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비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신용목 “팬데믹 시대, 내 안에는 무엇이 머물고 있는가”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입력 : 2021-11-17 07:30:00 수정 : 2021-11-16 17:11:23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신용목 시인 . 남정탁 기자

어떻게 살 거냐고 물으면, 아이가 있는 형들은 집은 어디에 사고 아이들은 어떻게 키울 거야, 하는 계획이 다 있었다. 젊은 시절, 그는 자주 머뭇거리고 되묻곤 했다. 그런 인생의 계획이 다 정해져 있던 형들의 얘기치 못한 죽음을 떠올리면서, 그는 생각했다, 삶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2019년 어느 겨울, 시인 신용목은 조선대 교수임용을 위한 면접을 마친 뒤 형이상학적인 삶과 죽음을 생각하며 KTX를 타고 상경했다. 외롭게 죽을 각오도 조금은 했을 터다. 그런데 용산역에 내리자마자, 누군가 다가와서 붉은 글씨의 전단지를 건네주는데. ‘000에 투자하라’는, 욕망을 잔뜩 부추기는. 그는 행주산성 근처의 완구카페에 들어가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펜을 든다.

 

“내가 조금 더 젊었을 때는 누군가 살아 있었을 때 누구여도 좋은 누군가/ 어떻게 살 거냐/ 물으면, 나는 머뭇거리고 넌 되물었지만 아이가 있는 형들은 다 대답을 가졌다/ 그게 무서웠다/ 계획이 있다는 거 골목이 목적지를 가진다는 거/ 인생이 도달한다는 거,/ 용산역에 내렸을 때 누군가 나에게 전단지를 건넸다 빨간 고딕체로 쓰여진 미래는// 외롭게 죽을 각오를 못하게 한다”(「누구여도 좋은」 부문)

 

2000년 등단한 이래 활발하게 작품을 써온 신용목 시인이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삶과 죽음의 서늘한 비의를 묘파한 시 「누구여도 좋은」을 비롯해 53편의 시를 묶은 여섯 번째 시집 『비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시간에 온다』(문학동네)를 펴냈다.

 

전작 『나의 끝 거창』(현대문학, 2019)이 나고 자란 고향 거창에 대한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면, 이번 시집에는 코로나 팬데믹을 비롯해 전작 전후에 쓰인 시들을 묵었다. 그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혼자 있으면서 제 속에 무엇이 머물고 있는지를 집중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제1부 ‘비’를 시작으로 ‘배’, ‘밤’, ‘새’, ‘끝’, ‘꿈’, 그리고 다시 제7부 ‘비’로 구분돼 배치됐다. 시집은 출판 빙하기에도 벌써 5쇄를 찍었다.

 

중견 시인 천양희는 언젠가 기자와 만나서 요즘 열심히 쓰는, 그래서 주목하는 젊은 시인을 좀 알려달라고 하자, 첫 번째로 신 시인을 꼽았다. 독자들과 평단은 신 시인에 대해 ‘21세기 서정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작가’라고, 그의 작품에 대해선 ‘서정시의 혁신’(박상수)이라고 호평한다.

 

신용목은 도대체 어떻게 독자와 평단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그는 어떻게 가장 주목하는 젊은 시인이 됐을까. 초기에는 이미지와 모더니즘에 빠졌다고 비판받다가 ‘미래파’의 등장 이후 오히려 정통 서정시인으로 재분류된, 스스로 ‘정통 서정시와 미래파의 중간’ 또는 ‘전통시인과 아방가르드의 중간’이라고 말하는 신 시인을, 지난 12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그의 어감과 말투는 부드럽고 다감했으며, 또한 진지하고도 자세했다.

 

―시 「누구여도 좋은」 속의 표현 ‘누군가 살아 있었을 때 누구여도 좋은 누군가’는 누구를 가르키는지.

 

“모두가 그렇게 산다는 뜻으로, 모두를 의미한다. 죽은 형들 때문에 시집 『나의 끝 거창』을 냈는데, 아이가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 거냐고 물어보면 집 사고 애들을 키워야지, 하며 다 정해져 있었는데, 그런 형들이 계획과 무관하게 예기치 못하게 죽는 모습을 보고서 시작된 시다. 알고 보니,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었다.”

 

비가 오던 지난해 초, 일산 집으로 가는 신호등 앞에서 그는 우산을 쓰고 비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신호등이 바뀌자 어떤 소년이 앞서 뛰어가면서 휴대폰에 대고 하는 말, 벌써 시월이라고. 그 순간, 시가 피어나왔다, 가을비에 관한, 그 가을비 속에 숨어 있는 어떤 눈망울에 관한.

 

“비의 시체를 가득 실은 수레가 물위에 쓰러져 있다 걸음을 멈추듯 사랑을 멈춘다// 가을에는/ 투명한 기린이 걸어다닌다// 비를 딴다//…그때// 신호등이 바뀌고 야 벌써 시월이야! 앞질러 뛰어가는 소년의 목소리가/ 검은 우산을 벗어나/ 자유로 지나 가양대교 건너 노란 창문 너머 침대 위 한 방울 머리로 맺힐 때/ 시월// 비// 어느 장례식장 부의함 속으로 떨어지는/ 흰 봉투 같다”(「모든 우산은 비의 것」 부문)

―마음에 오래 남은 시라고 꼽았는데.

 

“신호등을 기다리며 그냥 바람일 수도 있고, 생각일 수도 있을 수 있는데, 길이니까 비가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모두 비 맞을 운명이다. 그 비가 무엇이든 간에…사랑과 이별과 죽음과 운명을 빌려 쓰는 모든 것들이 비처럼 내릴 테고, 우리는 젖을 것이다. 슬픔과 고통 같은 것에…. 그때, 비 너머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투명한 눈망울 하나를 만나실 수 있기를 바란다.”

 

그는 3, 4년 전 여름에서 가을 사이에는 섬진강 유곡나루 부근의 언덕에도 서 있었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먼 하구와, 하구를 향해 흐르는 강물과, 강물에 맞닿은 대지와, 노래방과, 그리고 어둠, 밤은….

 

“밤은 먼 하구에서부터 대지의 터진 강물을 달빛의 바늘로 가늘게 뜨고 있다// 유령들의 물놀이처럼 바람// 자자/ 왜 생각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잘 보이는가// 자자/ 생각의 입이 터져 노래를 부르는 노래방 간판이 꺼진다”(「유령들의 물놀이처럼」 전문)

 

―섬진강변의 밤을 노래한 것 같은데, 마지막 부문은 무슨 뜻인지.

 

“밤에 섬진강으로 가보면, 빛들이 강으로 모여든다. 마치 대지가 탁 터진 느낌인데, 달이 떠서 있는 것을 게워내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보이지 않는 바람이 부는데, 물결이 왔다갔다 하듯이 분다. 캄캄해진 순간에 생각들이 떠오른다. 생각의 입이 터져서, 그리움이든 사랑이든, 우정이든, 그것을 실어나르는 것이 노래다. 생각의 입이 터지는 것이 노래방 같은 장소일 수 있다. 그것이 종료됐을 때 완벽한 밤이 된다.”

 

젊음이 뛰놀던, 몇 해 전 여름에는 바닷가를 찾기도 했다. 그는 잠시 놀다가 비가 내리자 자리로 돌아와 다시 책을 펴는데, 아 글쎄, 처음에 느꼈던 감각이 아니었다. 「해변」은 이때의 시간을, 경험을 기억한 시편이다.

 

“해변에서/ 읽던 책을 덮어두고// 죽어 있는 돌과 살이 있는 돌을/ 골랐다// 젊음이 유행하던 계절이었다// 누가 지은 집일까, 구름은 자주 배관이 터지는 집/ 바닥을 파보겠다고 얼굴을 때리는 비// 뛰어와// 다시 책을 펼쳤을 때/ 등장인물들은 다 짐을 챙겨 떠나고 없었다”(「해변」 전문)

신용목 시인 . 남정탁 기자

―‘등장인물이 다 짐을 챙겨 떠나고 없었다’는 표현이 재밌는데.

 

“내가 어떤 장면에 있느냐에 따라 책의 느낌이 다르다. 슬픈 책이라거나 발랄한 스릴러물이야, 라고 생각하고 가져갔다가 해변에서 같이 있다가 나중에 책을 펼치면, 다른 느낌이 돼 있기도 하다. 등장인물도 내가 알고 인물이 아니다. 다른 느낌이 된다.”

 

대체로 코로나19 팬데믹과 전작인 『나의 끝 거창』 전후의 기억이 많지만, 어린 시절의 시간이 담긴 시편도 있다. 「아무도 없을 때」는 초등학교 시절 가방을 메고 거창의 어느 다리 끝에 앉아서 물을 바라보던 때의 기억이 담겼다. 두 팔을 양옆에 짚고서, 두 다리를 앞뒤로 흔들던.

 

“아무도 없을 땐, 물도 일어서서 걷는다 두 팔을 휘휘 저으며 멀리 걸어가/ 아무도 없을 땐, 물도 달린다 헉헉거리며 같이 가 같이 가자고 말하지만// 아무도 없고// 다리 끝에 앉아 있다, 두 다리를 앞뒤로 흔들면서 두 팔을 양옆에 짚고서/ 물위에 떠서도 흘러가지 않는 달을 보면서, 그게 끝나지 않는 오늘 같다고 생각하면서//…아무도 보지 않을 땐, 물도 다리에 앉아 쉰다 달 참 밝네 이런 인사를 하면서/ 배에 손을 쑥 집어넣어서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을 꺼낸다”(「아무도 없을 때」 부문)

 

이번 시집에는 대체로 긴 시편이 많지만, 의외로 짧은 시도 눈에 띤다.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시편 「미래」가 그렇다.

 

“슬픔에 고용당한 사람들은 사랑에 관한 수백 가지 말을 알고 있지만, 마음은 또한 물에 담가둔 고깃덩이 같아서 아무리 온도를 낮춰 놓아도 조금씩 상해간다.”(「미래」 전문)

 

―「미래」라는 시편은 어떻게 왔는지.

 

“그냥 혼자 가만히 있으면 슬펐다. 우리는 외로움과 심심함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데, 고독해, 라고 쓰지만 어떤 순간은 심심한 순간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이 심심함을 외로움이나 고독으로 바뀌는 어떤 순간을 주더라. 심심함은 외부로 펼치고 싶은 마음이라면, 외로움은 내부로 펼쳐지는 마음이다. 존재론적으로 스스로 되묻기 시작하고, 그 속에서 부딪치는 슬픔이 있다. 즉 내가 왜 있는지 모를 때, 내 마음들이 뻗어나갈 수 없는 걸 알았을 때, 내가 가진 사랑의 한계를 느꼈을 때, 슬픔이 찾아온다. 결국 모든 존재가 슬픔 속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혼자 있을 때는 슬픔에 고용돼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이런 마음도 고깃덩이 같아서 냄새를 풍길 수밖에 없다. 슬픔은 맑은 독 같은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현실 속에 툭툭, 던져 놓으면, 결국에는 고깃덩이처럼 냄새를 풍기면서 이 세계 속에서 썩어 문드러져 사라져갈 것이다.”

 

그는 ‘시인의 말’에서 “나는 이제 열 개를 알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그 열 개의 끝에는 문지기처럼 사랑이 서 있다는 것”이라며 “비를 보면 하나 더 알게 된다. 인간에게 사랑하라 말해놓고 모든 사랑을 슬픔 속에 빠뜨린 자가 아침을 만들었다는 것”이라고 적었다. 무슨 의미인지 조금 설명해달라고 하자, 내놓은 시인의 부연 설명.

 

“나이를 먹고 하나씩 알아가더라도 결국 사랑이라는 건 미지 속에 남아 있고 죽음 역시 미지 속에 남아 있다. 그것을 잡기 위해서 헤맨다고 하더라도, 흔적들만 만진다. 사랑이든 죽음이든 지나가고 떨어질 때만 알 수 있다. 그래서 지나가는 것, 떨어지는 것들 앞에서 서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지나갈 때, 그것을 보고 있으면 괜히 슬프다. 비를 쳐다보는 것처럼. 사랑하라고 말해놓고 우리들은 왜 슬픔 속에 세워놓는 것일까, 하는 생각으로 썼다.”

신용목 시인 . 남정탁 기자

문학평론가 양경언은 ‘해설’에서 “감히 예견하건대, 파수꾼-시인은 지금 시대가 잃어버렸거나 지워버렸거나 사라지게 만든 무언가를 찾아 우산을 씌워주는 일을 내내 할 것”(150쪽)이라며 시인을 ‘파수꾼 시인’이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파수꾼 시인’이 펼쳐 보이는 서정이 심상치 않다. 그러니까, 신 시인이 그려내는 서정은, 독특해서 쉽게 직선처럼 닿는 게 아닌, 닿을 듯 말 듯 하면서 어떤 알딸딸한, 매혹적인 어떤 느낌이나 감각으로 몰려올 지도. 개별 표현이나 문장은 다가오는데, 전체는 알 듯 말 듯한 독특한 감각의 제국으로. 만약 그 독특한 감각의 제국이 시라면.

 

“우리는 모두 알 수 없는 순간을 가지고 있다. 괜히 슬프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고,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드러내기 위해 애를 쓰다보면, 그런 문장이 나온 것 같다. 만약 알 듯 모를 듯, 짚이지 않는 어른거리는 마음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게 시가 아닐까 생각한다.”

 

겉으로는 매우 활달하고, 운동도 잘하는 편이었으며, 심지어 싸움조차 잘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혼자 있을 때에는 슬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이상한 슬픔 같은 게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슬픔의 정체를 캐묻는 와중이던, 중학교 3학년 시절 전교조가 창립되면서, 그는 이른바 ‘참교육 1세대’가 됐다. 어떤 교사는 스스로 노동자라고 외치면서 해고됐고, 어떤 교사는 전교조를 비판했고…. 전교조를 둘러싼 고민과 존재 및 슬픔에 대한 고민이 함께 버무려지기 시작했다. 시인의 원점(原點)이었다.

 

1974년 거창에서 태어난 신용목은 2000년 시 「성내동 옷수선집 유리문 안쪽」이 『작가세계』 신인상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고려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고, 현재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어떻게 문학의 숲에 들어섰는지.

 

“이유는 정확히 모르지만, 어려서부터 글을 쓰고 싶었던 것 같다. 형과 누나들 사이에서 책을 읽으면서 글을 통해 뭔가를 얻게 되고, 쓸 수밖에 없구나 하고 생각했다. 전교조 문제를 계기로 삶의 고민과 슬픔에 대한 고민과 섞였다. 그것을 찾을 수 있는 것,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시라고 생각했다. 사춘기 때부터 시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시를 쓰고 시인이 됐는지.

 

“대학 시절에는 주로 혼자 시를 썼다. 2000년 대학을 졸업하고 소설가 김영현씨가 사장으로 있던 『실천문학』에 들어갔다. 직장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해, 그 해 등단했다. 직장 생활을 1년 반 정도 하다가 그만두고 대학원에 갔다.”

신용목 시인 . 남정탁 기자

―시를 쓰면서 좋아했거나 사사한 시인이 있는지.

 

“중고등학교 때부터 작고한 김남주 시인을 좋아했다. 이후 많은 시인들을 거치며 다채롭게 읽었지만, 가장 좋아했던 시인은 허수경이었다. 그의 장례식장에 가기도 했다. 그의 두 번째 시집 『혼자 가는 먼 집』(문학과지성사, 1992)을 좋아해서 읽다보니 거의 외워졌다.”

 

그 시절 시를 조용히 마주하고 싶었던 시간이면, 아마도 그는 허수경의 두 번째 시집 『혼자 가는 먼 집』에 실린, ‘취하지 않으면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의 그의 대표시 「불취불귀(不醉不歸)」 역시 읽고 또 읽었으리라.

 

“어느 해 봄그늘 술자리였던가/ 그때 햇살이 쏟아졌던가/ 와르르 무너지며 햇살 아래 헝클어져 있었던가 아닌가/ 다만 마음을/ 놓아 보낸 기억은 없다// 마음들끼리 서로 마주 보았던가/ 아니었는가/ 팔 없이 안을 수 있는 것이 있어/ 너를 안았던가/ 너는 경계 없는 봄 그늘이었는가// 마음은 길을 잃고/ 저 혼자/ 몽생취사(夢生醉死)하길 바랐으나/ 가는 것이 문제였던가, 그래서/ 갔던 길마저 헝클어뜨리며 왔는가/ 마음아// 나 마음을 보내지 않았다/ 더는 취하지 않아/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길이/ 날 묶어/ 더 이상 안녕하기를 원하지도 않았으나/ 더 이상 안녕하지도 않았다// 봄그늘 아래 얼굴을 묻고/ 나 울었던가/ 울기를 그만두고 다시 걸었던가/ 나 마음을 놓아 보낸 기억만 없다”(다만, 기자와 시인이 이날 함께 읽은 허수경의 시는 그의 첫 번째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실천문학, 1988)에 실린 시 「폐병쟁이 내 사내」였다.)

 

등단 이후 그는 시집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문지, 2004), 『바람의 백만 번째 어금니』(창작과비평사, 2007), 『아무 날의 도시』(문지, 2012),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난다, 2016),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창비, 2017), 『나의 끝 거창』(현대문학, 2019), 『비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시간에 온다』(문학동네, 2021) 등을 차례로 펴냈다. 이 사이, 시작문학상과 육사시문학상 젊은시인상, 노작문학상, 현대시작품상, 백석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 세계를 조금 설명해 달라.

 

“저는 어떤 전략을 가지고 시를 쓰지는 않는다. 그때그때 찾아오는 것들과 제가 관심을 가지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결합하는 편이다. 첫 시집부터 세 번째 시집까지 올 때에는 노동자 문제라든가 사회정치적 문제에 되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세 번째 시집엔 용산참사 문제도 있었고, 4대강 문제도 있었다.”

 

2001, 2년쯤, 그는 우연히 소래포구가 보이는 곳에 갔다가 매료돼 소래포구와 염전 등이 보이는 경기도 시흥시 포동에 살게 됐다. 갈대 속의 바람, 새떼와 석양빛, 그리고 아버지. 이때의 시간과 경험과 기억 등이 두 번째 시집에 실린, 초기 시들 가운데 대표작인 「갈대 등본」에 비겨져 담겨 있다.

 

“무너진 그늘이 건너가는 염부 너머 바람이 부리는 노복들이 있다/ 언젠가는 소금이 설산(雪山)처럼 일어서던 들// 누추를 입고 저무는 갈대가 있다// 어느 가을 빈 둑을 걷다 나는 그들이 통증처럼 뱉어내는 새떼를 보았다 먼 허공에 부러진 촉 끝처럼 박혀 있었다.// 휘어진 몸에다 화살을 걸고 싶은 날은 갔다 모든 모의(謨議)가 한 잎 석양빛을 거느렸으니// 바람에도 지층이 있다면 그들의 화석에는 저녁만이 남을 것이다// 내 각오는 세월의 추를 끄는 흔들림이 아니었다 초승의 낮달이 그리는 흉터처럼/ 바람의 목청으로 울다 허리 꺾인 가장(家長)// 아버지의 뼈 속에는 바람이 있다 나는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초기 사회적이고 소외되고 버려진 존재에 대한 고민과 연민을 담았던 신용목의 시 세계는 네 번째 시집부터 선회해 자신에게 돌아오는 길을, 자신이 거쳐간 시간과 기억의 표징을 담기 시작했다.

 

“네 번째 시집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른다면 내가 돌아보겠다』는 밖에 있는 것들을 쓰는 게 아니라 속에 있는 것을 써야겠다고, 그것이 무엇이든 용기 있게 써보자는 생각으로 쓴 시집이었다. 한 번은 고등학교 때 함께 하던 박동학 열사가 분신을 해서 추모시를 써달라고 했는데, 이상하게 못쓰겠더라.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도, 세월호 사고가 났을 때에도, 힘들어서 시를 쓰지 못했다. 부채 의식이 있었다. 어느 순간, 무책임했다는 생각도 들고 죄책감도 들고 옛날 이야기를 해보자고 생각해 『나의 끝 거창』을 쓰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찾아오는 것과 고민하는 것을 결합한다고 했는데, 찾아오는 것을 어떻게 잡아내는가.

 

“시마다 각자 운명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 같다. 어떤 시는 단어, 어떤 시는 문장, 어떤 시는 느낌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때그때 메모하는 것이 중요하다. 메모하지 않으면 지나가버리는 시간이니까. 그 순간을 압정처럼 눌러놓고, 나중에 감각을 회복한다.(순간을 잡아야 한다는 얘기인데) 시는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우리가 시를 몰라서 못 쓰는 게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을 알아서 가려져 있어서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내가 투명한 필터처럼 있을 때, 보이는 것을 정직하게 받아들이면 된다. 내가 열리는 순간을 받아 적는다.”

 

―하루 일상은 어떤지.

 

“주중에는 수업을 준비하고 학생들과 시 공부에 매진한다. 주말에는 나머지 개인적인 일들을 한다. 보통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나이가 드니까 바뀌더라. 요즘은 밤 12시를 넘기기가 힘들다. 오전 5, 6시에 일어나서 아침에 할 작업은 하고 학교에 출근한다. 3, 4년 전부터 아침형 인간이 됐다(웃음).”

 

―앞으로 어떤 작가, 어떤 작품으로 기억되길 희망하는가.

 

“시라는 것도 유행이 있는 것 같다. 첫 시집을 냈을 때, 이미지와 모더니즘에 빠졌다고 (일부에서) 저를 나무랐다. 2000년대 중후반 이른바 ‘미래파’가 등장하자, 저는 정통 서정시인으로 분류됐다. 이게 뭐지, 하고 지나간 적이 있다. 유행에 휘둘리거나 어떤 것이 각광받는다고 변절하는 게 아니라, 내가 쓸 수밖에 없는 것을 쓸 용기가 그때에도 있으면 좋겠다. 용기를 가지고 써야 할 것을 써가되, 최대한 성실하게 게을러지지 않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용기 있게, 게으르지 않게 써나가자고, 몇 년 전 생각했다.”

 

―요즘 시들이 너무 길고 어렵다는 지적이 원로 시인들을 중심으로 많이 나오는데.

 

“일제 강점기 시들을 읽어보면 오장환이나 임화 등의 시는 짧지 않고 길고 난해한 것도 있다. 백석의 시만 해도 결코 짧지 않다. 그런 시를 쓴 사람들은 대부분 북쪽으로 가고, 남쪽에는 서정주나 김영랑, 청록파 등이 남다보니 짧고 서정시 경향이 강했다. 그 자장이 오래 동안 지속돼서 시는 이런 것이구나, 하고 박혀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2000년대 이후 그런 경향은 깨졌다. 지금 태어나는 친구들은 어플리케이션을 다룬다. 이들은 우리 때와 다른 방식으로 물성을 확보한다. 지금의 시가 어렵고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세상이 경험의 축적으로 잡아낼 수 있는 세계가 더 이상 아닌, 파편적인 세계이기 때문이다. 단편 단편으로 부서진 세계 속에서 살고 있고, 그 세계를 시 속에 가져오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도 더 잘 이해가 되면 좋을 텐데) 지금 20대 독자들은 실제 그런 시를 좋아한다. 예를 들면,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로 이어지는 박목월의 시 「나그네」를 우리는 목가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젊은이들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판타지로 읽어내더라. 경험의 질이나 감각이 다르다. 이 친구들의 감각으로 접속되는 세상이 따로 있다는 생각이고, 거기에서 시의 역할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시의 형식으로 쓰여지고 있다면 시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그는 “지금 중간에서 애매한 포지션을 겪고 있다”고 웃었다. 즉, 그는 윗세대에게는 젊은 세대를 변호하고 젊은 세대에겐 윗세대를 변호하고 있는데, 윗세대는 시가 어렵다고 하고 젊은 세대를 윗세대와 비슷하다고 말한다고. 기자는 차제에 윗세대와 젊은 세대간 브리지 또는 네트워크 역할을 더 적극적으로 하면 새 기회가 열리지 않겠느냐고 덕담했다.

 

그런데, 웬걸. 미래를 품은 젊은 시인은 시단 내의 세대 브리지 역할을 훌쩍 뛰어넘어 이젠 소설의 영토까지 나아가려 하고 있었으니. 혹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조만간 친구의 장례식장에 다녀오는 이야기를 담은 경장편 소설 『재』를 출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놀라는 표정 하나 없이. 도대체 그의 끝은 어디까지 일까, 갈급하게 궁금해졌다.

 

“제 속에 있는 것들을 정직하게 꺼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제 속에 쪼개졌던 이야기들과 사람들을 시 같은 에세이 같은 이야기를 썼는데, 저를 여러 명으로 쪼갠 등장인물을 세우고 맥락을 살리다보니 소설이 되었어요(웃음).”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남정탁 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