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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오겜’·‘지옥’이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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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1-25 22:49:02 수정 : 2021-11-25 22:4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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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이 ‘오징어 게임’ 열풍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넷플릭스 TV시리즈 전 세계 인기 1위에 올랐다. 오징어 게임과 지옥은 한국의 불평등과 사회의 부조리를 꼬집는 등의 공통점이 많다. 또 다른 공통점은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는 점. 다만, 그 사이에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하나는 제작 전 부정적 평가를, 다른 하나는 처음부터 기대작이었다는 점이다.

황동혁 감독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오징어 게임’의 시나리오가 10년 전에 나왔지만 투자자들에게 거절당했다고 밝힌 바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는 종착지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그런 히스토리가 있었기 때문에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넷플릭스의 착취”라는 비판이 나오는 동안에도 황 감독은 큰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정진수 문화체육부 차장

반면 ‘지옥’의 경우는 처음부터 기대작이었다. 연상호 감독은 ‘부산행’으로 1000만명 이상을 동원한 바 있는 소위 ‘스타 감독’이고, 원작인 웹툰도 국내에서 인기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 감독의 선택도 넷플릭스 오리지널이었다. 그는 왜 흥행이 되면 성공보수를 더 받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 대신 제작비의 일정액만 수익으로 보장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을 택했을까.

업계 관계자들은 이를 두고 이유가 무엇이든 콘텐츠 시장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입을 모았다.

첫째는 토종 OTT의 세계적 성장 없이는 “재주는 곰이, 돈은 왕서방이 챙긴다”는 논란이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진 왕서방이 넷플릭스 하나였지만 이젠 디즈니플러스와 애플TV플러스 등 왕서방이 늘어난 상황이다. 지옥과 오징어 게임이 보여줬듯 해외 OTT의 경우 배우와 감독이 ‘한방에’ 세계적 인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매력이 크다. “한국이 싼값에 콘텐츠 제작 하청기지로 전락한다”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해외 OTT 선호현상은 지속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둘째는 국내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시 기획·제작 단계에서부터 철저한 자율성 보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아무리 토종 OTT가 성장하더라도, 콘텐츠 선정, 제작 과정에서 ‘감 뇌라 배 놔라’식 간섭을 계속하면 배는 산으로 갈 수밖에 없다. 제작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러나 “국내에서는 윗분들이 여전히 오래된 ‘성공 공식’으로 안전하게 가려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꼬집었다. 간섭이 심한 국내 투자, 제작환경과 달리 넷플릭스는 추가 제작비 지출에 관대하기로 유명하다.

계속되는 K콘텐츠의 성공으로 제작업계의 자신감은 많이 올라왔다. K팝과 K콘텐츠가 전 세계를 호령하는 이 시기는, 일본 만화와 할리우드 대작에 위축됐던 1990년대에는 감히 상상도 못했던 문화적 ‘유토피아’다. 이 유토피아에서 ‘지옥’이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넷플릭스로 인해 제작비 회당 30억원이 기본이 됐어요. 그런데 또다른 유망 해외 콘텐츠 생산기지가 만들어진다면 그때 한국은 어떻게 될까요. 제작비는 이미 높아진 상태에서 투자는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국내 투자는 어려워져 산업 자체가 황폐화될 수 있습니다.”

한 관계자의 K콘텐츠 ‘디스토피아’ 우려가 그저 기우에 그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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