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페리노 차관 “한국기업 투자·생산
정부차원 지원 법·제도적 기반 마련”
“韓 부품·공급업체와 수년 걸쳐 협력
FTA 등 통해 더 많은 기업 진출 기대”

지난해 2월 이른바 ‘전선뭉치’에 불과한 와이어링 하네스가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으면서 국내 자동차 공장이 줄줄이 가동을 멈추는 사태를 맞았다. 올해는 디젤 차량의 배기 오염도를 낮추는 장치에 쓰이는 요소수 품귀 현상이 국내 산업계 전반을 불안에 떨게 하기도 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기존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던 가치사슬(Value chain)이 무너지면서 생긴 현상들이다.
9일 서울 용산구 ‘서울 드래곤시티’에서 열린 ‘2021 세계아세안포럼’에서는 중국에 치중된 우리나라의 원자재 공급망을 다각화하고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국가와의 가치사슬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논의됐다.
첫 번째 세션에서는 아세안 국가 중에서도 우리나라의 5대 교역국에 해당하는 필리핀과의 제조업 분야 협력방안이 의제에 올랐다. 세페리노 로돌포 필리핀 통상산업 차관은 기조연설을 통해 “한국의 반도체와 전기자동차 등 미래산업을 선도할 수 있도록 필리핀이 적극적으로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세페리노 차관은 “지난 10월 한·필리핀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된 만큼 양국은 기존과 더 가까운 위치에서 서로 간 윈윈 협력을 증진할 수 있게 됐다”면서 “정부 차원에서 한국 기업의 투자와 생산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법적·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례로 필리핀 내에서 조립·생산하지 않더라도 한국산 전기자동차는 향후 5년 뒤에 0%에 가까운 관세율로 들어온다”며 “한국 기업이 필리핀 전기차 시장을 선점하고 경쟁력을 갖추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필리핀 가치사슬 강화가 필요한 이유로 자국의 인력, 원자재, 제도적 환경을 꼽았다. 필리핀인들이 영어에 능통하고 삼성전자를 비롯해 전자·전기 생산라인에서 일한 경험이 풍부한 데다, 이차전지의 핵심 원료인 니켈의 세계 생산량 10%를 담당하고 있는 만큼 한국에 꼭 필요한 생산기지라는 주장이다. 아울러 지난 3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기업 회복 및 법인세 감면 특별법을 통과시키면서 한국 기업에 대한 세 부담도 훨씬 줄었다고 덧붙였다. 세페리노 차관은 “필리핀 전체에서 연간 발생하는 노사 분규가 10건이 채 되지 않는데, 이는 주변국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 수준”이라면서 “한국이 필리핀의 가치사슬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세페리노 차관은 전자제품과 배터리, 전기차 등 기존 제조업 분야는 물론, 한국의 코로나19 백신 제조 기술에도 관심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의 백신 제조업체와 파트너십을 맺어서 백신 물질의 일부라도 필리핀에서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로이 코르테로 필리핀 경제구역청 부국장은 “필리핀 경제구역에 있는 4000여개 기업 중 300여개가 한국 기업이고, 44억달러에 달하는 수출 물량에 기여하고 있다”며 “필리핀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 법인세 7년 기본 면제와 현지에서 사용하는 장비와 원자재의 면세 혜택, 지방세나 각종 지방정부 수수료 면제 등의 이점을 제공하고 있고, 추가적인 혜택도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밖에 필리핀 최대 기업집단 아얄라(Ayala)의 전자기기 등 제조업 계열사인 IMI의 셔윈 넌스 전략담당 임원은 “한국의 부품, 공급업체들과 수년에 걸쳐 협력 관계를 증진해왔고, 양국 FTA를 비롯한 각종 협약을 통해 앞으로 더 많은 한국 기업이 필리핀에 진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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