 한국에서 살았다’고 설명한 뒤에야 긴장을 푸는 것 같았다”며 “내가 단지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한국인들이 이렇게까지 경계하는구나 싶어 서글펐다”고 말했다.

중국인뿐이 아니다. 딸과 함께 7년째 한국 생활을 하고 있는 러시아인 C(41)씨는 평소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이 2년 전부터 자신을 멀리하는 것 같아 좌절감까지 느낀다고 토로했다. C씨는 “코로나 이후 제가 해외에 나갔다 돌아온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나와는 밥도 같이 먹지 않으려하고, 말조차도 걸지 않는다”며 한숨을 쉬었다.

전남 화순군에 거주하는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D씨는 코로나19 이후 외부 출입이 통제됐다. 근무시간이 끝난 뒤에도 그는 공장 안에 갇혀 있어야 했다. 공장장은 출입문을 잠그고 외출 여부를 감시하기 위해 폐쇄회로(CC)TV까지 켜놨다. D씨는 “우리는 공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바이러스 노출 위험이 적다”며 “우리는 잠재적 바이러스 전파자로 취급하면서 정작 한국 직원들은 출·퇴근하며 가족·친구 등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베트남인 E(35)씨는 코로나19 유행 이후 자신은 한국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부쩍 느낀다고 했다. 감염병 초기 마스크 구입이 어려움에도 한국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을 공적 마스크 공급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 재난지원금이나 생계비 긴급지원 대상은 언감생심이다. E씨는 “한국에 세금을 납부하고, 돈을 쓰고, 오랫동안 일했지만 여전히 나는 남의 나라 사람이구나, 이곳은 우리를 지켜주지 않겠구나 생각했다”고 씁쓸해했다.

◆정부·지자체 방역조치도 내·외국인 차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방역조치도 외국인 노동자를 감염확산의 원인으로 보는 차별적 시선이 내재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3월 서울시와 경기도 등 일부 지자체가 외국인 노동자에게만 코로나19 검사를 강제하는 행정명령을 내린 게 대표적이다. 이를 외국인에 대한 명백한 차별로 판단해 중단을 권고한 국가인권위 결정이 내려지고 나서야 이들 지자체는 행정명령을 철회했다.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를 위해 정부가 도입한 방역패스(코로나19 예방접종 인증 시스템) 조치도 제노포비아 논란에 휩싸였다. 국내 체류 외국인들은 주로 선불폰을 이용하기 때문에 접종완료 인증이 안된다. 또 출신국 등 해외에서 백신을 접종한 외국인들은 방역패스와 함께 ‘자가격리면제서’까지 제시해야 ‘접종 완료자’로 인정 받는다. 사단법인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의 고기복 대표는 “일상생활과 근로활동에 대한 당국의 제약이 너무 심해 고통스럽다고 호소하는 이주민들이 꽤 많다”고 전했다.

한국행정연구원 사회통합실의 정동재 연구위원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차별과 혐오는 테러리즘 발호 및 경제위기, 코로나19와 같은 외부 충격이 발생할 때마다 나타나는 사회적 불안을 표출하는 한 형태”라고 진단했다.

코로나19 발생과 확산의 책임을 특정 집단에게 전가하거나 ‘낙인 찍기’ 하는 방식의 사회적 대응은 방역조치의 실효성을 높이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게 전문가들 중평이다.

정 연구위원은 “영국, 미국 등이 외국인 혐오에 대한 신속대응팀을 구성해 운영한 것처럼 한국도 민관협력 방식을 통해 온·오프라인에서 발생하는 각종 혐오 표현이나 주장 등을 모니터링하고 신속하게 대응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심미승 전남대 교수(행정학)는 “바이러스 확산 차단이란 명분 아래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무차별적 배제와 차단이 쉽게 용인된다면 우리 사회는 더욱 차별적인 비극으로 치달을 것”이라며 “더불어 살아가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보람 기자 bor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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