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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별 대책 제각각… 극단 선택 막을 컨트롤타워 필요” [그 아이가 보낸 마지막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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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2-22 06:00:00 수정 : 2021-12-21 22:2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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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정책 대개조 필요하다

교육·여가·복지부 ‘따로국밥’ 정책
매년 학생들 정서·행동 특성 검사
지속적 상담 없이 다른 곳 떠돌아

위기 청소년 특성 고려한 대응 미흡
부처 망라한 통합 지원 기구 필요
청소년 특화 거점 병원 확보 시급

‘위클래스’ ‘청소년상담 1388’ ‘기초정신건강복지센터’.

청소년 자살예방 및 정신건강을 위해 교육부와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가 제각각 벌이고 있는 대표 사업이다. 교육부는 주로 ‘학교 내 학생’을, 여가부는 ‘학교 밖 청소년’을, 복지부는 ‘치료 필요성이 높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정책을 펼친다. 언뜻 보면 다양한 상황에 놓인 청소년을 지원하기 위한 범정부 차원의 노력으로 읽힌다. 하지만 극단적인 선택 앞에 서있는 청소년을 마주하는 현장 전문가들은 이런 ‘따로국밥’식 정책이 예산과 인적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범부처 합동대응? “아이들만 떠돈다”

전문가들이 청소년 자살예방을 위해 강조하는 것 중 하나는 ‘위기 학생의 조기 발굴’이다.

21일 교육부 등에 따르면 교육부는 학생의 정서·행동 발달 문제를 발견하기 위해 초등학교 1·4학년과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매년 정서·행동 특성 검사를 실시한다. 여기서 조치가 필요한 학생으로 판단되면 지역 상담센터 등 전문기관에서 2차 조치를 받도록 안내한다. 이후 심층사정평가와 병원 치료·상담 연계는 복지부 소관으로 넘어간다. 학교에 다니지 않는 청소년은 여가부에서 정신건강 관리 사업 등을 진행한다. 하지만 학교에 다니던 중 그만두면 정보 등이 연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상담기관들은 각 부처가 내놓는 사업이 분절돼 있다고 지적했다. 사업이 유기적으로 구축되지 않고 여러 부처가 개입하면서 서비스 질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김은지 한국교육환경보호원 청소년모바일상담센터 센터장은 “현 시스템은 교육청 예산으로 20회 정도 상담을 받다가 이후 복지부 예산으로 다른 곳에서 10회 정도 상담을 이어가는 방식”이라며 “위기 청소년은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상담이 필요한데 상담사와 관계를 이어가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떠돌아야 하는 처지”라고 설명했다. 박지혜 보라매청소년센터 생명사랑팀 팀장도 “결과적으로 자살예방 사업이 잘게 쪼개지고 예산이 나뉘면서 청소년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줄어든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한 청소년이 극단 선택을 하면 주변 청소년들도 ‘자살 고위험군’이 된다. 관리가 개입돼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에도 체계적 관리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학교 안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다른 학생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 관리 등을 위해 교육부가 개입하지만, 학교 밖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교육부나 학교는 개입하지 않는다. 극단적 선택의 원인으로 가정 문제가 지목되면 복지부가 개입해야 하는 식이다. 자살예방·사건 대처의 컨트롤타워가 없는 셈이다.

정부도 이 문제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지난 9월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주재한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위기 청소년에 대한 부처별 지원체계가 여전히 분절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청소년 대상별 특성을 고려한 지원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청소년의 심리·정서적 문제가 커졌지만, 학교 밖 청소년 등을 관련 기관이나 시설에 연계하는 체계가 구축되지 않았다는 문제점도 제기됐다. 백민정 수원시자살예방센터 팀장(정신건강사회복지사)은 “여러 부처에서 청소년 자살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중요하지만, 사업들이 유기적으로 구축되지 않고 불필요하게 중복돼 있다”고 말했다.

◆청소년 정신건강 지킬 통합모델 필요

전문가들은 정신건강 위기에 처한 청소년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통합된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방수영 노원을지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신건강 문제를 가진 학생 중 가정 내 문제가 있는 경우 학교의 개입이 어려워 교육부가 할 수 있는 역할도 절반에 그친다”며 “‘부처를 망라하는 기구’를 통해 아이와 가정에 대한 지원체계를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윤호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본부장은 “현재 한국사회는 청소년 자살예방의 컨트롤타워가 없는 상황”이라며 “자살예방정책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상향하고 장기적이고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자살예방 정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신건강 위기에 놓인 청소년이 적기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관련 서비스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입법조사처가 5월 발간한 ‘아동·청소년의 정신건강 현황, 지원 제도 및 개선 방향’ 보고서는 “정부 조사를 통해 관심군으로 발굴한 청소년을 연계하고 치료 과정에 이르게 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연계 의료기관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청소년에 대한 주기적인 정신질환 실태조사 실시 △청소년 인구 기준으로 권역별 청소년 전문 기초정신건강복지센터와 정신재활시설 확충 △학교 안팎의 상담센터에 정신건강 담당 인력 확충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권용실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교육부 학생정신건강지원센터장)는 “현재는 자살이나 자해 시도를 한 고위험군 학생 등에 한해 상담·진료비 지원이 가능한데, 정신건강 문제를 일찍 발굴하려면 초기 치료비용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며 “청소년에 특화한 거점병원과 전문치료 병상도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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