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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의이책만은꼭] ‘자유 시인’ 김수영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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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1-29 22:45:07 수정 : 2021-11-29 22:4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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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움 젖어있던 초기시, 4·19 계기 현실 저격
‘김수영 전집’ 읽으며 시민들 저항정신 키워

시인의 시인 김수영은 1921년 11월 27일생이다. 지난 주말,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돌아간 문인을 기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세상에 남긴 책을 다시 읽는 일이라고 믿는다. 하여 책장에서 ‘김수영 전집’(민음사 펴냄)을 꺼내서 주말 내내 읽었다.

김수영의 초기 시는 비애, 즉 자유를 향하여 날던 정신의 헬리콥터가 현실에 부딪혀 생기는 ‘으스러진 설움’에 젖어 있다.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라는 정명 의식, 전쟁 포로로 겪은 “악귀의 눈동자보다 더 어둡고 무서운 밤”의 절망,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라는 예민한 자의식, “시와는 반역된 생활”에 대한 자괴 등이 겹쳐서 시의 ‘구슬픈 육체’를 이루었다.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이 없었다면 아마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4·19혁명을 계기로 김수영의 시는 현실을 향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인제는 상식”이라는 혁명의 기대는 실현되지 못한 채,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라는 민주당의 무능에 대한 실망과 함께 박정희 군사정권의 무자비한 폭력 탓에 좌절한다. 이후 시인의 시는 거대 악 앞에서는 꼼짝도 못 하면서 “사소한 것에만 분노하는” 졸렬하고 천박한 소시민성에 대한 자기 폭로와 함께 “풍자가 아니면 해탈”이라는 도피의식을 넘어서 “언어가 죽음의 벽을 뚫고 나가기 위한/ 숙제”를 거듭한다.

이는 “우리들이 4·19에서 배운 기술”을, “사랑을 만드는 기술”을 되찾는 길이기도 하고, 자유의 역사적·사회적 뿌리를 탐색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시인의 노력은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라는 우리 역사에 대한 긍정,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무식쟁이” 등 약자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지고, 결국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는 이름 없는 풀들의 운동역학에 대한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한국시가 자유를 그 깊은 의미까지 담아낼 수 있도록 애썼던 김수영의 작업은 여기까지였다. 1968년 불의의 교통사고가 시인을 삼킨 것이다. 생전에 시인은 ‘달나라의 장난’(1959)을 시집으로 남겼을 뿐이다. 그러나 언어는 이어받아 함께 가꾸는 것이다. ‘거대한 뿌리’(1974)가 사후 출간되자마자 김수영 열풍이 불었다. 억압적 유신체제의 암울함, 경제 발전이 영혼의 상실과 마음의 공허로 이어진 천박한 세태 등이 시인의 자유에 대한 뜨겁고 순정한 열망과 대비되면서 시민들의 정신적 자각을 가져왔다.

1981년 전두환 쿠데타 무리가 폭력으로 시민을 학살하고 ‘정화된 언어’로 머릿속을 오염시키는 가운데 ‘김수영 전집’이 지성의 망치이자 언어의 횃불로 처음 출간됐다. 김수영 시를 읽고 외우면서 시민들은 저항정신을 키워갔다. “자유를 위하여/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김수영 이후, 피로 이룩한 시민 자유를 망각하거나 부인하는 언어를 우리는 ×소리라 할 뿐 도저히 한국어라고 부를 수 없게 됐다.

때마침 연세대학교에서 ‘김수영 전자기록 보관소’를 마련해 시인의 육필원고 등을 디지털로 공개했다. 관심 있는 분은 접속해 자유를 향한 시인의 갈망을 친필로 만나보면 좋겠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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