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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진 그림엽서에 담긴 100년전 우리의 삶

입력 : 2022-01-08 01:00:00 수정 : 2022-01-07 20:5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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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장원/글누림/1만5000원

건축가의 엽서-네모 속 시간여행/손장원/글누림/1만5000원

 

신문물로서 19세기 말 유럽에서 처음 등장한 엽서는 생각지도 못한 역할을 한다. 귀족계급이나 지배계층의 전유물이던 ‘예술’을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즐기고 교감하는 ‘문화’로 바꾸는 한 계기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 처음 엽서가 나온 건 1900년 무렵이었다. 프랑스인 샤를 알레베크(한국 이름 ‘안례백’)가 1900년 파리에서 열린 엑스포에 대한제국 정부 대리인으로 참가하며 만든 ‘알레베크 그림엽서’ 48장이었다.

그는 우리의 궁궐과 풍속을 촬영한 사진을 바탕으로 제작한 이 엽서를 프랑스 현지에서 초콜릿이나 비누, 화장품 등을 팔 때 끼워주거나 한국관을 찾은 이들에게 기념품으로 판매했다. 가로 14㎝, 세로 9㎝ 크기의 때 묻고 헤진 종잇조각에는 100년 전 우리의 삶이 담겨 있다. 엽서에 담긴 그림과 문자 기록을 맞추어 보면 건물에는 누가 살았고, 거기에선 무슨 일이 있었다고 알 수 있다. 누군가의 희열과 눈물이 배어 있다는 사실도 깨달을 수 있다.

근대건축을 연구하는 저자는 엽서 속 도상 자료를 통해 가까운 과거, 근대를 탐험한다. 중심지는 저자가 터를 잡고 있는 인천이다. 엽서 속 이미지와 유사한 자료에서 잘려나간 장면을 찾아 씨줄과 날줄을 엮고 지도, 문헌, 신문기사를 검색해 부족한 부분을 메웠다. 사진 속 공간과 현재의 공간을 일치시키기 위해 답사도 병행했다.

저자는 인천의 실체적 근대를 탐구한다. 엽서에 등장하는 건물에 살았거나 회사를 운영했던 일본인들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려 했다. 한때 인천의 주류였던 그들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려 했다. 일본인은 일제의 전령사로서 착취의 주체인 동시에 근대문물의 전달자였다.


강구열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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