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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이겨내길…" 동료들 기원 속에 떠나간 윤성근 부장판사

입력 : 2022-01-12 01:00:00 수정 : 2022-01-11 13:2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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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학계 아우른 국제거래法 전문가
변호사로 10년 근무 후 법관 임용돼
암 투병 중 동료들 쾌유 응원 이어져
윤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

한국 사법부와 법조계에서 국제거래 전문가로 꼽혀 온 윤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11일 별세했다. 향년 63세.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충암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14기)을 수료한 뒤 꽤 오랫동안 변호사의 길을 걷다가 뒤늦게 판사가 됐다. 변호사 경력자 중에서 법관을 뽑는 미국식 법조일원화의 대표적 사례에 해당하는 셈이다. 우리나라도 요즘은 사법연수원 수료자를 즉시 판사로 임용하는 제도를 폐지하고 변호사 등으로 일정한 경험을 쌓은 이들 가운데 일부를 법관에 임명하는 제도를 시행 중이다. 고인은 이런 시스템이 국내에선 아직 낯선 시대에 몸소 법조일원화의 선구자가 되었다.

 

변호사 시절 고인은 법무법인 김앤장에서 국제거래 전문가로 활동했다. 그렇게 약 10년간 재야 법조계에 머물다가 뜻한 바 있어 1998년 인천지법의 경력법관으로 임용됐다. 재야에서 재조로 무대를 옮긴 셈이다. 그때부터 사법부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서울고법 판사,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서울남부지법 수석부장판사, 부산고법 부장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을 거쳤다. 2015년 2월 법원장으로 승진해 서울남부지법원장을 2년간 지낸 뒤 2017년 다시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재판 일선에 복귀했다. 고인이 서울남부지법원장으로 재직할 당시를 기억하는 한 지인은 “부드러운 법원 분위기를 만들어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불합리한 관행을 꾸준히 개선하신 분”이라고 회상했다.

 

법원 밖에 있을 때처럼 사법부 내에서도 국제거래 전문가로 통했다.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의 국제거래 전담재판부 재판장을 맡은 것이 대표적이다. 법원 내 학술단체인 국제거래법 커뮤니티 회장과 재조와 재야를 아우르는 학술단체인 국제사법학회 부회장 등도 수년간 역임했다. 최근까지도 상설중재재판소(PCA) 재판관, 한국국제사법회·국제거래법학회 고문을 담당해왔다.

 

그의 위상은 국제사회에도 인정을 받아 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 전문가 회의를 위한 대한민국 대표단을 이끌기도 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고인에 대해 “영어, 중국어, 일본어, 독일어 등 외국어에 능통하고 역사와 고전, 전통문화 등 인문학에도 깊은 조예가 있었던 분”이라며 “국제상사거래·해상·중재 분야에서 실무계와 학계를 아울러 손꼽히는 이론가로 정평이 나 있다”고 평했다.

 

고인이 암으로 투병하던 지난 연말 그의 사법연수원 14기 동기생들이 ‘법치주의를 향한 불꽃: 법창에 비친 윤성근의 초상화’이란 제목의 전자책을 펴낸 것은 커다란 화제가 됐다. 이 책은 후배 판사들이 당시만 해도 병석에 누워 있던 고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들을 엮어 만들었다.

암 투병 중이던 윤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쾌유를 빌며 그의 사법연수원 14기 동기생들이 펴낸 전자책 ‘법치주의를 향한 불꽃: 법창에 비친 윤성근의 초상화’. 출판사 제공

한 후배 법관은 고인이 형사합의부 재판장으로 일하던 시절 실형을 선고한 피고인한테 “이번 일로 수형 생활을 하게 됐지만 누구도 원망하지 말고 스스로 돌아보며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라고 덕담을 건넨 모습을 떠올렸다. 고인이 판사가 된 후 재판장으로서 멋지게 재판하는 모습을 가족에게 보여주려고 어린 두 아들을 법정에 데려와 방청을 시킨 일화를 소개한 어느 중견 법관은 “그때 법원장님의 행복한 미소가 잘 어울리셨다”며 “하루속히 쾌차해 후배들한테 보석 같은 지혜와 지식을 설파하실 수 있길 기원한다”고 했다.

 

고인의 서울대 법대 선배이자 사법연수원 14기 동기생인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전 법원도서관장)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던 2018년 6월 열린 서울고법 부장단 긴급회의에 참석한 고인이 “소위 사법농단 혐의 법관 수사를 검찰에 의뢰하는 것에 반대한다”며 명확한 의견을 표명했다고 기억했다. 그러면서 고인을 향해 “지금까지 주권자인 국민의 공복으로 너무나 자랑스러운 한 길을 걸어왔다”고 회상했다.

 

유족으로 아들 진석·상준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 차려졌다. 유족은 코로나19를 감안해 조문을 정중히 사양키로 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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