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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 “당연했던 무대 공연… 코로나 후 예술의 소중함 깨달았죠” [세계초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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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1-04 18:28:18 수정 : 2022-11-02 10:3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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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유행 첫해 9개월간 모든 공연 취소
2021년 4월 첫 지방공연 열며 눈물 펑펑
‘호두까기인형’ 전석 매진 행렬에 행복
출연진 320명 매주 PCR검사 하며 조심

창단 36년 만에 2021년 연습실 석달 닫아
무대 서는 것만으로 감사하며 서로 배려
단원들, 수입 끊겨 정부 지원금으로 버텨
‘예술을 위해 내가 존재하는 것’ 늘 강조

“코로나19는 우리에게 ‘당연한 게 당연한 게 아니다’를 가르쳐줬습니다. 이전까지 당연했던 일상이나 예술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일깨워준 거죠. 그렇게 코로나19 대유행을 겪으니까 그냥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하고 감사한 거죠.”

 

한 시간 남짓 인터뷰 동안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은 두 차례 눈시울을 붉혔다. 예술의 소중함, 그리고 단원을 향한 애틋함과 고마움을 말하다 울컥한 것. 결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탓이다. 그럼에도 국내 최대 규모인 세종문화회관에서 ‘호두까기인형’ 전석 매진 행진으로 2021년을 마무리한 문 단장은 지난달 24일 공연을 앞둔 세종문화회관에서 가진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코로나19 대유행이 역설적으로 입증한 예술의 가치와 당위성을 강조하며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호두까기인형’은 연말 인기 레퍼토리인데, 2020년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무대를 열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지난 연말은 공연할 수 있었고, 그것도 전석 매진을 기록했는데 감회가 궁금합니다.

 

“2020년에도 ‘이렇게 한 해를 끝내서는 안 되겠다’며 어떻게든 ‘호두까기인형’만은 무대 올리려 했는데 고심 끝에 결국 공연 사흘 전 취소했거든요. 사실 객석보다 무대 뒤가 더 힘들어요. 우리 ‘호두까기인형’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학생이 거의 40명 정도 출연하는데 더 걱정이 클밖에요. 그래도 ‘호두까기인형’으로 조금이라도 관객을 위로해드리고 싶었는데 다행히 올해 공연은 무사히 열 수 있었습니다. 밤마다 무대를 보면서 이렇게 우리가 춤을 출 수 있고 관객에게 기쁨과 위로를 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우리나라 발레 역사의 한 장을 쓰고 있는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 1989년 세계 최고 발레단으로 손꼽히는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에 초청돼 동양인 최초로 ‘지젤’의 주연을 맡았다. 지난 95년부터는 유니버설발레단장으로서 한국 최고 역사를 지닌 발레단을 이끌고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역병이 대유행하는 시대에 무대를 열어야 하는 예술단체 수장으로서 걱정이 얼마나 큰가요.

 

“다른 단체 공연이 확진자 발생으로 취소되는 상황을 보면서 정말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해야했습니다. 출연진들에게 ‘정말 너무너무 죄송하지만 공연 끝날 때까지만큼은 집에서도 마스크를 쓰자. 그리고 가족과 식사할 때 반찬도 덜어서 먹어달라. 그렇게 조심하자’고 부탁했을 정도예요. 오케스트라 단원까지 포함해 출연진이 320명쯤 되는데 매주 전원 PCR 검사를 했죠. 저도 그렇지만 단원들도 엄청나게 부담감을 가지고 임했습니다.” (유니버설발레단 관계자는 “심지어 함께 사는 부모님 집에서 나와 임시 숙소를 구한 무용수도 있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시대에 모두가 큰 고통을 겪고 있는데 예술단체가 그중에서도 피해가 큰 것 같습니다. 어떻게 코로나19 2년차를 보냈나요.

 

“대유행 첫해부터 거의 9개월 동안 모든 공연을 취소하다가 지난해 4월에야 첫 지방공연을 했어요. 단원 10명 정도가 무대에 오르는 작은 공연이었는데 내내 울었습니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만 들어도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느낌이었어요. 평생 예술을 하고 있었지만 ‘이 세상에 문화·예술이 왜 필요한지’ 그날처럼 깊이 깨달은 적이 없었던 거였어요. 눈물이 계속 흐르는데 마음이 치유되는 걸 느꼈습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매회 2000여석이 매진을 기록하는 진기록을 세웠습니다. 그토록 이 어려운 시기에 많은 이들이 ‘호두까기 인형’을 줄 서서 본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호두까기인형’은 얼굴이 흉측하죠. 이가 크고 표정이 딱딱하고. 그래서 작품 속 다른 어린이는 ‘못 생겨서 싫어’하고 다 외면하는데, 여주인공 클라라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끌린 거죠. 클라라만은 내면의 아름다움을 느낀 겁니다. 그래서 클라라가 준 순수한 사랑 때문에 호두까기인형 속에 숨어있던 왕자가 세상으로 나올 수 있던 거죠. 사실 우리는 살면서 외적인 것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곤 하는데, 누구나 내면에 왕자, 공주가 숨어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세상에서 외면받거나 힘들어하는 이들 모두가 왕자, 공주이고 사랑받을 수 있는 중요한 존재라는 걸 일깨워주는 작품입니다.”

―선화예고 2학년인 박상원도 이번 무대에서 클라라로 발탁돼 화제였습니다. 역시 선화예고 2학년인 김수민도 지난봄 ‘돈키호테’에 이어 이번 무대에서도 주역으로 활약했는데, 이처럼 열일곱 살 어린 무용수에게 주역을 맡기는 파격과 과감한 발탁 배경이 궁금합니다.

 

“지금은 스타가 된 김기민과 박세은처럼 유니버설발레단은 오래전부터 뛰어난 무용수는 굳이 군무를 거치지 않았더라도 주역을 시켰습니다. 게다기 우리가 운영하는 유니버설주니어 컴퍼니가 5년째 접어드니 정말 뛰어난 아이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아무리 우리가 세우고 싶어도 아무나 못 세우잖아요. 충분히 주역하고도 남는 실력을 갖고 있으니 본인과 발레단 모두를 위한 선택인 거죠. 어린 꿈나무는 더 큰 꿈을 키울 수 있고, 우리도 다양한 무대를 만들 수 있습니다.”

 

―유니버설발레단 공연은 단장님의 무대 해설도 빼놓을 수 없는 풍경입니다. 또 공연 전후나 휴식시간에 로비에서 격의 없이 관객과 소통하는 모습이 인상적인데, 매번 그런 시간을 갖는 게 힘들지는 않은가요.

 

“공연 후 다가와서 ‘좀 더 깊이 작품 속으로 들어갈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는 말씀을 해주곤 합니다. 저한테는 굉장히 큰 보람이에요. 가령 ‘돈키호테 여주인공의 부채질이 갖는 뉘앙스’ 이런 건 저도 제 스승한테 배운 걸 그대로 전하는 건데 무용수들도 몰랐던 이야기라고 해요. 발레 대중화에는 꼭 필요한 노력이고, 관객을 만나는 것도 너무 기쁘고 전혀 힘들지 않아요. 오히려 격식 있는 자리에선 좀 힘들어요. 실수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도 여전히 남아있어 조심해야 하는데 관객분들한테는 고마울 따름이죠.”

―호두까기 인형으로 어렵지만 성공적으로 지난해를 마무리했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민간 예술단체를 이끄는 경영인으로서 어떤 때가 제일 힘들었나요.

 

“창단 36년 만에 처음으로 연습실 문을 거의 3개월 동안 걸어 잠갔습니다. ‘연습을 하루만 쉬면 내가 알고, 이틀 쉬면 선생이 알고, 사흘 쉬면 세상 모두가 안다’는 게 무용수 세계인데 현역 무용수들이 어떻게 그 시간을 견뎠을지 생각만해도 끔찍해요. 그걸 겪으면서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게 아니고 감사한 것’이란 걸 깨달았죠. 그런 시절을 겪으니 단원들도 그냥 무대에 설 수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하고 서로를 배려하게 됐습니다. 특히 정부에 너무 감사한 게 공연이 모두 취소되면서 수입원이 없어졌잖아요. 그때 정부 지원금이 굉장히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게 없었다면 지난해를 넘기기 어려웠어요. 또 지원을 받으려면 발레단 문을 완전히 걸어잠그는 휴업 조치에 단원들이 동의해줘야 하는데 협조해줘서 너무 감사한 마음입니다.”

 

―정부 지원금 아니었으면 경영이 힘든 정도였나요.

 

“힘들었죠. 그래서 어렵게 지원금으로 버티고 문을 열었는데, 다시 코로나19 위기가 심각해져서 결국 구조조정을 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생살’을 도려내지 않고선 버틸 수가 없는데 주역 무용수들이 와서 ‘우리 급여를 줄이세요. 그래서 한 명이라도 더 같이 갈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그렇게 단원들도, 예술 스태프도 모두 급여 삭감을 부탁도 안 했는데 먼저 이야기를 꺼내주셔서 금전적으로도 도움이 됐지만 얼마나 마음에 큰 힘이 됐는지 몰라요.”

―세계 정상급 무용수로 활약했던 단장님에게 현역 단원은 까마득한 후배 무용수이기도 합니다. 항시 강조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예술을 위해 내가 존재한다. 예술이 나를 위해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하죠. 자신의 욕심을 위해 예술을 하면 안 된다 는거죠. 그 마음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또 한국 무용수는 주로 테크닉 위주로 단련되다보니 외국 출신 단원에 비하면 표현력이 약해요. (직접 ‘호두까기인형’의 클라라가 잠에서 깨어나는 동작을 해보이며) 이렇게 클라라가 잠에서 깼어요. 그러면 꿈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는데, 그 동작 뒤에 생각 없이 텅빈 동작만 하는 거예요. 이걸 왜 하는지 보이지 않아서 제가 그걸 왜 하는지 물어보죠. 추상작품이 아닌 한 표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늘 강조를 해요. ‘이유 없이 기쁘고 이유 없이 슬퍼보이는데 그러면 안 된다. 관객에게 네 생각을 보여줘야 해’라고 강조하죠.”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은… ●1963년 1월 25일 미국 워싱턴 출생 ●선화예중, 영국로열발레학교, 모나코왕립발레학교 ●미국워싱턴발레단원, 러시아 키로프(현 마린스키)극장 객원 주역 ●유니버설발레단 창립멤버, 수석무용수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예술대 무용예술학 명예박사 ●1995∼ 유니버설발레단장 ●(재)효정한국문화재단 이사장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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