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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의 ‘눈과 귀’가 되겠습니다” [차 한잔 나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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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1-21 22:00:00 수정 : 2021-11-21 21:3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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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D 사회적협동조합 박원진 이사장

어릴 적 중증 수준 청각장애 진단
입모양 관찰 방식 소통 한계 느껴
동시·원격 문자통역 플랫폼 개척
통역사가 타자 치면 앱으로 확인
교육현장·축제·행사 등서 활용
후원금 바탕 비용 부담 절반 줄여
박원진 에이유디(AUD)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이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문자통역 서비스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선생님과 친구들의 입술에 글자가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모두가 행복한 소통’을 지향하며 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실시간 문자통역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에이유디(AUD) 사회적협동조합 박원진(38) 이사장은 어렸을 적 원인불명의 고열을 앓고 난 뒤 중증 수준의 청각장애를 갖게 됐다. 초등학교 2학년 시절 반장이 된 그는 담임선생님이 회의 진행방식을 설명했지만 답답할 따름이었다. 입 모양을 주의 깊게 보고 들었지만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힘들게 학급회의 시작을 알리고 첫 번째 안건을 반 친구들에게 알렸지만 또 난관에 부닥쳤다. “(당시) 친구들에게 회의 안건에 대해 의견을 달라고 했는데 정작 뭐라고 하는지 들리지 않아 애를 먹었어요. 반장으로 잘하고 싶었는데 아쉬움을 느꼈고, ‘글자가 화면 속 자막처럼 입에서 나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난 15일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 에이유디 사무실에서 만난 박 이사장은 청각장애인의 소통 서비스 개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대학교에 입학해 초등특수교육전공을 한 뒤 교사를 하다 2012년 소셜벤처 경연대회에서 ‘청각장애인 자막지원 플랫폼’이라는 아이디어로 수상하며 사회적 기업가의 길을 걷게 됐다. 2014년에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문자통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협동조합 에이유디를 설립했다. 에이유디는 ‘Auditory Universal Design’의 약자로, 청각부문의 ‘유니버설 디자인’(누구나 손쉽게 쓸 수 있는 제품과 사용 환경을 만드는 디자인)을 추구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에이유디가 제공하는 핵심 서비스는 문자통역이다. 보통 많은 사람이 청각장애인의 대표언어로 ‘수화’를 꼽지만 입 모양을 살피고 소리를 듣고 말하며 ‘한국어’로 소통하는 청각장애인도 많다. 박 이사장은 “국가나 민간에서의 수화통역 지원은 많은데, 말로 소통하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문자통역 지원은 부족했다. 에이유디가 이와 관련된 것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자통역 서비스는 ‘쉐어타이핑’(Share typing)이라는 앱을 통해 이뤄진다. 문자통역사가 듣고 타자를 치면 청각장애인은 스마트기기로 보는 것이다. 과거에는 대학교 강의실 등에서 청각장애인의 자리는 늘 속기사 옆이었다. 박 이사장도 이런 불편함을 겪었다. 대학생 시절 친구들과 강의실에 함께 앉아 어울리고 싶었지만 늘 대필을 해주는 봉사자나 속기사 옆에 자리를 잡아야 했다. 하지만 ‘쉐어타이핑 앱’을 이용하면 스마트기기 화면으로 실시간 문자통역이 가능한 만큼 그러지 않아도 된다.

박 이사장은 “화면으로 보면 되니까 굳이 문자통역사와 함께 앉을 필요가 없다”며 “내가 원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고, 여러 명이 함께 문자통역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동등하게 교육을 받는 환경을 제공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에이유디의 이 같은 서비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빛을 발했다. 비대면 수업이 이뤄지는 상황에서도 동시 접속을 통한 문자통역이 가능해 청각장애인의 학습권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됐다.

교육 현장뿐만 아니라 여러 기관의 세미나, 부산국제영화제 같은 축제와 행사에도 활용된다. 청각장애인들이 상담과 진료 등 일상생활에서 문자통역을 신청할 수도 있다. 원래는 시간당 7만7000원 수준이지만 후원금을 받아 지원해 시간당 2만2000원만 지불하면 된다.

박 이사장은 에이유디를 이끌며 뿌듯했던 순간으로 ‘청각장애인들의 삶이 능동적으로 변했다고 말할 때’를 꼽았다. 박 이사장은 “소통을 위한 환경이 마련이 되니 남들처럼 동등한 환경과 기회가 부여됐다고 말하는 청각장애인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청각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과 더 나은 삶’을 목표로 나아갈 계획이다. 에이유디는 문자통역사와 청각장애인들을 자동으로 연결해 주는 ‘소통’이라는 플랫폼도 개발할 예정이다. 앱에서 등록만 하면 자동으로 원하는 시간과 장소를 선택해 문자통역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장한서 기자 jh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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